근세조선정감 [한] 近世朝鮮政鑑

1886년 7월 일본 도쿄(東京)의 중앙당(中央黨)에서 간행된 대원군(大院君) 집권시기의 야사(野史). 내용은 철종(哲宗)의 즉위에서부터 시작하여 대원군의 인물상, 정치적 견해를 중심으로 대원군 집권 시기를 전후한 한국의 정치이념과 병인박해(丙寅迫害)에 관한 많은 사실들을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박제경(朴齊絅)이며 특기할 것은 책 분량의 1/3에 해당하는 부분은 배전(裵-)의 평(評)이며, 일본에서 간행되었으므로 나가 미찌요(那珂通世)의 일본식 훈점(訓點)이 첨가되었다. 저자와 평자는 책의 간행 후 자신들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위험을 피하고자 박제형, 배차산(裵次山, 배전의 호가 此山)이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있는데, 박제경은 개화파의 일원으로 박영효(朴泳哮), 김옥균(金玉均)과 함께 개화운동에 참가했다가 갑신정변(甲申政變)이 실패하자 희생된 인물이며, 배전은 박제경의 스승이자 동지로 박제경보다 훨씬 진보적인 사상을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저술 시기는 1884년 감신정변 이전으로 저자가 저술을 끝낸 후 배전에게 평(評)을 의뢰했을 것이므로 갑신정변 훨씬 이전에 저술을 마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이 책에 실린 이수정(李樹廷)의 서문(序文)에서 이 책이 상하 2권으로 되어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1886년 7월 동경 중앙당에서는 상권만이 간행되었고, 하권은 끝내 간행되지 않은 것 같고 실제로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책의 가치로는 야사(野史)로서 사실기술에 다소 착오를 범하고 있긴 하지만, 1880년대 개화파의 사상과 개화파의 천주교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는데 있다.

[참고문헌] 朝鮮政鑑(上), (韓國敎會史硏究資料 弟二輯), 韓國敎會史硏究所, 1968 / 李翼成 譯, 近世朝鮮政鑑(上), 探究堂, 1976 / 李光麟, 近世朝鮮政鑑에 대한 몇 가지 問題, 韓國開化史硏究, 一潮閣,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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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주의 [한] 根本主義 [영] fundamentalism

1차 대전 뒤, 자유주의 신학 및 세속화한 생활에 대항하여 일어난 미국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보수주의 운동을 말한다. 1905년부터 1915년까지 발행된 12권의 작은 총서 ≪The Fundamentals : A Testimony to the Truth≫의 64명의 집필가 중에는 미국의 전천년왕국운동(前千年王國運動, American premillennial movement)과 영국의 케스윅 콘벤션(Keswick Convention)에 소속된 사람이 많이 참가하였으며, 1919년에 ‘천년왕국론자’들은 포괄적인 조직인 ‘세계기독교 근본주의연맹’(World’s Christian Fundamentals Association)을 형성하여 보수주의 깃발을 내걸고, 근본주의운동의 강령조항을 굳혔다. 사회적인 복음(福音)을 주장하여 사회 전체를 개인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적합시키도록 하자는 진보파와 이에 맞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적인 교리를 고수하는 보수파와의 대립이 차차 심해져 후자를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s)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들은 사회적인 복음을 마왕(魔王)으로 보았으며, 다윈의 진화론이나 역사적인 고등비평, 기타 프로테스탄트 교회 전반에 스며든 자유주의 사상, 즉 근대주의(近代主義, modernism)에 대항하여 성서는 그 원본에 있어서 오류가 전혀 없이 보존되었다는 축자영감설(逐字靈感設)과 삼위일체설과 인간의 완전타락과 구원을 위한 ‘재생’의 필요성 등에 입각하여 교회안의 이단적인 분자를 적발, 많은 분열을 일으키는 원인을 만들기도 하였다. 반(反)근대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 근본주의는 가톨릭교회의 태도와 일백 상통하는 바가 있으며, 근본주의자 그들이 바랐던 것처럼 결정적인 승리를 얻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보더라도, 자유주의의 지나친 신학적 경향을 시정해 주고, 교회의 좋은 모습 옛 ‘경건’을 지키며, 교회에 참된 평화와 자유의 길을 닦는 데 이바지한 것만은 사실이다.

[참고문헌] S.G. Cole, The history of Fundamentalism, New York 1931 / R.T. Handy, Fundamentalism and Modernism in Perspective, Religion in Life 24,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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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철학 [한] 近代哲學 [영] modern philosophy

중세 봉건체제가 해체되면서 자본주의가 형성, 발전된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5세기 간에 나타난 여러 철학을 근대철학이라고 총칭한다. 근대철학은 다시 르네상스기 철학(1400~1600년), 자연과학적인 방법 확립 및 체계화 시기의 철학(1600~1800년), 현대철학(1900~현재)으로 구분된다. 르네상스는 14~15세기에 인문주의(人文主義)의 형태로 이탈리아에서 먼저 발생하였다. 이 운동은 스콜라 철학을 반대하면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적인 사상을 기초로 하여 인간 중심의 사상을 부활시키려 하였다. 르네상스기 철학도 중세의 종교적이며 신학적이던 성격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적이며 세속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인간의 경험과 이성을 토대로 하는 새로운 원리가 모색되고 급기야 수학적인 실험방법의 확립으로까지 발전되어 근대과학을 성립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르네상스기 철학은 중세적 세계관에 반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장구한 전통을 지닌 중세적 세계관을 일시에 소멸시키지는 못하였다. 현실적인 세계에 적극적인 의의를 부여하면서도 결코 신으로부터 완전히 일탈하지 않았고, 다만 초월적이던 신을 세계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신을 세계 속에 내재하는 범신론적 입장을 확립하였던 것이다.

