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카 신부의 한국명. ⇒ 뤼카
유혹 [한] 誘惑 [라] tentatio [영] temptation [독] Versuchung
유혹이란 이 세상으로부터, 육체로부터. 또는 악마로부터 오는데, 일반적으로 설득에 의하여, 또는 어떤 쾌락을 제공함으로써 사람을 죄의 길로 꾀하는 것을 말한다. 이 세상으로부터 오는 유혹은 나쁜 모범의 매력과 동일하게 만들고 싶다는 심리적인 압박이다. 육체로부터의 유혹은, 육체적 또는 정신적인 정욕(情慾)의 자극을 말한다. 그리스도교적으로는 타락한 인간성에는 7가지의 죄의 근원으로 빠져들기 쉬운 자연적인 경향이 있다. 악마의 유혹은 악령(惡靈)의 부추김이나 꼬드김에 의하여 일어나며, 악령은 모든 형태의 탐욕 또는 이기주의를 권하여 사람을 거만하게 만들며, 이 거만 때문에 다른 모든 죄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유혹은 인간이 신에 충실한가의 여부, 또는 신앙이 진실한가 아닌가의 여부를 시련(試鍊, tentatio probationis)함을 뜻한다. 또한 특히 도덕적으로 불완전한 것이나 죄의 길로의 꾐(tentatio seductionis)을 지칭하게 될 경우, 보통 욕정과 의무와의 사이에 싸움이 일어난다.
아담과 그 아내에 대한 뱀의 유혹(창세 3), 욥에 대한 뱀의 유혹(욥기 1, 2), 예수가 경험한 황야의 유혹(마태 1) 등에서 아담이나 욥의 경우는, 시련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으며, 예수와 마찬가지의 시련에 부딪혀 죄를 범하지 않았음은, 유혹에 이긴 승리자의 모습을 보여준다.(히브 4:15). 하느님은 특별한 구령(救靈)의 목적에서 죄의 길로의 유혹을 용인한다(아가 1:2-4, 12). 유혹의 원천인 세상이란 하느님에 적대적인 인간의 환경인 것이며, 유혹에 대한 동의의 위험 때문에 유혹을 의식적, 직접적으로 초래하는 일만은 용서되지 않는다. 외부로부터 일어나는 우혹은 대부분이 욕정과 결부되고 있는데, 이는 방종한 충동에서 죄의 길로의 도발(挑發)을 재촉한다. 도발에 잇따라 감각이 작용하며, 이에 이어서 거절 또는 동의가 일어난다. 유혹은 동의에 의해서 비로소 ‘죄’가 된다(아가 1:14). 그렇지만, 욕정이 없더라도, 외부로부터 착한 의지를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도록 꾈 경우에도 유혹은 존재한다고 본다. 악마는 단적으로 말해서 ‘유혹자’(誘惑者)인 것이다(마태 4:3, 에페 6:11, 1베드 5:8). 하지만, 악마는 다만 간접적으로만 자유로운 인간에게 작용하는 것이지, 결코 인간을 강제적으로 다루지는 못한다.
인간은 오직 은총의 도움에 의해서만 모든 유혹에 견디어낼 수 있으며, 이런 은총이야말로 책임없이 일어나는 모든 유혹의 경우에 부여된다는 것을 확신할 수가 있다. 각성, 자제(自制) 또는 기도는 유혹을 가장 잘 막아낼 수 있으며, 이는 또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유혹’은 소명의 확신을 얻고자 하는 메시아의 단순한 내적인 체험이 결코 아니라, 공적인 생활의 시초에 있어서의 역사적인 외부사건이다. 사탄은 그리스도를 메시아적인 소명의 길에서 밀어내고자, 교묘하게 사정을 이용하면서 그리스도로 하여금 기적 행사력의 남용, 과시적인 기적에 의한 대중의 획득, ‘이 세상의 우두머리’(요한 12:31)의 손으로부터 주어지는 영광된 메시아 나라의 수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의지에 모순되는 이 시대의 ‘메시아 대망’(待望)에 적응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악마의 요구는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아무런 갈등도 일으키지 못하게 하였으며, 그리스도는 도리어 태연자약하게 이를 물리친다.
가톨릭에서는, 직접 또는 간접으로 고해성사를 이용하여 정결에 반대되는 큰 죄의 길로 사람을 유혹하는 범죄 즉 ‘유혹의 죄’(sollicitation)를 저지른 사제는, 미사 거행과 고백의 청죄(聽罪)에 관한 정지 제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보다 더한 정도의 유혹의 범죄를 저지른 사제는 직위 박탈의 제재를 받는다.
