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자전 [한] 致命者傳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서울에서 순교한 28명의 전기(傳記)로 전문(傳聞)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목격증인의 증언에 의해 필사(筆寫)되었다. 수록된 28명 중 27명이 ≪치명일기≫(致命日記)에 수록되어 있으나 ≪치명자전≫만큼 자세하지는 못하다. 28명의 각 전기 밑에 “보았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증언자는 순교자들과 함께 투옥되었던 인물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고, 또 정의배(丁義培) 부부와 직접 간접으로 관련된 순교자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은 증언자가 정의배와 가까웠던 교회의 지도급 인물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치명일기 [한] 致命日記

1866년 병인년(丙寅年)에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천주교인에 대한 박해로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의 명단과 그 약전(略傳)을 수록한 책자. 책 크기는 가로 14.8㎝, 세로 21㎝이며 162페이지. 이 책은 조선교구의 제8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뮈텔(Mutel, 閔德孝) 주교가 1891년 2월 11년 만에 서울에 다시 들어오자마자 1866년 병인년(丙寅年) 이후 거듭된 박해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순교자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일에 착수, 4년동안 전국에서 모은 순교자들의 행적을 지역적으로 정리한 뒤 1895년 ≪치명일기≫라는 이름으로 서울에서 인쇄하여 전국 본당에 배포한 것이다.

뮈텔 주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자는 병인박해로 말미암아 목숨을 잃은 숱한 순교자들 가운데 모범되게 순교한 사람들을 뽑아 장차 이들을 성인품에 올리기 위해 확실한 증거를 얻고자 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따라서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를 비롯한 프랑스인 성직자와 조선인 순교자들의 출생지 및 신앙상태, 잡힌 날짜와 장소, 치명일자와 장소 및 나이를 지역별로 일련번호를 붙여 엮었다.

총 877명의 순교자를 수록한 이 책자와, 1839년 기해년(己亥年) 순교자의 경우처럼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일성록>(日省錄) 등 관변문서에 나타난 기록 등을 근거로 하여 26명을 시복 수속하였는데 그 가운데 2명만이 탈락되고 24명이 1968년 복자위에 올랐으며 다시 1984년 5월 성인품에 오르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치명 [한] 致命 [관련] 순교

한국 천주교회가 박해를 당하던 시기에 교우들에 의해 만들어진 말로 원 뜻은 목숨을 버린다는 의미였으나 종교적으로 사용되어 순교(殉敎)를 의미하였다. (⇒) 순교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치마부에 [원] Cimabue

Cimabue(1240∼1302?). 이탈리아 피렌체 화파(畵派)의 시조. 일반적으로 그의 작품으로 인정되는 대표작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의 벽화 <그리스도 책형(磔刑)>과 <성모자와 4천사 및 성 프란치스코>. 이 작품들은 아직 비잔틴 화풍을 남기고 있지만 늠름한 조형 의욕과 인간의 감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1272년에 로마에 있었고, 1301년에는 피사에서 산타 키아라 성당의 성모자상(聖母子像)을 그렸다는 것과 그 해부터 이듬해에 걸쳐 피사 대성당에 모자이크 장식으로 <세자 성 요한상>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대의 시인 단테의 ≪신곡≫(지옥편)에는 “그림에서는 치마부에가 패자(覇者)의 자리를 지키는 줄 알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지오토의 명성만이 높고 그의 이름은 희미하게 되었다”라고 쓴 것으로 미루어 그가 지오토 이전의 화단에서 이름을 떨쳤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지오토의 스승이라고 하나 확증은 없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치마로사 [원] Cimarosa, Domenico

Cimarosa, Domenico(1749∼1801). 나폴리의 작곡가. 나폴리 부근의 아베르사 태생. 나폴리 및 로레토에서 음악교육을 받았다(1761∼1772년). 그의 처녀 오페라작품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