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 [라] Albertus, Magnus

Albertus, Magnus(1200?∼1280). 성인. 축일 11월 15일. 스콜라학자이며 도미니코 회원이고 박학했기 때문에 ‘대(大)알베르토’라고 지칭되었다. 독일 슈바벤 지방의 라우잉겐에서 볼슈테드 백(伯)의 아들로 태어나 이탈리아의 파도바 및 프랑스의 파리에서 공부하였다. 그 뒤 힐데스하임(Hildesheim), 라티스본 및 쾰른 등을 거쳐 1245년부터 파리에서 강의, 1248년에는 다시 쾰른으로 돌아와 도미니코회의 ‘스투디움 제네랄레’(Studium generale)를 조직하였고 1254년부터 1257년까지 독일의 지방주교를 지냈다. 1256년 교황 알렉산데르(Alexander) 4세의 요청으로 아베로이즘(Averroism)[어떤 명제는 철학적으로 진실이라 해도, 신학적으로는 잘못일 수도 있다는 설]을 반박하는 책 ≪De unitate intellectus contra Averroem≫을 썼다. 1260년에는 라티스본의 주교로 임명되었지만, 저작에 전념하기 위해 사임하였다. 1274년 리용(Lyons) 공의회에 참석, 1277년에는 파리에서 제자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교리를 옹호하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rationes seminales’를 신봉하는 아우구스티노 학파의 저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방대한 지식을 가진 다작가(多作家)였다. 또한 아퀴나스에 앞서 그의 철학과 신학을 종합하는 업적에 전초(前礎)를 놓았으나 아퀴나스의 저작에서 보이는 유기적인 통일성이 부족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미완성), ≪피조물에 관한 대전≫(Summa de Creaturis)이 있다. 단테는 그를 아퀴나스와 함께 ‘예지자’(spiriti sapienti)로 불렀다. 1931년 비오(Pius) 11세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교회학자(Doctor ecclesiae)로 공포되었다. 이보다 앞선 1893년 빈곤한 가톨릭 학생의 후원을 목적으로 ‘알베르토 마뉴스회'(Albertus-Magnus-Verein)가 창립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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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원] Albania

발칸반도에 위치하고 있는 공산권 국가.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및 아드리아해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면적은 2만8,748㎢, 총 인구는 286만명(1982년 추계)이다. 알바니아에 처음 그리스도교가 들어온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르디카(Sardica) 공의회(343~344년) 이전일 것으로 추정된다. 알바니아는 로마로부터 라틴 전례를, 그리스로부터는 비잔틴 전례를 받아들였으며 660년경 슬라브족의 침입으로 인해 알바니아 교회사에 공백이 생겼다. 11세기 이후에는 대집단이 남부로 이동하여 그리스에 정착하였으며 그 곳에서 이들은 비잔틴 전례를 지키고 동방이교를 신봉하게 되었다. 한편 북 알바니아에서는 가톨릭신앙과 라틴 전례가 지켜졌다.

15세기에 터키족이 침입하여 1912년까지 알바니아를 점령하였는데 이 기간에 많은 알바니아인들이 회교로 개종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개종은 표면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고 대부분의 알바니아인들은 세례, 성인공경, 순례 등의 그리스도교 전통을 지키고 있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알바니아가 오스트리아의 보호를 받게 되자 회교의 영향력은 점차 감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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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쿠시오 [라] allocutio [영] allocution

훈시, 연설, 담화 등의 뜻을 지닌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이며 교회 내에서는 다음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① 추기경 회의에서 교황이 추기경들에게 하는 장엄한 연설. ② 레지오 마리에의 신심운동을 펴는 각급단체가 회의를 열 때, 그 회의에서 각 단체의 지도 신부가 단원들에게 하는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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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이시오 곤자가 [라] Aloysius Gonzaga

Aloysius Gonzaga(1568∼1591). 이탈리아의 예수회 회원. 성인. 축일 6월 21일. 만토바 부근의 카스틸리오네에서 변경백(邊境伯) 곤자가의 페르디난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소년시절 피렌체, 만토바의 궁정에서, 또는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필립보 2세의 시동(侍童)으로 생활하면서도(1581~1584년), 순결에 대한 열애(熱愛)와 엄격한 고행(苦行)으로 일관하였다. 한편 1580년 처음으로 영성체하고, 1585년 변경백령(邊境伯領) 상속을 동생에게 양보하고 로마의 예수회에 들어가 1587년 수사가 되었다. 경건하고 겸손한 생활로 남의 모범이 되었으며, 1591년 이탈리아에 페스트가 발생하였을 때 희생적으로 환자들의 간호에 종사하다가 병에 감염, 23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유해는 로마의 성 이냐시오 성당에, 머리 부분은 카스틸리오네의 알로이시오 성당에 각각 안치되어 있다. 1605년 교황 바오로 5세에 의해 시복(諡福), 1726년 베네딕토 13세에 의해 시성, 같은 해에 청소년, 특히 학생의 수호성인으로 정해졌다. 이 성인은 대개 예수회 수련자로서 십자가 및 해골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의 시성 200주년 기념(1926년)에는 비오 11세가 교황서한을 바쳤다. 로마의 이냐시오 성당 신학교에 알로이시오 박물관이 있고, 슈바이클버그 수도원에 알로이시오 박물관 겸 도서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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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렐루야 [영] Alleluia [히] hallelujah

어원적으로 히브리어 ‘힐렐’(hillel, 찬미하다)이란 동사의 명령형 ‘할렐루’(hallelu)와 하느님이란 말의 야훼(jahve)의 약자 ‘야’(jah)의 합성어. 즉 야훼 하느님을 찬미하라는 뜻이다. 구약 성서의 하느님을 찬미하는 시편의 시작과 마지막에 많이 인용되었고(시편 111-117), 유태인의 종교의식에 있어 성가대의 합창에 신자들이 아멘과 알렐루야로 응답하였다. 요한묵시록에는 천사들의 찬양의 형태로도 나타나 있다(묵시 19:1 · 3 · 4 · 6). 알렐루야는 그리스도교의 전례로 넘어와 응답으로서, 환호로서 전례문에 삽입되었으며, 후렴으로도 사용되었다. 교황 성 다마소(Damasus) 1세(재위 : 366~384) 때 부활절 미사에 도입되어 5세기에는 부활 시기에 계속 노래되었다. 교황 성 그레고리오(St. Gregorius) 1세(재위 : 590~604)는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 전야 미사까지의 속죄와 참회의 시기를 제외하고 1년 내내 미사와 종교의식에서 노래하도록 규정하였다.

오늘날 로마 전례에 있어서는, 사순절을 제외하고 모든 미사 중 층계송 다음에, 독서가 2개 이상일 때는 제 2독서 끝에 노래된다. 이때에는 알렐루야 뒤에 짧은 시편 구절이나 성서 구절이 덧붙여지고 다시 한 번 알렐루야를 외게 된다. 중요한 교회 축일과 부활 시기에는 두세 개의 알렐루야가 첨가되기도 한다. 또한 성무일도에는 많은 알렐루야 기도문이 인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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