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퐁 [원] Dupont, Rene [관련] 안동교구

Dupont, Rene(1929~ ). 파리외방전교회원, 주교, 초대 안동(安東)교구장. 한국명은 두봉(杜峰). 프랑스에서 출생. 프랑스 오를레앙(Orleans) 대신학교 재학 중이던 1949년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1951년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1951년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원에 진학, 1953년 사제서품을 받았고 이듬해 대학원을 졸업한 후 선교사로 한국에 왔다. 입국 후 한국어와 풍습을 익히고 1955년 대전 대흥동본당 보좌신부, 1965년 대전교구 상서국장을 역임했고 1966년 5월부터 1년 동안 충남대에서 철학을 강의하기도 하였으며 1967년 파리 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을 거쳐 1969년 안동교구의 창설과 함께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이해 7월 5일 주교로 성성(成聖)되었다.

현재 안동교구장으로서 안동교구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 밖에 주교회 산하 사목주교위원회 위원장 및 평신도사도직 전국단체인 한국 가톨릭 성령쇄신봉사자 위원회와 한국 M.B.W. 추진회의 담당주교로 활동하고 있다. (⇒) 안동교구

[참고 : 뒤퐁 주교는 1990년 12월 2일 안동교구 초대 교구장직을 퇴임하였다. 같은 날 제2대 교구장으로 착좌한 박석희 이냐시오 주교는 2000년 10월 9일 선종하였고, 이어 제3대 교구장으로 2001년 12월 4일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가 착좌하여 사목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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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페 [원] Dufay, Guillauaume

Dufay, Guillauaume(1400?~1474). 플랑드르 악파(樂派)의 작곡가. 시메이(Chimay, 현재 벨기에령)에서 태어나, 1428~1437년 로마교황청 합창대원으로 있었다. 그 뒤 파리에 가서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1442~1449년 대립교황 펠릭스 5세의 합창대에 근무했고 그 후 종신토록 캄브레이 주교좌 성당 참사회원으로 있었다. 작품으로는 8개의 완전한 미사곡, 20여개의 미사부분곡, 59개의 음악곡 등 약 150곡이 있다. 그는 음악 외의 다른 예술분야에도 정통 했으며, 교회법 학자로도 일가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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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셴 [원] Duchesne, Louis

Duchesne, Louis(1843~1922). 역사학자요 성인전 작가이며 고고학자이자 고위성직자. 프랑스 생세르방(Saint-Servan)에서 출생하여 로마에서 별세. 로마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로시(G.B. de Rossi)의 지도 아래 고고학과 초대 교회사에 관한 예리한 안목을 길렀다. 1867년에 사제가 되어 Ecole S. -Charles de S. -Brieuc(1867~1871년)에서 가르친 뒤 공부를 더욱 하려고 Ecole des Carmes와 Ecole des Hautes Etudes(1871~1873년)에 갔다. Ecole archeologique francaise de Rome의 구성원이 되어 에피루스(Epirus)와 소아시아 등지에서(1874~1876년) 선교와 연구를 하였고 파리의 Institut catholique에서(1877~1885년) 교회사의 교수를, Ecole superieure des lettres(1885~1895년)의 교장을 역임하였고 1895년에 별세하기까지 Ecole archeologique francaise de Rome의 교장으로 있었다.

그의 첫 저작은 5세기의 호교론자 마카리우스 마뉴스(Macarius Magnes)의 연구였고 뒤이어 교황 전기(Liber pontificalis)에 관한 연구를 내었으며, ≪Histoire ancienne de 1’Eglise chretienne≫(1906~1910)는 첫 5세기의 교회사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입문서이다. 그 밖의 주요 저서로는 ≪Martyrologium Hieronymianum≫(1894), ≪Les Fastes episcopqux de 1’ancienne Gaule≫(3v. 1894~1915), ≪”Liber Censuum” de 1’Eglise romaine≫(1905), ≪Les premiers temps de 1’Etat pontifical 757~1073≫(Paris 1898), ≪Autonomies ecclesiastiques Eglises separees≫(1905), ≪Les origines du culte chretien≫(188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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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러 [원] Durer, Albrecht

