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트전례 [한] ∼典禮 [영] Celtic rite

고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사용했던 전례양식. 다른 전례양식과의 차이점은 부활절 행사, 세례주는 법, 삭발 등이다. 13세기 이후 이 전례를 사용하는 곳은 없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켈트교회 [한] ∼敎會 [영] Celtic church

켄터베리의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us, ?∼604)가 로마에서 건너가 선교활동을 하기 전 영국에 있었던 교회를 가리킨다. 켈트교회가 성립된 시기는 대체로 2세기경일 것으로 추정되며, 로마나 골(Gaul) 지방에서 선교하였고 4세기에 이르면 상당한 발전을 보여, 314년의 아를르 교회회의(Synod of Arles)와 359년의 아리미눔 교회회의(Council of Ariminum)에 대표자를 파견하기도 하였다. 켈트교회는 유럽교회와 긴밀한 유대를 맺었고,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 지방에 선교사들을 파견하였으나 5세기 색슨족의 침입을 받아 켈트문화와 함께 소멸되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케리그마 [영] Kerygma [그] Kerugma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방을 얻고, 그를 통해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할 수 있다는 설교나 선언의 내용, 혹은 선언하는 행위를 케리그마라고 한다. 이 말은 케뤼소(Kerusso)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다. 케뤼소란 그리스어로 ‘선언하다’라는 의미를 가지며 신약성서에서는 ‘하느님의 나라’, ‘성서가 예언자를 통해 이미 약속한 복음’(로마 1:2)을 목적으로 하여 61회나 사용되었다. 미루어 보건대 케리그마란 하느님의 심부름꾼(Kerux)이 일정한 소식(하느님의 날, 혹은 복음)을 대중에게 선포하는 행위, 혹은 그 내용이다. 케리그마의 중심되는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마르 1:14), ‘믿을 만한 진실’(로마 10:18), 단순히 ‘말’(logos, word, 사도 17:11)로 표현되었다. 케리그마가 포함하는 바는 그리스도의 일생과 그에 의한 해방과 구원이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부활과 심판을 위한 재림을 암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이었다. 초기의 케리그마 선포자(Kerux)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업적을 이야기하면서, 그리스도의 투쟁 · 고통 · 죽음 · 부활 · 인류의 구원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였다. 이것은 결국 하느님이 지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몸소 인간의 모습으로 인류의 역사에 개입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였다. 또한 구약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됨과 동시에 그를 통해 새로운 공동체적 종말론적 운명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선포자들은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 하느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으라고 촉구하였다.

케리그마의 내용을 요약하면 ① 구약시대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고 새로운 메시아의 시대가 도래하였다(사도 2:16, 3:18 · 24). ② 예수는 다윗의 자손(사도 2:30-31)으로 하느님은 예수를 통해서 이스라엘민족 가운데서 그의 힘을 드러내 보이고, 기적을 행하여 예수가 하느님이 파견한 자임을 알게 하였으며(사도 2:22, 3:22) 하느님의 예지와 계획에 의해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혔고(사도 2:23, 3:13-14) 다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였다(사도 2:24-31, 3:15, 4:1). ③ 부활을 통하여 예수는 그리스도로서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는 영광을 드러내 보였다(사도 2:33-35, 3:13, 4:11, 5:31). ④ 교회에서의 성령은 그리스도의 힘과 영광의 표징이다(사도 2:33, 5:32). ⑤ 그리스도는 메시아시대의 완성을 위해 재림한다(사도 3:21, 10:42). ⑥ 회개를 통해 죄의 사함과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사도 2:38-39, 3:19)는 것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케리그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세사적 전기(救世史的 傳記)라고도 할 수 있다. 2세기경 호교론자들은 그리스도교 비방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케리그마의 내용을 수정하였다. 그 뒤 교부시대에는 성서의 케리그마적 접근방법을 무시했고, 신학 연구에 재도입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러한 경향은 신앙의 신비와 효과적이고 동적(dynamic)인 신앙의 실현을 중시하는 신학의 조류에 따른 현상이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케리그마 [영] Kerygma [그] Kerugma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방을 얻고, 그를 통해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할 수 있다는 설교나 선언의 내용, 혹은 선언하는 행위를 케리그마라고 한다. 이 말은 케뤼소(Kerusso)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다. 케뤼소란 그리스어로 ‘선언하다’라는 의미를 가지며 신약성서에서는 ‘하느님의 나라’, ‘성서가 예언자를 통해 이미 약속한 복음’(로마 1:2)을 목적으로 하여 61회나 사용되었다. 미루어 보건대 케리그마란 하느님의 심부름꾼(Kerux)이 일정한 소식(하느님의 날, 혹은 복음)을 대중에게 선포하는 행위, 혹은 그 내용이다. 케리그마의 중심되는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마르 1:14), ‘믿을 만한 진실’(로마 10:18), 단순히 ‘말’(logos, word, 사도 17:11)로 표현되었다. 케리그마가 포함하는 바는 그리스도의 일생과 그에 의한 해방과 구원이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부활과 심판을 위한 재림을 암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이었다. 초기의 케리그마 선포자(Kerux)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업적을 이야기하면서, 그리스도의 투쟁 · 고통 · 죽음 · 부활 · 인류의 구원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였다. 이것은 결국 하느님이 지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몸소 인간의 모습으로 인류의 역사에 개입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였다. 또한 구약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됨과 동시에 그를 통해 새로운 공동체적 종말론적 운명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선포자들은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 하느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으라고 촉구하였다.

