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학파 [한] ∼學派 [라] Schola Alexandrina [영] School of Alexandria

교부시대의 알렉산드리아에 형성된 그리스도교 학파. 시기에 따라 교리문답학파와 신학학파가 있었다. 알렉산드리아는 고대시대의 주요한 문화적 중심지로 그리스도교와 헬레니즘 문화의 교차점인데 그리스도교 이전에는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유대주의의 지적 중심지로 <전도서>와 <지혜서>는 여기서 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① 교리문답학파 :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도교 학파의 기원은 확실치 않다. 그러나 처음부터 주교들은 이들과 공동으로 세례 지원자들을 교육하였다는 점은 확실하다. 2세기말 판테노(Pantaenus)와 그의 제자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Clemens Alexandrinus)는 철학으로서의 그리스도교를 가르치는 학파를 지도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교리문답학파는 주교의 지도를 받았는데, 데메트리오(Demetrius) 주교로부터 예비자 교리를 위임받은 오리제네스(Origenes)가 그 첫 예이다(203년?). 그는 보통 알렉산드리아 학파라고 불리는 성학(聖學, didascalion)[논리학 · 변론 · 물리 · 수학 · 천문학 뿐 아니라 당시철학의 분석 및 성서 주해 등의 과목들을 포함]학파의 형성에 열중하였으나 그의 제자 헤라클라스(Heraclas)는 그리스도교의 생활방식에 있어서의 기본적 지침을 가르쳤다. 5세기의 필립 시데테스(Philip Sidetes)는 이 학파의 주요 인물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중에 판타노와 글레멘스는 없지만 아테나고라스(Athenagoras), 오리제네스, 헤라클라스[232년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디오니시오(Dionysius)[248년 주교], 테오그노스토(Theognostus)[247~282년 주교], 피에리오(Pierius), 베드로(Petrus)[300~? 주교], 4세기의 맹인 디디모(Didymus) 등이 있다.

② 신학 학파 : 여기서 차츰 같은 관심을 가진 학자들이 모인 알렉산드리아 신학 학파가 형성되었는데 두 가지 국면으로 나뉜다. 글레멘스와 오리제네스는 그 시대의 식자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소개한 반면 아타나시오(Athanasius)와 치릴로(Cyril)와 같은 4∼5세기의 저자들은 삼위일체와 관련된 그리스도교 신앙과 이단에 대한 그리스도의 신성을 옹호하는데 힘썼다. 처음부터 알렉산드리아의 주석학은 안티오키아의 것과 구별되는데 후자는 성서의 문자적 의미를 추구하는 반면 전자는 구약의 역사 및 문학적 표현 속에 감추어진 계시의 신비에 주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삼위일체 교리에서 글레멘스와 오리제네스는 플라토니즘의 영향을 받아 성자와 성신이 성부보다 열등한 것처럼 표현하였다. 아타나시오는 아리우스에 대항하여 성부 · 성자의 공동 실체설을 주장, 그리스도론에서는 요한복음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머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 인성이 불분명해졌다. 치릴로는 그리스도를 말씀이 육화된 하나의 본성으로 정의하였으며 이것은 에우티케스(Eutyches)와 단성론자들에 의해 그대로 되풀이 되어서 반대자들은 이들이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참고문헌] R. Nelz, Die theologischen Schulen der morgenlandischen Kirchen, Bonn 1916 / F. Pericoli Ridolfini, Revista degli studi orientali 37, 1962 / R.V. Sellers, Two Ancient Christologies, London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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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데르 [라] Alexander [관련] 문예부흥기교황

Alexander, 3세(1105∼1181). 교황(재위 : 1159~1181). 본명은 Orlando Bandinelli. 이탈리아의 시에나(Siena) 출신으로 교회법학자였다. 볼로냐(Bologna)대학 교수, 부제추기경(1150년), 사제추기경(1151년), 교황 비서국장(1153년), 교황사절 등을 거쳐 교황으로 선출되어 하드리아노(Hadrianus) 4세를 계승하였다. 재위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Friedrich, 赤髮帝)가 교황 선거에서 소수파였던 옥타비아노(Octavianus)를 후원하여 빅토리오(Victorius) 4세로 즉위시키자 17년간의 이교(離敎)시기를 맞게 되었으며 교황은 대부분 프랑스에서 피난생활을 하였다. 이 이교는 1177년 베네치아 화약으로 종결되었다. 또한 망명한 캔터베리(Canterbury)의 대주교 베케트(Thomas Becket)를 보호해 준 사건으로 영국왕 헨리(Henry) 2세와 외교적 분쟁이 야기되었으나 이것도 무사히 종결되었다.

그는 속세의 통치자들에 대하여 교황으로서의 수위권을 주장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그레고리오(Gregorius) 8세로부터 인노첸시오(Innocentius) 3세에 이르는 시기의 교황권의 신장(伸張)과 강화라는 전체적 분위기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주나, 교회 내에서의 교황권을 수호하는 데에서는 매우 단호하였다. 위의 사건들은 왕국 내에서의 교회의 적법한 권리에 대하여 교회법학자로서의 매우 조심스러운 관심과 왕권의 발달이 교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그의 깊은 안목을 보여 준다.

