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춤 [한] 鶴舞

조선조시대(朝鮮朝時代) 형벌(刑罰)의 일종. 수형자(受刑者)의 옷을 벗긴 뒤 양 팔을 뒤로 젖혀 엇갈리게 하여 묶고 허공에 높이 매달아 사방에서 채찍이나 몽둥이로 때리는 악형(惡刑)으로, 허공에 매달려 형벌을 받는 수형자의 모습이 학(鶴)의 춤추는 모습과 비슷한 데서 이 형벌의 이름이 유래한다. 박해 중 체포된 많은 교우들을 배교(背敎)시키기 위해 주뢰질, 치도곤, 육모매질, 사모창, 톱질, 압슬 등과 함께 이 형벌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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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한주 [한] 河漢珠

하한주(1909∼1984). 수원교구 소속신부. 세례명 요셉. 경상남도 창녕(昌寧)에서 태어나, 1935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졸업하고 이 해 5월 15일 사제로 서품되어 군산본당 보좌신부로 첫 성직생활을 시작하였다. 1937년 전주교구가 지목구로 설정되자 대구교구에서 전주교구로 이적되었고 1937년 이리본당 주임, 1939년 장수본당 주임을 거쳐 1952년 안양 성 라자로 마을 원장, 1959년 평택본당 주임으로 사목했으며, 평택본당 재임 중이던 1963년 수원교구가 신설되자 다시 수원교구로 이적되었다. 그 후 1967년 이천본당 주임신부로 사목하던 중 1973년 은퇴, 수원교구 주교관에서 생활하다가 1984년 8월 7일 수원 성 빈센트병원에서 노환으로 선종하였다. 평소 바쁜 사목활동 중에서도 시조(時調)에 심취, 작품활동을 통해 신앙과 구도의 자세를 표현하여 생전에 ≪태양의 노래≫를 비롯한 4권의 시조집을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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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칠계 [한] 下七誡 [관련] 십계명

십계명 가운데 인간 서로간의 수평관계를 규정한 일곱 계명, 즉 “부모에게 효도하라, 사람을 죽이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을 하지 말라,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는 것이다. 하칠계는 신명기의 전승대로 아우구스티노가 분류한 십계명의 체계에 의한 것이며, 출애굽기의 전승에 바탕을 둔 필로의 분류, 즉 대다수 개신교가 채택하는 체계에 따르면 하육계가 되는 셈이다. (⇒) 십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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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현본당 [한] 下牛峴本堂

주보로 ‘대 데레사’를 모시는 이 본당은 왕림본당의 공소로부터 분할되어 1900년 현 시흥군 의왕읍 청계리(始興郡 儀旺邑 淸溪里), 속칭 ‘하우고개’에 프랑스인 샤플랭(Chapelain, 蔡) 신부가 초대 본당주임으로 부임하면서 설정되었다. 이곳의 처음 성당은 1893년에 교우들의 협력으로 초가 10간을 지어 공소강당으로 써온 곳인데, 샤플랭 신부가 부임하여 지은 사제관과 함께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봉헌하였다. 이 때 내빈으로 참석한 주한(駐韓) 초대 콜랭 드 플랑시(Collin de Plancy) 프랑스 공사가 기증한 종은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다. 본당창설 당시의 신자총수는 1,105명이고 16개 공소를 관할하였다. 이는 광주군(廣州郡)과 용인군(龍仁郡)의 일부지역, 그리고 과천현(果川縣), 금천현(衿川縣, 지금의 安養지구), 안산군(安山郡) 등 넓은 지역을 관할하였기 때문이다.

