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권 [한] 生存權 [영] right to live

생명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의해 주어진 것이며, 동시에 하느님의 구원사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각 개인은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보존하고,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하기 위해 생존권을 갖는다. 이 생존권에 대한 침해, 즉 생명의 파괴는 하느님의 권위에 대한 침해이다. 각 개인은 자신이나 남의 생명을 파괴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출애 20:13, 신명 5:17). 생명에 대한 파괴는 자연사(自然死)와는 구별된다. 자연사가 천수(天壽)를 다하고 맞는 죽음인데 비해, 생명에 대한 파괴는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더 많은 삶을 영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적 강제에 의해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는 것, 즉 살해되는 행위인 것이다. 전통적인 논의에 있어서 생존권의 문제는 항상 직접적 살해행위인 살인, 자살, 사형, 낙태, 안락사, 전쟁 등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래서 교회는 이들 직접적 살해행위에 대해서는 이견(異見)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인 교회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산업사회의 발전과 함께 유발된 현대사회의 갖가지 요소가 인간의 생명을 크게 위협하고 있음에 눈을 돌린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최근에 생존권과 관련되어 논의되고 있는 논제들은 다음과 같다.

① 기아 : 기아는 물론 인류사와 공존했던 문제이긴 하다. 그런데 이것이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선진 자본주의제국에 의한 제3세계 여러 후진국의 지배와 수탈이 국제문제로 부각한 1960년대 이후의 일이다. 세계에서 하루에 굶어죽는 인구가 1만 여명에 이르는 반면 먹고 남아 버리거나 농업공황을 이유로 썩혀서 내버리는 식량이 이들을 먹이고도 남을 만한 양에 이른다는 아이러니와 함께 그러면서도 후진국에서 막대한 부(富)가 선진국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어 있는 세계 경제구조는 후진국 민족의 생존권에 대한 직접적 침해라는 것이다.

② 공해 : 선진국의 지나친 물질적 욕구와 인간의 계획성 없는 개발은 지구의 생태계를 파괴하며, 하천과 바다 · 대기 · 토지 등을 오염시켜 날로 인간이 살기에 부적당하게 우리의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더불어 선진국은 공해산업을 후진국으로 수출하는 비인간적 처사를 자행하고 있다. 1971년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제 1차 인간환경문제회의에서 ‘하나밖에 없는 지구’ 라는 주제 아래 공해문제가 취급된 이후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③ 산업재해 : 날마다 귀중한 생명을 앗아가고 각종 직업병을 유발시키는 장시간 노동, 부적당한 작업환경, 방치된 산업재해 발생요소들은 자본가들의 관심만 있으면 개선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버려져 있다. 그래서 현대사회에서의 산업재해 또한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커다란 요인의 하나이다.

④ 빈곤으로 인한 최저선 이하의 생활, 현대의학의 수준에서 충분히 치료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치되는 각종 질병 등도 생존권 문제의 다른 논제들이다.

[참고문헌] 교황 바오로 6세, 행동에의 부름, 1971 / 세계주교회의 메시지, 세계 안의 정의, 1971 / 교황 바오로 6세, 세계 식량회의에 붙여, 1974 / 하경근 외, 제3세계의 이해, 1977 / 염홍철 편, 제삼세계와 종속이론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생미사 [한] 生∼

살아 있는 이를 위하여 드리는 미사. 그러나 파문받은 자는 여기에서 제외된다. 신자들은 보통 가족·친지의 본명 축일이나 생일을 맞아 축하 미사로, 또는 어떤 일에 대해 특별히 감사를 드리기 위한 감사 미사로, 기타 특별한 은혜를 청하기 위해 미사예물을 바쳐 생미사를 드린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생명의 은총 [한] 生命∼恩寵 [라] gratia sanctificans [영] sanctifying grace [관련] 은총론

하느님의 생명을 통하여 인간 안에 이루어진 지속적인 내적 처지와 이 생명으로 영위되는 삶. 은총은 하느님의 생명이며 사랑으로서 인간 안에서 실제적이며 내면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인간은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여 초자연적인 상태에 이른다. 이 상태는 믿는 이의 행동의 새로운 뿌리가 되어서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으며 하느님의 모상대로 태어난 이웃 인간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이 은혜는 사죄(死罪)를 범함으로써 잃게 되나 참회와 고해성사를 통하여 회복된다. 이는 인간의 노력의 대가가 아니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서 주어지는 은혜이다. (⇒) 은총론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생명 [한] 生命 [라] vita [영] life

