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단체 [한] 宣敎團體 [라] societates missionariae [영] missionary societies [관련] 사도직회

포교지에 대한 선교를 전담하는 단체. 주로 외방(外邦) 선교단체들을 말하는데 이들 단체들은 교구사제들로 구성되며 파견 전에는 주교회의가 이를 관할한다. 한국에는 가장 먼저 진출했던 파리 외방전교회(프랑스)를 비롯하여 성골룸바노회(에이레), 과달루페 외방선교회(멕시코), 메리놀 외방전교회(미국) 등이 현재 활동하고 있으며, 1975년 2월에는 한국 외방선교회가 발족하여 1981년 11월에 한국 교회사상 처음으로 파푸아 뉴기니로 진출하였다. (⇒) 사도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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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한] 宣敎 [라] missiones [영] missions [관련] 복음화

선교는 파견이란 뜻을 지닌 라틴어(missio)에서 따온 말이다.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으로부터 파견을 받은(요한 3:16)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고 부활한 당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또한 세상에 파견하였다(마태 28:18-20). 교회는 인류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세상 어디서나 그 증인이 되어야 한다. 이처럼 성부의 계획을 따라 성자의 파견과 성신의 파견에서 그 기원을 이루고 사명을 부여받은 교회는 특히 복음의 전파자들을 파견하여 온 세상에 가서 복음전파의 임무와 아직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백성들과 집단에 교회를 부식(扶植)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 임무를 수행하는 사업을 선교라 한다(선교교령 6). 그러므로 선교는 교회의 본질 자체에서 흘러나온 임무이며(선교교령 6) 교회 설립자의 예수 그리스도의 명(마르 16:15)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이라도 복음적 진실을 받아들이고 복음 정신에 따라 스스로의 생활을 변화시키려면 참된 회개, 즉 내적(內的) 쇄신이 필요하다. 이러한 내적 쇄신을 사람들 가운데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가 먼저 쇄신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복음선포와 증거행위를 통하여 교회는 본연의 선교적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교회가 선포하고 증거하는 내용의 책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실현된 하느님의 세상 구원이다. 사람이 되어 죽었다가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의 선물인 구원이 이루어졌음을 알리는 것이다. 이러한 선교의 내용을 현대인에게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하여 복음이 뿌려질 토양과 토질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복음 선포지역의 사회, 문화, 종교 등과의 꾸준한 대화가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하느님의 말씀을 토착화시키는 일은 선교의 중요한 과제이다. 그 뿐 아니라 설교와 성사집행을 하기 전에, 선교지방에서 교육사업, 의료사업, 자선사업 등 사회개발에 유익한 활동을 전개하여 많은 비신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교회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사업을 예비선교라 하고 설교와 성사집행을 직접선교라 부르기도 한다.

선교의 대상인 인간의 궁국목표는 영원한 생명인 하느님 자신에게 있지만 이 목표에 이르는 과정은 현세 안에 있으며, 인간은 영혼과 육체를 가진 존재이고, 현세에서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인간의 본질 뿐 아니라 시공의 제약을 받는 속성과 상황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은 구체적 인간을 구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영혼 뿐 아니라 그 육신과 아울러 그 존재의 상황까지 구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사야 예언서(61:1-2)를 인용하여 당신의 복음이 인간 해방의 복음임을 선포하였다(루가 4:18-19).

그러므로 선교의 대상에는 인간이 이루는 여러 가지 관계, 즉 가정, 사회, 국가 그리고 인간의 업적인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가 포함된다. 그러므로 예비선교는 직접선교의 보조수단이 아니라 바로 복음화의 일환인 것이다(사목헌장 42항 참조).

선교가 지향하는 목적은 인간을 해방시키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며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지만 사회적 구조로 본다면 독립된 그리스도교적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있다. 이렇게 설립된 교회가 새로움과 젊음을 유지하여 세상의 빛과 누룩이 되도록 선교활동을 계속해야 하며 아직 밖에 있는 각 개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의무가 남아 있다(선교교령 6). “선교활동의 기간은 주님의 최초의 내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이며”(선교교령 9) “주께서 오실 때까지는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선포되어야 한다”(마르 13:10 참조). (⇒) 복음화

[참고문헌] 200주 사목회의 의안(초안), II. 선교,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사목회의위원회, 1983 / 제2차 바티칸 공의회문헌, 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1969 / Joseph Masson, Missions, Sacramentum Mundi, Burns & Oates,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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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공 [한] 善功