청계산(淸溪山)과 광교산맥(光敎山脈)을 잇는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는 하우현은 서울에서 약 24km, 안양에서 16km 떨어진 곳으로 높은 산과 자연의 계곡, 거기에 울창한 수림은 박해를 피해 안식처를 찾는 교우들에게는 다행한 곳이었다. 그래서 인적이 드문 험준한 이 산골에는 일찍부터 교우촌이 형성되어 신유년(辛酉年), 병오년(丙午年) 박해 때부터 순교자를 배출하게 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의일(義一, 지금의 鶴日里) 마을에 살던 한덕운(韓德運, 토마스)이 광주 포교에 잡혀가 남한산성에서 순교한 일이 있고, 그 뒤 하우현 마을에 살던 김준원(金俊遠, 아니체토)이 1845년 9월 역시 광주 포교에게 잡혀가 그해 12월 남한산성에서 치명되었다. 그리고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볼리외(Beaulieu, 徐沒禮) 신부가 묘론리(卯論里)에서 조선말을 배우다가 장제철(張濟哲)의 밀고로 서울 포교에게 체포되어 3월 7일 새남터에서 순교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교우촌의 생업이던 옹기 굽던 도요지(陶窯地)와 얽힌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하우현에는 개화기인 1884년에 이미 공소가 시작되어 뮈텔 신부가 정기적으로 찾아와서 전교하였고, 1885년부터는 프와넬(Poisnel, 朴道行) 신부가 전교한 기록이 남아 있다. 1888년 왕림본당이 설정되자, 하우현은 그 관할공소로 편입되었다. 그 뒤 왕림본당 주임신부 대리인 이종국(李鍾國, 바오로) 신부는 1899년과 1900년에 걸쳐 자주 이곳에 체류하면서 사목활동을 하였다. 하우현이 본당으로 되고 샤플랭 신부가 부임하여 5년간 전교하였는데, 한국 풍습에 동화되지 못했던 탓인지 교우들과 불화가 잦아 1906년 귀국하고 말았다. 2대 본당신부는 르각(Le Gae, 郭元良), 3대는 페랭(Perrin, 白文弼) 신부로, 모두 프랑스인 선교사였고, 1920년에 처음으로 한국인 주임 윤예원(尹禮源, 토마스) 신부가 부임하여 1927년까지 7년간 사목하였다. 그 동안에 ‘애경 강습소’를 개설, 육영사업에도 힘썼다.

1928년 프랑스인 부이수(Bouyssou, 孫以燮) 신부가 5대 본당주임으로 부임하여 신개화사상(新開化思想)과 문맹퇴치에 많은 공을 세웠으나, 애경강습소는 운영이 어려워 끝내 폐쇄되고 말았다. 1930년 부이수 신부가 대신학교 교수로 전임된 뒤, 본당은 문을 닫게 되고, 수원 고등동본당의 공소로 편입되었다. 1943년 황정수(黃貞秀, 요셉) 신부가 부임하여 본당이 부활되었는데 얼마 후에 6.25 전쟁을 겪게 되고, 1951년 황 신부가 떠나자, 본당은 다시 문을 닫고 영등포본당 관할의 공소가 되었다.

1952년 구천우(具天佑, 요셉) 신부가 부임하여 다시 본당이 부활되었다. 구 신부는 안양 일대의 사목에 힘씀 결과 교세가 크게 신장되어 1953년 안양본당이 설정되면서 하우현본당은 또 폐쇄되어 공소가 되었다. 그러나 성당과 사제관은 그대로 보존되어 신부들이 휴양처로 활용되었다. 1973년에는 새로 설정된 군포본당의 공소로 이관되었다. 그러나 구성당 건물이 허술하므로 미군부대의 원조를 얻어, 1,700평의 부지 위에 100평의 현 성당을 신축하였는데 이 사업은 벨기에인 레이몬드(Raymond Spies) 신부의 힘이 컸다. 그는 1980년에 하우현에 부임하여 다시 본당을 부활시키고 사회사업에도 힘쓰고 있다. 이 본당의 신자총수는 174명, 전국의 본당 중에서 가장 적은 곳이지만 신앙의 요람지요, 누대(累代)가 살아온 교우촌이라는 데서 교회사적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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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 [라] Eva [영] Eve

‘생명’을 뜻하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말이며, 원조 아담이 자신의 아내에게 생명을 지닌 모든 인류의 어머니라 해서 붙여준 이름(창세 3:20). 불가타(Vulgata)에서는 이를 Eva(에바)로 번역하였다. 하느님을 불신하고 불순종함으로써 아담과 더불어 원죄를 범하였으며 이레네오를 비롯한 교부들은 성모 마리아를 ‘둘째 에바’라고 불렀다. 즉 “에바의 불순명이 묶어 놓은 매듭을 마리아의 순명이 풀어 주었고 처녀 에바가 불신으로 맺어 놓은 것을 동정 마리아가 믿음으로 풀었다”고 하며, 에바와 비교하여 마리아를 ‘산 사람들의 어머니’라 부르고, 가끔 “에바를 통하여 죽음이 왔고 마리아를 통하여 생명이 왔다”고 주장한다(교회헌장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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