재위 기간 중의 이러한 일련의 위기들에도 불구하고 교황은 교회 발전에 뚜렷한 여러 업적을 남겼는데, 1179년에는 제 3차 라테란 공의회를 소집하고 이를 주재하였으며 십자군 원정의 찬조금을 모으기 위해 <십자군대칙서>(Bulla Cruciata)를 발표하였다. 또한 학자로서는 <그라시아노 법령>(Decretum Gratiani)에 대한 주석과 신학적 저작인 ≪Sententiae Rolandi≫로 유명하다.

Alexander, 6세(1431?∼1503). 교황(재위 : 1492∼1503). ⇒ 문예부흥기교황

Alexander, 7세(1599∼1667). 교황(재위 : 1655∼1667). 원명은 Fabio Chigi. 오랜 명문인 이탈리아 시에나(Siena)의 키지(Chigi)가(家) 출신. 시에나대학에서 9년간 수학 후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1626년), 교황청의 사절로 일하면서 교황들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 쾰른에서 교황대사로 13년간 근무하고 뮌스터(Munster) 평화회담 때는 교황사절로 참가하였으며, 교황청 성성장관을 거쳐 인노첸시오(Innocentius) 10세 서거 후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건강이 좋지 않았으나 열심한 교황이었던 그는 합스부르크 왕가(王家)를 약화시키려는 부르봉왕가의 야심찬 루이 14세 때문에 정치적 곤란을 겪기도 하였으나 ‘5개항’을 단죄한 선왕의 입장을 계승하여 얀센의 이단을 단죄하고 스웨덴 크리스티나 여왕의 개종을 포함하여 선교활동을 장려하였으며 이를 위해 포교성성(布敎聖省)에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또한 예술의 수호자로서 베르니니(Bernini)의 대주랑(大柱廊)의 건설에 기여하였으며, 학문을 장려하여 사학자들을 위해 교황청 고문서실의 열람을 가능하게 하였다. 자비로운 교황이었던 그는 1656년 흑사병이 로마를 강타하자 빈자(貧者)들을 힘써 돕기도 하였다. 그는 특히 1656년 중국 의례금지를 완화함으로써 예수회의 적응주의에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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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니 [원] Aleni, Julio

Aleni, Julio(1582∼1649).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신부. 중국명은 애유략(艾儒略). 자(字)는 사급(思及). 중국인들에 의해 ‘서양의 공자’[西來孔子]로 추앙받았다. 북부 이탈리아 브레이시아에서 출생, 1600년 예수회에 입회하여 1609년 극동지역의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1610년 마카오에 도착하여 1611년 광주(廣州)에 잠입하였으나 피체(被逮), 마카오로 추방되었다가 1613년 재잠입, 양주(楊洲), 섬서(陝西), 산서(山西), 복주(福州), 항주(杭州) 등 중국의 남부 내륙지방에서 전교하는 한편 여러 권의 천문역산서를 저술하였고 복건(福建), 산서(山西) 등지에 8개의 성당과 15개의 소성당을 세웠으며 천주(泉州)를 개교(開敎)시키기도 하였다. 1647년 청병(淸兵)의 복건성 침공으로 동료 디아스(Diaz, 陽瑪諾)와 함께 연평(延平)으로 피신하였다. 1649년 8월 3일 사망, 복주(福州) 북문(北門) 밖 십자산(十字山)에 안장되었다. 저서는 ≪天主降生言行紀略≫ 8권(北京 1642), ≪微撒祭義≫ 2권(福州 1629), ≪수罪正規≫ 4권, ≪萬物眞源≫(北京 1628), ≪三山論學記≫(杭州 1625), ≪利瑪竇行實≫(北京 1620), ≪五十言≫(福州 1645), ≪聖體要理≫(福州 1644), ≪西學凡≫ 1권(杭州 1623), ≪職方外紀≫ 6권(杭州 1623), ≪坤與圖說≫, ≪口鐸日抄≫ 8권(福州 1635), ≪幾何要法≫(1631), ≪四字經≫(北京 164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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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코크 [원] Alacoque, Marguerite Marie

Alacoque, Marguerite Marie(1647∼1690). 성녀. 축일 10월 16일. 프랑스의 수녀. 부르고뉘주(州) 로트쿠르(Lauthecourt)에서 태어나 파레르모니알(Paray-le-Monial) 수도원에서 별세하였다. 1671년 파레르모니알의 성모방문동정회에 입회, 이듬해 신앙고백을 하였다. 1673년부터 1675년 사이에 3차에 걸친 큰 계시를 받았다. 첫 번째에는 성심(聖心)이 이룩하는 무한한 사랑에 의탁하는 신앙심을 퍼뜨려야 한다는 것, 두 번째에는 성찬식과 회개의 기도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 세 번째에는 성심이 기리는 특별한 축일을 가져야 한다는 것 등의 계시였다. 처음에 이 새로운 신앙심은 반대에 봉착했으나 복자 콜롬비에르(Claude de la Clolmbiere)의 지지를 얻고, 예수의 성심에 대한 숭경이 번지고, 교회로부터도 인정을 받았으며, 이 성심의 신앙심은 알라코크의 별세 후 전 세계에 퍼뜨려졌다. 1864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시복(諡福)되고, 1920년에는 베네딕토 15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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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학고 [한] 安學古 [관련] 앙드레

앙드레(Andre) 신부의 한국명. ⇒ 앙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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