일반적으로 착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을 통틀어서 가리키지만, 천주교에서는 ‘선행'(善行) 또는 ‘선업'(善業)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거나, 신앙심의 노력이나 업적을 뜻할 때도 쓰이는 말이다. 그렇지만 엄격히 보면, 이 ‘선공’이란 ≪한불자전≫(韓佛字典)의 풀이에 따를 경우, ① 적선(積善), 또는 적선사업 즉 자선(慈善)사업을 지칭할 때의 ‘선업'(bonne oeuvre, bonnes oeuvres)을 뜻하며, ② 존경할만한 행동 또는 업적(oeuvre meritoire)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그래서 ‘성로선공'(聖路善功)이라고 하면 ‘십자가의 길’을 가리킴이다. 1801년 신유(辛酉)박해 때 배교한 최해두(崔海斗)의 <자책>(自責)이라는 글에 의하면 “영혼이 결정(潔淨)하여 주 강림하사 총광(寵光)을 잃지 않으면, 자연 선공에 부지런하고 스스로 낙(樂)이 나려니와” “이러므로 성현의 선공하신 일을 보건대” 또는 “선공하신 자의 자취를 보니” 등 ‘선공’이라는 말을 주로 존경할만한 행동 또는 찬양할만한 업적의 의미로 쓰고 있다.

그러나 이 용어를 적선 또는 자선의 뜻으로 사용할 경우 그리스도의 말씀에 바탕을 둔 애덕(愛德)의 7가지의 실천사항 즉 ①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②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고, ③ 벗은 자에게 옷을 입혀 주고, ④ 집 없는 자에게 머무를 곳을 제공하고, ⑤ 병자를 방문하고, ⑥ 감옥에 있는 자를 방문하고, ⑦ 죽은 자를 장사지내 주는 일 모두가 ‘자선사업’ 즉 ‘선공’에 속하는 일이 된다. 본래 가톨릭 교회가 덕을 중시하게 됨에 따라 자선은 중요 덕목의 하나가 되었다. 칼빈은, 가톨릭적인 덕을 비탄하고 자선에 대하여도 비판적이었지만, 이윽고 프로테스탄트 교회도, 신앙의 당연한 귀결로서 사회구제의 모든 활동을 활발히 실행하게 되었다. ‘선공’이라는 옛말의 의미내용 속에는 이렇게 덕의 관념과 부합되는 ‘자선’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고, 보다 광범한 의미에서 존경할만한 행동이나 업적을 모두 이 말로써 표현하였다.

[참고문헌] 순교자와 증거자들, 韓國敎會史硏究所,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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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한] 善 [라] Bonum [영] Good

1. 서론 : 선(善)은 동양에서는 추상적이고, 독립된 개념은 없고 주로 윤리적인 평가개념으로 사람과 관계되는 말에 붙어서 쓰인다. 우선 착하다는 뜻으로 ‘선야'(善也)이고 길하다는 뜻으로 ‘길야'(吉也)이며 많다는 뜻으로 ‘다야'(多也)이고 좋다는 뜻으로 ‘호야'(好也), 옳게 여긴다는 뜻으로 ‘선지'(善之)이다. 이러한 뜻으로 선남선녀(善男善女), 선행(善行), 선정(善政), 선심(善心) 등으로 쓰인다. 권선징악이란 말에서 선과 악을 명사적으로 쓰기는 하지만 여기서 선은 불교에서 선심있는 사람에게 보시를 청할 때 쓰이는 말로서 구체적으로 사람을 가리키며, 징악의 악도 악인의 뜻으로 쓰인다.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는 말에서와 같이 선과 악이 순수 추상적인 개념으로 쓰이는 것은 종교를 통하여 서구의 철학적 개념이 도입되면서부터이다.