생명이란 ‘내적인 동력(動力)’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내부로부터 행동하는 존재의 본질이다. 위로는 신의 생명(이것은 신의 본성과 동일하다)에서부터 아래로는 피조물 세계의 모든 생명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로 적용되는 용어이다. 본성(本性, natura)이 고도한 것일수록 거기서 생기는 것은 더욱 본질적이게 마련인데, 그 까닭은 행동의 내재성이라는 것이 존재의 순위에 대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명은 내재적인 행동인 것이며, 생물 내부에서 시작하여 내부에서 끝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성서에는 생명에 대한 언급이 빈번하다. 구약성서에서 생명을 나타내는 어휘 중의 하나 ‘hayya’라는 말이 있는데, 히브리 사상에선 살아 계신 하느님의 ‘존재’를 ‘하야’ 즉 생명으로 기술하고 있어, ‘하야'(존재)는 하느님으로서의 현현, 행위, 그 섭리의 성취를 위한 끊임없는 활동성, 곧 생명의 현상으로서 상징되고 있다. ‘ruah’는 생명의 자생(自生)을 나타내어 ‘숨결’의 뜻이며, 이 ‘루아’를 포기함은 곧 죽음을 의미하였고, ‘basar’는 살아 있는 인간의 기관 곧 ‘육체’를 나타냈고, ‘nepes’는 ‘영혼’, ‘넋’으로 번역되는데, 이는 인간 또는 집단의 몸 가운데 깃들이어 이를 형성하고 활동케 하는 생명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모든 육의 생명'(레위 17:14)이라고 할 때, ‘네페시’라는 낱말이 쓰이고 있다. 이렇게 개인의 생명을 넘어 집단 또는 민족의 생명에 대하여 언급한 곳도 있다. 신약성서에서의 생명의 개념도 구약성서의 경우와 가깝다. 가장 많이 나오는 용어 중 ‘psuche’는 ‘영혼’을 가리키며, 지상의 생명체, 사람, 생명의 원리, 초월적인 생명의 자리, 그 중핵(中核)을 나타내는 낱말이다. 또 하나의 용어인 ‘zoe’는 ‘생명’을, 그리고 몇 군데 나오는 ‘soma’는 ‘육체’, ‘pneuma’는 ‘정신’을 뜻하는 데, 이는 모두 육체적 생명, 또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표현으로 자주 하느님의 나라를 표현으로 구약과는 달리 ‘사후의 생명’을 가리키는 ‘영원의 생명’에 대한 뚜렷한 구상도를 가지고 있다. 생명을 얻고자 하는 자는 잃는다(마르 8:34-38)고도 지적하여, 생명에 대한 인간의 태도와 해석에 있어, ‘영원한 생명’은 부활신앙에 근거하고 있다. 예수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사망의 권세를 정복하고, 비로소 ‘새 생명’을 획득한 첫 사람이 된 것이다. 부활한 주의 생명은 종말론적으로 해석되어 있기 때문에 사후의 생명인 동시에 현재의 생명이기도 하다(로마 5:12-21, 6:11, 갈라 2:20, 2디모 1:1). 특히 바울로와 요한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현재화되어 있다.

생명의 자기운동은, 결국에 있어 오직 움직이게 할뿐이며 스스로는 움직여지지 않는 부동의 능동자(能動者) 곧 하느님에게서 비롯된다. 이 때문에 하느님의 생명은 순수한 내재적인 활동이다. 하느님의 내재적인 생명은 삼위일체에 있어서의 생명인 것이다. 성부(聖父)는 영원한 로고스 곧 ‘말씀’을 낳는다. 그리고 성부와 성자(聖子)는, 셰벤(M.J. Scheeben, 1835-1888)에 따르면, “이들 공동의 마음의 절대적인 일치 또는 가득참으로부터 이런 일치를 제3의 위격으로 옮겨가서, 서로의 사랑을 절대적인 효력을 가지고 나타내 준다.”고 말하였다. 이리하여 제3위 곧 성령(聖靈)에 있어서 하느님의 생명의 순환이 완결된다. 인간의 초자연적인 생명은 이 삼위일체의 내재적인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생물학적인 개념의 생명론(生命論)이나 최근 핵단백질에서 찾는 생명의 기원과 그리스도교 신앙과의 관련에 있어, 성서 특히 창세기의 생물생성 기사에 대하여는 이미 다윈의 진화론에서 극복되어 있으므로, 이런 점에다 문제의식을 품는 것은 과거 일이 되어 버렸다. 설혹 장차 무생물로부터 인공적으로 완전한 생물을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시간·공간적이 존재인 생물의 기원이 창조주에게 의거한다는 것을 반박하는 증명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참고문헌] W. Eichrodt, Theology Old Testament, tr. J.A. Baker, Philadelphia 1961; Man in the Old Testament, tr. K. and R. Gregor Smith, Chicago 1951 / E. Schrodinger, What is Life?, Cambridge, Mass. 1963 / A. Portmann, New Paths in Biology, tr. A,J. Pomeans, New York 1964.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새벽

서울 대교구의 월간 기관지 <새벽>은 원래 1972년 1월 30일 란 이름으로 창간되었다. 창간 목적은 1970년대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민족의 복음화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소식을 교환하고, 이로써 서로간의 이해와 사랑을 돈독히 함과 동시에 공동선에 도달하도록 하자는데 있었다. 19cm×26cm 판 4∼6면 체제로 교리 · 윤리 · 전례의 해설, 각 본당 · 수도원 · 액션 단체의 소개, 세미나 · 학술모임 · 신간안내, 제언란을 실었다. 이 외 주교관, 지역구, 사제, 평신도 동정(動靜)에 관해서도 싣고 있다. 1973년 7월호 (8호)부터 1974년 2월호(16호)까지는 제호를 <화해>라고 했다가 그 후 다시 라고 했으며 1975년 3월호(23호) 이후 폐간되었다. 1977년 9월 1일 사목적 요청에 따라 복간되었으며, 1979년 1월호부터는 제호를 <새벽>이라 고치고 그전의 팸플릿에서 책자의 형식으로 체제를 바꾸었다. 1984년 2월 1일 현재 통권 93호를 발해하였다. 편집과 발행은 서울 대교구 홍보국.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