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상시오 [관련] 요셉 칼라상시오

⇒ 요셉 칼라상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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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데아전례 [한] ∼典禮 [영] Chaldean rite [관련] 동방전례

동방시리아 교회에 근원을 갖고 고대 네스토리우스파의 후예로서 14세기에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한 동부시리아 합동 동방 가톨릭 교회의 전례를 지칭한다. 칼데아란 말은 동방의 다른 네스토리우스파와 구별하기 위해 16세기부터 상용되었다. 현재 이라크, 이란, 팔레스티나, 레바논, 이집트, 시리아, 터키 등지의 가톨릭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인도의 시로-말라바르 가톨릭 교도들도 사용한다. 서부 시리아 전례라고 불리는 안티오키아 전례에 대응하여 동부 시리아 전례라고도 불린다. 교황청의 동방교회성성은 칼데아 전례를 독립된 별개의 전례로 인정, 공식적인 전례 용어로 고대 시리아어를 사용하며 그레고리오력을 따르고 있다.

이 전례는 주로 안티오키아 전례에서 채택된 것이나 독특하게 구성되어 있다. 지성소(至聖小, sanctuary)는 높은 벽으로 밀폐되어 있고, 미사 성제를 거행할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닫혀져 있다. 미사는 제단 아래에서 감사 기도, 빵과 포도주의 봉헌, 삼성송(三聖誦, trishagion)으로 진행, 이어 서간과 복음낭독, 예비자들을 위한 기도가 있고, 신자들과의 미사는 사제가 손을 씻는 것으로 시작된다. 두 번째 봉헌(제물 준비)이 있고 주님과 성모 마리아, 성인들, 죽은 영혼들을 기억하는 기도가 이어진다. 입장기도와 신경을 외고 대입장식이 거행된다. 장엄한 행렬로 제단에 다가와 평화의 입맞춤을 하고 미사 전문(典文) 즉 감사송과 빵과 포도주의 축성, 중재기도, 성령께 드리는 기도가 뒤따른다. 영성체는 거양성체, 주의 기도, 감사의 기도, 축복 후에 행해진다. 그 방법은 축성된 제병의 작은 조각을 축성된 포도주에 적셔서 하는 것이다. (⇒) 동방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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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푸친회 [한] ~會 [라] Ordo Fratrum Minorum, Capuccinorum, Capuccini [영] Capuchin Franc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창설한 ‘작은 형제회’(O.F.M.)의 한 독립적인 가족. 엄격주의자들이나 프란치스코회 내의 다른 많은 개혁운동들이 그렇듯이 창설자의 수도회칙을 문자 그대로 엄격히 지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탄생하였다. 카푸친(Capuccino) 개혁운동은 1525년초 이탈리아에서 바시오(Matteo da Bascio, ?~1552)가 시작, 그는 첫 카푸친 수도회회의에서 초대 총장으로 선출되었다(1529년). 수도회는 교황 글레멘스(Clemens) 7세의 대칙서 (1528)에 이어, 교황 바오로(Paulus) 3세에 의해 정식으로 인가되었다(1536년).

카푸친회는 은둔적 생활을 하는데, 특히 활동과 관상 사이의 완전한 균형을 중시하였다. 가톨릭 개혁시기에는 예수회와 함께 교황청을 도와 최일선의 선교사업에 참가하여 프로테스탄티즘의 진전을 막았으며 17세기에는 이미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지로 진출하였다. 카푸친이란 이름은 아탈리아어로 이들 수도자들이 입고 있던 수도복에 달려있는 세모의 두건(頭巾) 모양에서 유래하였다. 1938년말 현재 1만 1,800명의 회원이 있다. (⇒) 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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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바 [라] Catacombae [영] catacomb

