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를 통하여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 참회자가 개별적으로 고해신부 앞에서 죄의 고백을 하는 일. 이는 고해성사에 있어서 고백의 원칙적인 모습이며, 오늘날 특수한 상황하에서 공동사죄를 베푸는 공동참회와 구별된다. 사적고백이 과거에는 초대교회의 몇몇 지역에서 일정한 죄를 지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받은 참회자가 이행하던 공동참회와 구별되는 개념이었다. 비밀스런 죄의 사적고백은 공개된 죄의 공동참회와 더불어 초대교회에서 비롯되며 교황들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도시대에서 유래된다.
사육제 [한] 謝肉祭 [영] carnival
어원적으로 carnival은 ‘caro valens'(고기를 잔뜩 배불리 먹다)로 볼 수 있으며, ‘carnevale’ 혹은 ‘carnem levare’로 정반대의 의미인 육식(肉食)을 끊어 버린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사육제는 12월에 있었던 로마시대의 이교적인 농신제(農神祭)에서 그 기원을 찾아 볼 수 있으며, 가톨릭 국가에서 사순절(四旬節) 동안의 단식 · 금육 등의 절제생활을 앞두고 그 이전에 실컷 먹고 마시며, 즐겁게 논다는 의미로 시작되었다. 초기 사육제는 주의 공헌 축일에서부터 사순절 전날인 화요일까지 계속되었다. 역대 교황들이 이를 6-7일로 한정시켜 보통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직전 3일이나 1주일 동안 여러 가지 경기나 춤과 노래, 가장무도회 등이 베풀어진다. 현재 각 대학에서 행해지는 연례적인 축제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육제는 거의 세속적인 축제가 되어버려 이 기간 동안 큰 소동이 일어난다. 사육제 동안의 폭음과 폭식 등 무절제한 생활을 속죄하기 위해 성체현시(聖體顯示)의 전례가 곳곳에서 거행되기도 한다. 로마, 트리노, 밀라노, 플로렌스, 나폴리, 리오 등의 사육제가 특히 유명하다.
사유재산 [한] 私有財産 [영] private property [독] Privateigentum [관련] 재산권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자연으로부터 재화를 획득해야 한다. 이 재화를 인간이 지배하는 것을 소유라 부르고, 한 개인이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것을 사유(私有)라고 부르며, 사회구성원이 공동으로 소유할 때 공유(共有)라 한다. 사유재산이란 사유의 대상이 되는 재화를 말한다. 사유재산은 사유의 발생과 더불어 생기며, 사유는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나타난 역사적인 산물이다. 인간이 채취 · 수렵 · 어로를 생활수단으로 삼던 시기에는 소유라는 것이 없었다. 그 후 생산력이 발전함에 따라 끊임없이 의식주를 찾아 헤매던 유랑생활을 청산하고 일정한 지역에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인간은 생산한 곡식을 저장해 두거나 가축을 공동으로 사육하게 되는데 이때에 비로소 소유라는 것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때의 소유형태는 아직 사유의 형태가 아니라 공유의 형태를 띤다. 생산력의 발전이 더욱 진전하게 되면 한 사람의 노동 중에서 그 사람과 그의 가족에게 필요한 만큼의 재화를 생산하고도 남는 부분이 생길 수준에 이르게 된다. 이 때 비로소 한 개인이 사회의 다른 구성원에 대해 배타적으로 재화를 점유하는 사유의 형태가 발생한다. 사유의 발생과 더불어 원시 공동체 사회는 점차 붕괴되고 고대 노예제사회로 이행하게 된다. 노예제 사회에서 귀족의 사유 재산은 노예 노동을 기반으로 형성되며, 노예조차도 귀족의 사유재산이 된다. 그러나 노예제 사회에서도 아직까지 원시 공동체의 공유형태가 목초지나 삼림 등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그 뒤 중세 봉건제를 지나 근대 자본제 사회에 이르게 되면, 사유재산은 광범한 것으로 된다. 근대적인 사유재산은 소유권을 가진 자의 소유물에 대한 전면적인 지배가 허용되며, 사유재산의 보호는 사회의 법체계에서 근간(根幹)을 이루게 된다. 즉 헌법에 의해 사유재산은 보호되고, 만일 이것이 침해받을 경우 형법에 따라 형벌을 가하고, 민법에 의거하여 손해 배상하도록 되어 있다.