[참고문헌] F. Hense, Die Versuchungen, Aufl. 3, 1902 / P. Ketter, Die Versuchung Jesu, 1918 / W.J. 쌭디, The Temptation of Jesus, London 1920 / Francis de Sales, Introduction to the Devout Life, tr. M. Day, Westminster, Md. 1956.
유혈제 [한] 流血祭 [라] sacrificium cruentum
제물의 피를 흘려 봉헌하는 제사, 이는 제사에 쓰이는 희생제물과 그 드리는 방법 면에서 제사를 구별하여 부르는 개념이다. 구약시대의 유혈제에는 짐승을 제물로 삼아 피흘려 봉헌하였는데 이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었다. 모세는 그 피를 제단과 백성들에게 각각 뿌리면서 “이것을 야훼께서 너희와 계약을 맺으시는 피다”(출애 24:8)라고 예절의 뜻을 설명하였다. 구약의 성조들 및 사제들은 야훼를 흠숭하는 뜻으로(흠숭제), 야훼께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뜻으로(감사제) 제사를 드렸다. 한편 제사는 죄로써 능욕(凌辱)을 받으신 야훼께 바치는 죄인의 흠숭이고 감사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속죄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여기서 인류는 야훼의 엄한 심판을 미리 받는 뜻으로, 또 죄의 대가로서 있어야 하는 죄인의 피흘림을 막아 주기를 비는 뜻으로, 제물의 피를 흘려 바치는 속죄의 제사를 알게 되었다. 유혈제의 제헌의식은 제물을 희생시키는 것과 제물을 바치는 두 의식으로 분리할 수 있다. 이처럼 희생과 제헌을 구별할 때 제헌을 먼저 하느냐 아니면 희생을 먼저 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희생될 제물의 제헌 혹은 희생된 제물의 제헌, 이렇게 두 가지를 나누어 말한다. 구약의 유혈제는 후자의 양식 즉 제물을 죽여서 그 피를 제단 위에 뿌림으로써 제헌하였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는 장차 올 신약의 제사 즉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를 상징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최후만찬 때에(마태 26:26-29)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희생될 제물을, 인류의 속죄를 위하여 피흘릴 제물을 사제로서 봉헌하는 ‘제헌의식’이며, 갈바리아산 위의 십자가상 죽음은 제물을 죽여 피흘리는 ‘희생의식’인 것이다. 이는 구약의 유혈제와는 달리 먼저 최후의 만찬에서 제헌의식이 뒤따랐으며 양자는 하나의 제사를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또한 “이는 새로 맺는 계약이다” 하심으로써 시나이산의 옛 계약을 대치하였고 인류의 속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흘려질 피로써 맺어지는 새로운 계약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이미 체결되었다. 그리고 “너희들은 이를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인하여 미사성제가 탄생하였다. 교회가 미사성제로써 제헌하는 그리스도는 주의 만찬 때 이미 제헌된 제물이며 십자가에서 피흘려 희생된 제물이다.
유항검 [한] 柳恒儉
유항검(1756∼1801). 세례명, 아우구스티노, 전주(全州) 출신. 윤지충(尹持忠)의 이종사촌, 윤지충에게서 교리서적을 빌어 보고는 이를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 권일신(權日身)을 찾아가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가성직 제도에 의해 신부의 권한을 위임받은 그는 고향에서 전교에 온 정열을 쏟아 호남지방 교회 창설의 초석이 되었으므로 ‘호남의 사도’(使徒)로 불리게 되었다. 가성직 제도가 교리에 어긋나며 독성행위(瀆聖行爲)가 됨을 깨닫고 이를 시정키 위해 북경주교에게 문의편지를 내게 한 것도 그였다. 이렇게 해서 주문모(周文謨) 신부가 입국하여 지방에 내려왔을 때에는 자기 집에 머무르게 하여 함께 전교에 힘썼다.
따라서 1801년 신유박해 때 전라도지방에서는 그가 제일 먼저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는 형조의 심문에서, 외국인 신부의 입국을 도와 내통하였고, 사교를 믿었을 뿐만 아니라 청나라에 청원서를 냈다는 죄목으로 대역부도(大逆不道)죄를 적용하여 능지처참의 사형언도를 받았다. 그리하여 전주감영으로 다시 이송되어 1801년 10월 24일 참수되었는데 그의 나이 46세였다. 달레(Dallet)는 그를 순교보다는 배교 쪽으로 보고 있으나 모두 확실하지 않다. 부인 신희(申喜), 큰아들 유중철(柳重哲), 며느리 이순이(李順伊), 둘째 아들 유문석(柳文碩), 동생 유관검(柳觀儉) 등이 처형되었다. 나이 어린 세 자녀는 유배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