서구 철학에서는 한 존재의 존재목적 달성에 이로운 것을 말하며 그것은 물질일 수도 있고 윤리적인 질서일 수도 있다. 이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하여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으로, 모든 행동이 지향하는 목표가 되는 것으로 정의된다(니코마쿠스 윤리 I, 1-1094a). 토마스 아퀴나스는 깨닫기에 좋은 것[眞], 느끼기에 좋은 것[美], 행하기에 좋은

것[善]으로 나누어, 첫째를 형이상학적 선이라 하고, 둘째를 심미적 선이라 하고, 셋째를 윤리선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결국 서로 존재에서 융합된다고 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윤리적 선은 인간의 행위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므로 무엇인가를 지향하는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한다. 과연 인간의지는 행동을 유발하고 인간행동은 목적을 겨냥한다. 그러니 선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지향하는 목적과 동일시된다. 한마디로 선은 모두가 좋다고 여기고 지향하는 목적이다(Bonum est quod omnia appetunt). 그런데 좋다고 여기는 것은 사실에서는 생활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전통적으로 실용성에서 생각한 선과 이념적으로 생각한 선으로 구별하여 실용적 선은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 것과(Bonum utile)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쾌락선(快樂善)으로 나누고 실용성과는 상관없이 원리원칙과 합일되는 선 자체를 구별하여 왔다.

2. 개념적 논쟁 : 중세 스콜라철학은 선을 초월적인 개념으로 취급하여 유(有)의 개념과 동일시하였다. 즉 모든 것은 그것이 있다는 점에서 다 같다(unum). 그러니 무엇이든 있다는 것을 포착한 것은 틀릴 수 없는 참이다(verum). 그리고 참인 것 치고 나쁜 것 일 수 없다. 그러니 있는 것은 우선 선이다(bonum). 그리고 모든 사물은 그것이 어떻게 있느냐에 따라 선의 정도가 결정된다. 그런데 ‘있는 것은 선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의 명제는 다분히 형이상학적이다. 있는 것이 내게나 사람에게 좋게 생각되어야 선이라고 할 수 있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야기된다. 이 문제를 놓고 플라톤을 바탕으로 하는 그리스도교적 신플라톤학파인 아우구스티노학파와 프란치스코학파는 선은 좋게 여기는 의지에 그 선성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에서 또 한 가지 문제가 되던 것은 선에 대한 설명에서 논리적으로 나오는 악에 대한 설명이었다. 다시 말하면 선의 기초가 형이상학적으로 ‘유’에 기초를 두었다면 악은 자동적으로 그 결여상태를 말한다는 것으로 악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각 사람이 악을 실제로 체험하고 있으며, 악의 원인을 인간이 자유를 잘못 행사한 것에서 비롯된다고 했는데 그것도 실제 체험에 비추어 썩 맞는 설명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의 합리주의적 윤리에서 선의 객관적 가치를 없애 버리고 ‘지성적 사랑'(amor intellectualis)이란 개념으로 대치시킨 계기가 되었다. 지성적 사랑이란 사물의 본체를 완전히 인식하면 그 인식은 곧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게 되며 그 일치는 우리에게 즐거움과 행복감을 준다는 범신론적 해석이다. 그러니까 스피노자에 따르면 일상생활에서 체험하는 감각적으로 좋은 것은 선도 악도 아니라고 한다. 예를 들어 음악은 감상적인 기분에 있는 사람에게는 좋지만 심적 고통에 몹시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나쁘며 귀머거리에게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합리주의는 반합리주의적인 행동가치의 철학이란 반동을 일으켜 결국 진(眞)과 선의 개념을 분리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선은 뭐니뭐니해도 좋은 것이라야 하는데 감각적이든 윤리적이든 행동의 지침이 되는 것이 선이라는 것이고, 모든 행동을 유발하는 것은 결국 가치라는 것이다. 가치, 곧 선이라는 도식은 칸트에 있어서는 의무수행에서 결정된다. 칸트에 의하면 ‘선량한 의지’외에 달리는 선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고, 그 선량한 의지는 실제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옳게 원한 것이라야 된다는 것이다. 옳게 원하는 것은 원해야 할 것을 원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세기를 통하여 선에 대한 토론은 그치지 않았고 철학자마다 의견을 달리하다가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상황윤리(狀況倫理)에서는 선에 대한 개념자체를 아예 없애 버리고 말았다.