가톨릭 교회는 사유재산의 불가침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유재산도 사회성이 있으며 만민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그 재화는 정의와 사랑의 원리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흘러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어머니와 교사, 43)고 말하고 있다. (⇒) 재산권
[참고문헌] 요한 23세, 어머니와 교사, 1961 / 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촉진에 관한 회칙, 1967 / 사회정의, 가톨릭출판사, 1976 / 사목헌장 71항.
사유교회 [한] 私有敎會 [라] Ecclesia propria [독] Eigenkirche
영주나 개인의 소유로 되어 있는 성당 또는 교회. 3세기경 교회의 성직자들이 속인들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했기 때문에 속인들이 사유교회를 만들어 이에 대항한 데서 유래한다. 봉건시대인 9-10세기에 가장 크게 발전하였으며 개인의 토지 위에 세워진 교회는 그 모든 세속적인 권리(양도, 기부금에서의 수입)와 영적인 권리(성사집행, 사목 등)가 지주나 영주에게 돌아갔고, 이를 처리할 권한이 주교에게는 전혀 없었다. 사유교회제도는 미구에 서구 전역과 로마 민족의 지방까지 뻗어나갔으며, 교회 질서 전반을 변형시켰고 사목과 교회 행정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사우어 [원] Sauer, Bonifatius
Sauer, Bonifatius(1877∼1950). 주교. 덕원(德源) 성 베네딕토 대수도원장, 초대 원산교구장, 순교자. 한국성(姓)은 신(辛). 독일 홀타 교구의 한 독실한 교우가정에서 출생하여 전통적인 신앙교육을 받고 성장하였다. 오틸리엔 성 베네딕토회에 입회, 1900년 수사허원을 하고 1903년 사제로 서품되어 수사신부로 수도생활에 전념하다가 1909년 오틸리엔 성 베네딕토회가 한국에 진출하게 되자 선교사로 한국에 입국, 서울 혜화동(현 가톨릭대학 자리)에 수도원을 세워 원장에 취임하였고 1913년 수도원이 대수도원(Priorat)으로 승격됨과 동시에 초대 아빠스(Abbas, 대수도원장)로 승품되었다. 그 뒤 수도원내에 철공, 목공, 원예를 가르치는 전수(專修)학교 등을 세워 교육사업을 위주로 전교하던 중 1920년 함경남북도와 북간도 지역을 관할하는 원산 교구가 서울교구로부터 분할, 독립되고 성베네딕토회가 원산교구를 담당하게 되자 초대 교구장에 임명되어 이듬해 5월 1일 주교로 성성되었다. 이에 따라 임시로 원산본당에 머무르면서 혜화동에 있던 수도원과 신학교를 원산 부근의 덕원으로 옮기고 수도원 신축공사에 착수, 1927년 완공하였고, 1928년 연길(延吉)교구를 분할, 독립시킨 후 교세 신장에 주력, 신고산(新高山), 덕원, 고원(高源), 영흥(永興), 함흥(咸興), 서호진(西湖津), 회령(會寧), 경흥(慶興) 등에 본당을 창설하는 한편 해성학교와 병원을 세워 교육, 의료사업을 벌였고 덕원수도원내에 인쇄소를 설치, ≪교리문답≫, ≪미사경본≫, ≪가톨릭성가≫ 등 각종 교회서적을 출판하였다.
1949년 5월 9일 수도원장 로트(Roth, 洪秦華) 신부, 부원장 실라이허(Schleicher, 安世明) 신부, 신학교 교수 클링사이즈(Klingseis, 吉)신부 등과 함께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체포되어 원산감옥에 수감되었다가 평양으로 이송되었고 이듬해 2월 7일 평양감옥에서 옥사, 순교하였다.
[참고문헌] 韓龍煥, 徐相堯, 福音의 證人,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