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법인 광주 대교구 유지재단이 민족과 인류의 복음화에 기여할 사제를 양성할 목적으로 1962년에 설립한 신학대학. 이 유지재단은 헨리(Harold W. Henry, 玄) 대주교의 명을 받아 1961년 전라남도 광주시 상무동에 학교부지 9만여평을 확보하여 시설을 완비한 후 1962년 3월 7일 철학과와 신학과 과정의 대건신학교 설립을 인가받고 4월 1일 개교하였다. 1964년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법인명을 대건학당으로, 학교명을 대건신학대학으로 개명하였다. 1969년에는 예수회가 맡고 있던 학교 운영권이 관구주교단에 이양되었고, 1971년에는 대학원이 설립되었다. 처음에 모집대상 신학생은 광주, 전주, 제주(濟州), 대구, 부산 등 교구 신학생 지원자와 살레지오회, 예수회, 프란치스코회 소속 신학생들이었으나, 살레지오회, 프란치스코회, 예수회 신학생들이 가톨릭대학으로, 대구 · 부산교구 소속 신학생들이 선목신학대학으로 각각 전출되어 현재는 광주, 전주, 청주, 제주교구 등 관구소속 신학생 및 그 후 전입해 온 예수고난회, 과달루페회 소속 신학생들이 이 학교에서 수학하고 있다. 부속기관으로는 도서관과 ‘전망’ 편집부가 있고, 정기간행물로는 교지 <새아람>과 계간지 <신학전망>이 발행되고 있다.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 쌍촌동 305번지 소재.
당진본당 [한] 唐津本堂
대전교구 소속 본당. 현 소재지는 충남 당진군 당진읍 읍내리 507로서 본당 주보는 ‘모든 성인’이다. 1970년대에 당시 대전 교구 소속인 합덕본당(合德本堂)은 당진군 내의 10개 공소를 관할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당진면 구룡리가 신자 수 170여 명으로 가장 큰 공소였다. 1939년 5월 교구 사제피정이 끝난 후 당진은 합덕본당 관할에서 분리되었고, 당시 금사리에서 전교하던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프로망투(Emile Fromentoux, 包萬壽) 신부가 초대(1939~1940년) 본당주임으로 부임함으로써 당진본당이 설립되었다.
프로망투 신부는 곧 당진면 읍내리에 있는 그 전 당진 보통학교 대지를 매입하여 성당을 건립하였다.
당진본당의 역대 주임신부와 신자수, 관할 공소수는 다음과 같다.
2대(1941~1946년) 박원영(朴垣英, 프란치스코), 3대(1947~1948년) 이복영(李福永, 요셉), 4대(1948~1950년)는 파리 외방전교회의 코르데스(Marius Cordesse, 孔) 신부로서 6.25동란으로 1950년 8월 22일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9월 23~26일 사이에 살해되었다. 다음 5대(1952~1965년) 본당주임은 유인성(劉寅成, 프란치스코) 신부로서 14년 동안 사목하였는데, 공소 수는 15개였고, 1958년 6월 23일 대전교구의 설정으로 본당소속이 서울교구에서 대전교구로 바뀔 당시 신자 수는 2,451명이었다. 6대(1966~1967년)는 변갑선(卞甲善, 치릴로) 신부로서 당시 관할구역 내 주민인구가 8만 명인데 대해 신자수는 2,500명, 공소수는 19개로 성가수녀회가 진출하여 전교활동을 담당하였고, 부속 유치원 · 중학교 · 진료소 · 고아원 · 신용조합을 운영하는 등 크게 발전된 상태였다. 7대(1967~1968년)는 김순호(金順浩, 프란치스코) 신부로서, 신자 수 2,674명, 공소 수는 19개이며, 8대(1968~1971년)는 구자오(具滋五, 베네딕토) 신부로서 공소수는 그대로이나 신자수는 2,261명으로서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을 보였다. 9대(1972~1976년) 조병기(趙炳起, 바오로) 신부 때인 1973년에는 신자수 1,938명, 공소수 17개, 1975년에는 2,120명, 17개였고, 10대(1977~1980년) 김병재(金丙宰, 바오로) 신부 때인 1977년에는 샤르트르 성 바오로회 대신 거룩한 말씀의 시녀회가 전교활동을 담당했는데, 신자수는 2,275명이고 공소수는 15개로 줄었다. 그 뒤 1년만인 1978년에는 신자수 2,349명, 공소수 16개로 늘었고. 1979년에는 2,354명, 16개, 1980년에는 2,405명, 16개였다. 현재 본당주임은 11대(1981~현재) 장영식(張英植, 토마스) 신부인데 1981년 신자수 2,467명, 공소수 21개, 1982년 2,486명, 20개, 1983년 2,632명, 21개로서 신자 수는 꾸준히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1984년 현재 신자수는 2,680명, 관할 공소수는 21개이다.
당고개 [한] 堂峴
순교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신계동 일대, 즉 현재 용산구청에서 기독교 대한감리회 성산교회에 걸친 지역으로 한양 도성 남부에 위치한 고개 중의 하나. 이곳은 순교선열의 피로 적셔진 거룩한 땅으로 서소문 밖 네거리, 새남터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성인을 탄생시킨 영광의 땅이다. 당고개에서 맨 처음 순교한 사람이 누구인지 기록은 없다. 다만 기해박해 때 첫 순교자를 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고개에서 순교한 사람들은 주로 한양 도성 남부에서 체포당한 수많은 교우들이며 이들 중 9명은 시복 · 시성되었다. 당고개는 오랫동안 교우들의 머리속에서 잊혀져 왔고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맞아 한국 교회를 이끌어 나갈 원동력이 순교정신임을 인식, 그 영광의 땅을 되찾으려는 과정 속에서 일반인 교우들에게 알려졌다. 당고개에서 순교한 성인 10명은 1840년 1월 31일의 권진이(權珍伊, 아가다), 이경이(李瓊伊, 아가다), 이인덕(李仁德, 마리아), 박종원(朴宗源, 아우구스티노), 홍병주(洪秉周, 베드로), 손소벽(孫小碧, 막달레나), 2월 1일의 홍영주(洪永周, 바오로), 이문우(李文祐, 요한), 최영이(崔榮伊, 바르바라) 등이다.
답문신편 [한] 答問新編
1880년 중국 상해에서 간행된 호교서로 저자는 중국인 신부 이체(李杕, 1840~1911). 내용은 중국인들이 천주교에 대해 품고 있던 의문점에 대한 설명으로 대화체의 문장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본문의 등장인물 중 매영생(梅嶺生)은 천주교인으로, 임소암(林小巖)은 외교인으로, 임소암이 묻고 매영생이 대답하는 형식을 취하여 천주교의 일반 상식에서부터 주요교리까지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연대 미상의 한글역 필사본이 전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