3. 선의 체험 : 문제는 선의 기준을 객관성에 두느냐, 아니면 주관성에 두느냐 하는 오래 묵은 쟁점에 맴돌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가 발굴한 선의 분석은 ‘선이란 올바르게 있음이고 올바르게 있어야 함이다’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니까 존재적인 측면과 당위적인 측면, 이렇게 양면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양면성을 가진 선은 눈에 보이거나 감각으로 들어오거나 하지 않는다. 선은 오직 온 인격을 열고 좋은 것에 순종할 때 체험할 따름이다. 그러나 이 순종하는 체험은 선에로의 초대에 대한 응답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체험이 구체화될 때에는 윤리적인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진리인식에서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이 일치하는 것과 같이 선의 체험에서도 체험자의 인격 안에 영신적인 조화가 일어나게 된다. 진리가 인간지성에 의하여 깨달아짐으로써 진리의 진가가 나타나듯이 선도 선을 체험하는 자의 인격화가 됨으로써 선의 매력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선은 행하여짐으로써 그 진가가 발휘된다. 선이 실천되는 것과는 관계없이 순수 객관적으로 생각되어 오로지 인식의 대상이기만 하다면, 사람의 오해와는 관계없이 차갑게 존재하는 진리와 다름없다. 그러나 선은 그것이 체험되고 실현될 때에 선의 진가가 나타나기 때문에 선도 진리와 마찬가지로 실천과 관계없이 존재할 수 있겠으나 역시 그것이 실행되면서 인격과 더불어 윤리화하게 된다. 그러므로 선의 전개에는 역사가 있다.

선을 인격적인 체험 안에서 이해하자면 혹은 완성 또는 행복으로 볼 수도 있고, 또는 사랑의 헌신으로 볼 수도 있다. 하여간 인간의 자유가 인간완성을 위하여 만개되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선은 따먹으려는 인간염원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인간이 받아들이는 또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응답을 재촉한다. 선은 좋기 때문이다. 선은 인간이 거룩한 분위기에 빨려 들어가는 영역이다. (白敏寬)

[참고문헌] A.C. Ewing, Definition of Good, 1947 / E. Weil, Philosophie Morale, 1961 / J. Pieper, Reality and the Good,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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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흥본당 [한] 瑞興本堂

소재지는 황해도 서흥군 서흥면 예운리(黃海道 瑞興郡 瑞興面 曳雲里). 서흥지방에 처음으로 천주교가 들어온 것은 수안(遂安)출신의 김기호(金起浩, 요한)가 1856년 서울에 올라가 뵈르네(Berneux, 張敬一, 시메온) 주교에게 영세한 후 서흥땅 두꺼비골[蟾谷]에서 전교하면서부터였다. 서흥땅 향교골[鄕校谷] 출신인 우세영(禹世英, 알렉시오, 1845-1866)은 김기호의 권면으로 상경하여 정의배(丁義培, 마르코, 1795-1866)에게 교리를 배운 후 1863년 베르뇌 주교에게 성세성사를 받았으며, 1866년 병인(丙寅)박해 때 순교, 1968년 복자위(福者位), 1984년 성인품에까지 올랐다.

병인박해로부터 33년이 지난 1899년 서흥읍 영파리(暎波里)에 재령(載寧)본당 관할의 공소(公所)가 처음으로 개설되었고, 1900년부터 관할성당이 검수(劍水)본당으로 바뀌었다. 이 무렵 서흥군내에는 10여개 공소가 있었고 신자총수는 400명에 달하였다. 1913년 검수본당 신부로 부임한 이기준(李起俊, 토마스) 신부는 이 지방 특유의 토질병인 허파디스토마에 걸려 시달리게 되자 서울교구장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에게 본당 이전을 간청, 승낙을 받고 1915년 9월 서흥으로 본당을 옮겼으며, 따라서 검수본당은 폐지되었다. 창립 당시 서흥본당의 총신자수는 920명(서흥읍 114명, 17개 공소 806명)이었다. 그런데 이기준 신부는 서흥으로 옮겨온 지 1년도 안 되는 1916년 6월 이 본당을 폐지하고 사리원(沙里院)에 가서 본당을 신설하였다. 이리하여 서흥은 1937년까지 21년간 사리원본당의 공소로 명맥을 유지하였다.

1937년 서흥공소는 2대 안학만(安學滿, 루가) 신부를 맞아 다시 본당으로 부활되었다. 안신부는 2년간 서흥에서 전교하고 1939년 장련(長連)본당 창설신부로 전임, 그 뒤를 이어 부임한 사제는 3대 임충신(林忠信, 마티아) 신부였다. 임신부는 그 해 가을에 공소시절부터 사용해 오던 성당 개축공사에 착수, 내부공간을 늘리고 기와를 새로 올리고 조선식 창문을 유리창으로 모두 바꾸었다. 1942년 1월 임충신 신부가 재임 3년만에 곡산(谷山)본당 사제로 전임됨에 따라 서흥은 또다시 본당이 폐지되고 사리원 본당 관할의 공소가 되었다.

[참고문헌] 黃海道天主敎會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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