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적이고 초월적인 신(神)을 믿는 것. 그러나 일신론(一神論, monotheism), 다신론(多神論, polytheism), 단일신론(單一神論, henotheism) 등 여러 형태가 있다. 유신론은 인격적, 초월적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atheism)과 구별된다. (⇒) 무신론
유스티노 [라] Justinus
Justinus(100?~165?). 순교자. 성인. 2세기에 가장 뛰어난 호교(護敎)교부. 팔레스티나의 고도(古都) 시켐(Shechem)의 라틴계 이교가정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정열적 개성의 소유자로 스토이즘,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플라톤의 철학을 공부한 후 인간의 모든 사상은 한계와 부족이 있음을 깨닫고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였다(130년경). 그 뒤 생애의 절반 정도를 로마에서 보내며 제자를 양성하였다. 165년경 제사를 거부한 죄로 6명의 신자들과 함께 체포되어 루스티쿠스(Junius Rusticus) 총독 때 처형되었다. 그의 순교기록은 ≪순교행적≫(Martyrium S. Justini et Sociorum)을 통해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의 선왕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 황제에게 그리스도 교인들에 대한 편견에서 나온 박해를 멈추고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것을 호소하는 ≪제1 호교론≫(Apologia I)과 ≪제2 호교론≫, 그리고 에페소에서 유다인 트리폰과의 토론과 대화를 바탕으로 하여 쓰여진 ≪트리폰과의 대화≫(Dialogus cum Triphone)가 현재 전해지고 있다.
유스티노는 가장 뛰어난 호교론자의 한 사람으로 이성과 계시를 구원사의 한 맥락으로 이해하여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키려고 한 최초의 그리스도교 사상가이다. 그는 모든 인간은 ‘말씀’을 내재적으로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교철학을 통해서도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으며 그리스철학의 영향으로 성부(聖父)와 성자(聖子), 즉 ‘말씀’(logos)의 관계를 유출관계로 이해하면서 신의 초월성을 강조하였다. 이는 종속론(從屬論, subordinationismus)의 기미를 보이며 이것은 그를 포함한 초기 교부의 한계이기도하다. 그러나 수사적인 한계 밑의 그 의도에 있어서는 정통성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축일은 현재 동서방교회에서 모두 6월 1일이다.
유수철 [한] 柳秀徹
유수철(1918~1977). 신부. 세례명은 도미니코. 1918년 1월 12일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 오산리(龍仁郡 慕賢面 五山里)에서 부(父) 유옥균(柳玉均)과 모(母) 오 바르바라(吳發發羅) 사이의 12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 고향에서 신갈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 사제수업을 마친 후 1943년 12월 5일 노기남(盧基南) 주교의 주례로 약현성당(지금의 중림동성당)에서 김철규(金哲珪, 바르나바), 방영석(方永錫, 요셉), 최상준(崔尙俊, 시몬)과 함께 사제로 서품, 약현본당의 보좌신부로 사제생활을 시작하였다. 1944년 인천 답동본당 보좌, 1946년 동성상업학교 을조(東星商業學校 乙組)[소신학교] 라틴어 교수, 1952년 경기도 서정리본당(지금의 송탄본당)주임, 1961년 서대문본당 주임, 1962년 혜화동본당 주임을 거쳐 1968년 가톨릭중앙의료원장으로 임명되었고 혜화동본당 주임신부 시절, 한국에 처음 소개된 꾸르실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선종할 때까지 지도신부로 활약하는 한편, 교구 상서국장(尙書局長)[현 사무국장], 사제공제회장을 겸임하였었다. 그 뒤 1973년 신당동본당 주임신부로 전임되어 다시 본당을 사목하다가 1977년 7월 지병인 폐암(肺癌)의 재발로 성모병원에 입원 중, 한 달 만인 8월 29일 60세로 선종(善終), 용산 성직자묘지에 안장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