근대철학은 17세기 이후 대륙의 합리론(rationalism), 영국의 경험론(empiricism), 독일의 관념론(idealism) 등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합리론은 “모든 참다운 인식이란 사유 필연성(思惟 必然性)과 보편타당성(普遍妥當性)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사실이 ‘그러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영원히, 또 어디에서나 ‘그래야만 한다’라는 것이 성립해야 그 인식을 참된 인식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험’은 사실성만을 보여줄 뿐 사유 필연성은 보여 주지 못하기 때문에 판단의 근거를 ‘경험’에서 찾을 수는 없고 ‘이성’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합리론자들은, 수학을 모든 학문의 이상(理想)으로 보고 수학적 방법을 모든 학문의 방법에 있어서 모범(模範)이라 생각하였다. 데카르트(Descartes), 파스칼(Pascal), 라이프니츠(Leibniz) 등이 대표적인 합리론자이다. 합리론이 일반적으로 인식의 기준을 이성으로 본 데 비하여, 경험론은 인간의 지각(知覺)이 어떻게 현실을 우리에게 제시하는가 하는 점에서 철학을 시작한다. 인간은 감각기관을 통하여 세계의 사물과 사건에 대한 지식을 얻는데, 만약 감각기관이 없다면 세계는 우리 인간과는 분리된 채로 존재할 것이라는 것이 경험론자의 주장이다. 이러한 입장은 이미 고대의 소피스트나 스토아학파, 에피큐로스학파들에게서도 발견되지만 체계적으로 구성된 것은 로크(John Locke), 버클리(G. Berkeley), 흄(D. Hume)에 이르러서야 가능하였다. 이러한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을 비판, 종합한 것이 독일의 관념론이며, 이러한 독일의 관념론은 칸트(I. Kant), 피히테(J. Fichte), 셀링(F. Schelling)을 거쳐서 헤겔(G. Hegel)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소박한 유물론’(naiver materialism), 18세기 프랑스의 ‘기계론적 유물론’(mechanistic materialism)의 유산을 비판 계승한 ‘변증법적 유물론’(dialectical materialism)은 자연 · 역사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인간의 사고 등 광범한 영역에 걸쳐서 형이상학적인 관념성을 배제함으로써 세계사의 발전법칙을 제시하고, 이것을 기반으로 공산주의 사상을 전개하였다. 헤겔은 이성과 현실의 종합을 추구함에 있어서 ‘표상’(表象, Vorstellung)으로써 ‘절대자’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종교이고, ‘개념’(槪念, Begriff)으로써 ‘절대자’를 파악하는 것이 철학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포이에르바하(L. Feuerbach)는 인간의 자연성을 초월한 절대정신을 전제로 한 헤겔의 관념론은 그 자체가 종교와 같이 인간의 자기 소외의 한 형태임을 밝히고, 육체를 가진 인간의 본질은 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헤겔의 변증법과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을 비판, 극복하면서 변증법적 유물론을 확립시켰다.

그 뒤 독일에서는 실증주의와 유물론의 조류를 극복하기 위한 일련의 시도가 나타난다. 마르부르크학파(Marburg Schule)와 서남독일학파(Sud-deutsche Schule)를 중심으로 발전한 신칸트학파(Neukantianer)와 후설(E. Husserl)이 창시한 현상학(現象學, Phanomenologie)이 그것이다. 한편 근대적인 이성 정신과 과학주의에 대항하여 인간 · 삶의 실재를 긍정하면서 그것을 직관(Anschauung), 체험(Erlebnis), 이해(Verstehen)하려는 생의 철학도 19세기 말의 철학계에 하나의 커다란 흐름을 형성하고 있었다. 쇼펜하워(A. SchopenhauerO, 니체(Nietzsche), 베르그송(H. Bergson), 딜타이(W. Dilthey), 짐멜(G. Simmel) 등이 대표적인 생의 철학자들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철학은 다종다기하게 펼쳐진다. 실존주의(ezistentialism), 프래그머티즘(pragmatism), 논리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 분석철학(analytic philosophy) 등이 각각 유파를 이루면서 독자적으로 발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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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주의 [한] 近代主義 [관련] 모데르니즘

⇒ 모데르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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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기 [한] 克己 [라] abnegatio sui ipsius [영] selfabnegation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하여 자신을 극복함.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고난받는 종’이 되어 마침내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셨다. 그리스도인이 스승 그리스도를 본받아 아버지 하느님께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장애가 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인간에게 내재하는 이기심, 그릇되고 온당하지 못한 여러 가지 정욕(情慾)이다. 자신을 극복한다는 것은 곧 이러한 사욕편정(邪慾偏情)을 자제하는 것을 말한다. 자제하는 행위는 육신의 괴로움이 따르기도 하므로 고신극기(苦身克己)라고도 하였다. 극기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일찍이 논어(論語)에서 자신을 극복하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인(仁)이라고 한 극기복례(克己復禮)의 가르침과 비슷하여 인간의 공통적 상황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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