초대 교회시대 그리스도 교인들의 지하묘소, 박해 때에는 피난처로 사용했고, 여기서 전례를 행하였다. 로마의 전형적인 묘이긴 하지만 나폴리나 시칠리아, 북아프리카, 소아시아, 파리 등지에서도 그 유적이 발견된다. 이 말은 묘지를 의미하는 coemeterium과 동의어(同義語)이지만 coemeterium이 모든 묘지를 지칭하는 것임에 비해 catacombae는 그 중에서도 특히 그리스도 교인의 무덤을 가리킨다. 지하에 묘를 설치하는 관습이 박해 때문에 생긴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박해에 의해 촉진된 것만은 사실이다. 최초의 카타콤바는 1세기에 설치되었다고 하나 확실한 것은 아니고 2세기초부터 설치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처음에는 가족묘소로 출발했고, 3세기경부터 신자공동묘지(S. Callisto)가 나타난다. 초기의 카타콤바에서는 주로 죽은 이의 이름을 새긴 묘비명(墓碑銘)과 유리그릇, 램프, 주화, 조개껍질, 동(銅)이나 상아로 된 조각 등이 출토되고, 후기의 것에는 죽은 이의 나이와 매장일자를 기록한 묘비명에 그리스도교적 신앙고백과 유족의 기원(祈願)이 적혀 있다. 카타콤바 벽에는 당시 그리스도 교인들의 신앙을 엿볼 수 있는 많은 벽화들이 남아 있다. 즉 초기 신자들의 종말론적 사상을 표현한 그림들이 많다. 중심적인 주제는 대체로 하느님에 의한 구원, 천국에의 희망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것들로 구세(救世), 내세의 신앙, 그리스도의 신성(神聖), 세례, 성체, 죽은 이를 위한 전구(轉求), 모든 성인의 통공(通功)들을 표현하고 있다. 박해시대에 집회소와 피난처로 쓰였던 카타콤바에는 로마에서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이후 그 위에 바실리카가 세워졌고, 8세기경에는 카타콤바에 있던 유해(遺骸)를 도시의 성당으로 운반하게 됨으로서 카타콤바에 일반인의 발길이 끊이게 되었다. 중세시대에는 세인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고, 16세기경에 다시 발견되었다. 라테란 조약(제33조)에 의해 로마 교황청이 카타콤바의 처분권, 감독권, 발굴권, 유해이장권을 가지며, 유지 수리의 의무도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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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파 [한] ∼派 [라] Cathari [영] Cathari [프] Cathares

중세 유럽 여러 지역에서 발흥했던 마니교 분파의 총칭. 카타리파라고 불리는 이유는 자신들을 ‘순결한 사람’(Katharoi)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카타리나는 9세기경 발칸반도와 그 주변 섬에서 형성되었고, 12세기경 상인들이나 십자군 참가자들에 의해 서구에 도입되어 독일,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로 신속하게 퍼져 나갔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세계에는 창조신(創造神)이 둘 존재하는데, 그 하나는 선(善)의 창조신이고, 다른 하나는 악(惡)의 창조신이다. 인간이 사는 현세는 악의 창조신에 의해 지배되는 곳으로 인간의 순수한 영혼도 악의 창조신에 의해 지배되는 육체와 결합함으로써 악을 저지르고 죄악에 빠지게 된다. 이에 선의 창조신인 하느님은 인간이 죄악에서 해방되는 방법과 참된 고향인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그의 천사 중의 하나인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파견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이 죄악의 사슬을 깨고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죄를 짓게 하는 나쁜 물질과의 접촉을 금해야 한다. 결혼, 성교(性交), 육식(肉食), 물질, 재산의 소유 등이 바로 인간을 죄짓게 하는 나쁜 물질이기 때문에 이것들은 배척되어야 한다.

이상과 같은 카타리파의 주장은 복음적이고 청빈적인 교회를 꿈꾸던 많은 급진적인 개혁가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순박한 민중들에게 그리스도교적 금욕주의의 이상형을 제시함으로서 많은 추종자들을 확보하였다. 그들은 교회식으로 단체를 조직하고, 교계제도와 교구제도를 만들어 자신들이야말로 가난하고 재물의 소유를 배척하며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이상적인 그리스도 교인이라 자처하면서 가톨릭 교회를 사탄의 회당으로, 사제를 위선적인 죄인으로, 성사(聖事)를 마귀의 산물로, 황제를 사탄의 대리자로, 제후를 사탄의 조수로 규정하였다. 이들 중 프랑스 남부 알비(Albi) 지방에서 활동하였던 알비파는 프랑스 왕권에 반대하여 알비파전쟁(1209∼1229년)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14∼15세기경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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