Durer, Albrecht(1471~1528). 독일의 화가요 판화가로서 독일 르네상스 회화를 완성시킨 거장. 목판과 동판의 판화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남겼다. 15세기에 시작된 유럽의 판화예술은 그의 노력에 의하여 요람기로부터 일약 완성기에 도달하였다. 판화 가운데 <묵시록>, <대수난> 등은 유럽 전역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이탈리아에서도 모각(模刻)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뉘른베르크에서 조금사(彫金師)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가톨릭 신자로서 평생을 건실한 직인(職人) 기질로 끊임없이 작품을 창작하는데 정진하였다. 두 번의 이탈리아 여행을 통하여 뒤러는 명석한 퍼스펙티브(투시법)와 인체표현을 터득하고, 이것을 점차 독일의 전통으로 옮겨 갔다. 그것은 후기 고딕의 엄격한 구성과 원근법(遠近法)의 결합이다. 놀랄 만큼 다면적인 재질을 타고난 그는, 기교와 형식뿐만 아니고 정신적으로도 깊이를 가진 예술을 자유롭게 구사하였다. 그는 독일 중세의 그리스도교적 예술의 모든 성과를 자기의 내부에 침투시켜, 이것으로써 새로운 것을 창조하였다. 그리하여 종교개혁이 내적(內的) 통일을 깨뜨리지 않는 동안에 이것을 당시 아직 통일성을 잃지 않고 있는 그리스도교적 독일문화의 최고의 성과로서 독일민족에게 남겨 주는 역사적인 과업을 달성하였다.

이 점에서 독일에서의 그의 존재는 마치 이탈리아에서의 단테와 같이, 전 세계의 보배로운 예술가로 평가된다. 가톨릭의 종교적 깊이는 그의 작품에 독특한 힘과 내적 진실성을 나타냈다. 그의 주요한 관심은 1505년 까지는 판화였으며 이탈리아에 다녀온 11년까지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마리아전 등을 목판으로 제작하였다. 그리고 1509년부터 12년까지는 동판으로 수난화를 새겼다. 뒤러는 전 생애에 걸쳐 거의 유화로 초상화를 그렸으며, 주요한 작품은 <자화상>, <막시밀리누스 황제> 등이고, 1511년에 그린 <빈의 성인들의 제단>은 대단히 큰 규모의 구도로 선과 색채도 분명하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요한, 베드로, 바울로와 마르코를 그린 것으로서 뉘른베르크시에 기증한 작품들이다. 이들 초상화에서는 빛과 그늘의 분열, 종교개혁 · 농민전쟁 시대의 복잡다기한 인격을 반영하고 있다. 유채화 약 100점, 목판 350점, 동판 100점, 그리고 900점에 이르는 데상은 독일 르네상스의 증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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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전리본당 [한] 屯田里本堂

6.25동란 직전인 1950년 4월 22일 혜화동공소로부터 분할된 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둔전리(廣州郡 大旺面 屯田里)에 자리 잡은 이 본당은 초대 주임으로 박지환(요한) 신부가 부임하면서 설정되었다. 성당은 당시 공소강당으로 쓰던 30평 건물 부지에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관할구역은 대왕면을 비롯하여 낙생면, 돌마면, 오포면, 일부지역이었다. 2대 주임으로는 1962년 9월 17일 유진선(레오) 신부가 부임하여 사목하였고, 3대 주임인 이명기(베르나르도) 신부가 1968년 6월에 부임하여 재임중, 이 지역에 비행장이 들어섬으로써 성당은 부득이 철거되고, 본당도 폐쇄하게 되어, 그 대신 성남시 수진동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따라서 둔전동본당을 계승한 수진동본당의 창설 신부는 이명기 신부가 되었다. 이 본당은 주보로 ‘성요셉’을 모시고 현대식 연와조 성당과 사제관을 지어 봉헌하였다. 교세의 확장에 따라 1976년 10월 12알 단대동성당을 분리하고, 1982년 2월 8일에는 성남동성당을 분리하였다. 현재 주임은 정주성(鄭主成, 요셉) 신부가 맡고 있으며, 신자수는 5,459명에 달한다(1983년 말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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