케리그마의 내용을 요약하면 ① 구약시대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고 새로운 메시아의 시대가 도래하였다(사도 2:16, 3:18 · 24). ② 예수는 다윗의 자손(사도 2:30-31)으로 하느님은 예수를 통해서 이스라엘민족 가운데서 그의 힘을 드러내 보이고, 기적을 행하여 예수가 하느님이 파견한 자임을 알게 하였으며(사도 2:22, 3:22) 하느님의 예지와 계획에 의해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혔고(사도 2:23, 3:13-14) 다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였다(사도 2:24-31, 3:15, 4:1). ③ 부활을 통하여 예수는 그리스도로서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는 영광을 드러내 보였다(사도 2:33-35, 3:13, 4:11, 5:31). ④ 교회에서의 성령은 그리스도의 힘과 영광의 표징이다(사도 2:33, 5:32). ⑤ 그리스도는 메시아시대의 완성을 위해 재림한다(사도 3:21, 10:42). ⑥ 회개를 통해 죄의 사함과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사도 2:38-39, 3:19)는 것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케리그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세사적 전기(救世史的 傳記)라고도 할 수 있다. 2세기경 호교론자들은 그리스도교 비방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케리그마의 내용을 수정하였다. 그 뒤 교부시대에는 성서의 케리그마적 접근방법을 무시했고, 신학 연구에 재도입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러한 경향은 신앙의 신비와 효과적이고 동적(dynamic)인 신앙의 실현을 중시하는 신학의 조류에 따른 현상이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케넬주의 [한] ∼主義 [영] Quesnellianism

프랑스의 얀센주의자인 케넬(P. Quesnel, 1634∼1719)의 은혜에 관한 학설.

예수회원으로 파리의 소르본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케넬은 1672년 ≪복음의 교훈 요약≫(Abrege de la morale de 1’Evangile)을 마른의 주교 샬롱(Chalons sur Marne)의 서문을 실어 출판하였다. 이 책은 후에 ≪도덕적 반성≫(Refiexions morales)이라는 이름으로 증보(增補)되어 출간되었는데 케넬은 여기서 형식화된 영성을 비판하고 진정한 그리스도교인의 삶을 위해서는 성서를 세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1675년 케넬의 저서는 갈리카니즘(Gallicanism)에 빠져 있다고 판정되어 금서 목록에 수록되었고, 그는 얀센주의자로 단죄되었다. 1710년 루이 14세의 추방명령에 따라 그는 프랑스에서 쫓겨나 오를레앙, 브뤼셀 등지로 전전하다가 마침내 네덜란드로 탈출하여 그 곳에서 이교적(異敎的) 교회까지 세워 자신의 이론을 옹호하다가 일생을 마쳤다.

그의 은혜에 관한 설은 교회 안에만 하느님의 은혜가 내리고, 교회 밖에는 은혜가 주어지지 않으며, 은혜를 받지 못한 인간은 어떤 선(善)도 행할 수 없고, 죄인의 행위는 모두 죄에 속하기 때문에 죄인은 기도를 하거나 미사에 참여하여도 그것이 모두 죄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데 그 특색이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