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본당 [한] 金浦本堂

걸포리(傑浦里) 공소에서 출발한 이 본당은 8.15광복 후 교세가 발전함에 따라 1948년 겨울,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1949년 걸포리 본당에서 김포본당으로 개칭(改稱)된 후, 1962년 8월 8일 서울교구로부터 인천교구가 분할설정을 보게 됨으로써 인천교구의 관할이 되었다. 경기도 김포군 김포읍 복변리 259번지에 자리 잡은 이 본당은 그 뒤에도 꾸준한 발전으로 1965년 8월 5일 통진교회가 설립되어 김포본당에서 분할되어 갔다. 1983년 1월 1일 현재로 고촌, 계양, 상아리, 고창, 불노리, 금곡, 오류리 7개 공소를 거느리던 이 본당은, 지금은 금곡, 오류리 공소를 인천 석남동 본당의 관할로 분리시키고 5개 공소만 관할하고 있다. 주보로 매괴의 성모를 모시는 이 본당의 1984년 신자수는 3,363명이다.

이 본당의 초대 주임은 김병호(金炳昊, 베네딕토) 신부였으며, 2대는 김피득(金彼得, 베드로), 3대 신원식(루가), 4대 브랜스필드(Bransfield), 5대 다비스(Davis, 黃), 6대 켈러(Kelleher, 桂), 7대 에건(Egan, 都), 8대 김병상(金秉相, 필립보), 9대 박성규(朴成圭, 분도), 10대 최기산(崔基山, 보니파시오), 현재는 조성교(趙誠敎, 요한 금구) 신부가 주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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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한] 金太權

김태권(?~1839). 순교자. 세례명 베드로. 전주(全州) 출신. 그가 체포당한 장소와 경위는 밝혀지고 있지 않으나 1826년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전주, 대구 등 감옥에서 13년간이나 옥고를 치렀다. 그동안의 고통은 이루 형언키 어려웠으나 그의 신앙은 더욱 굳어져 오직 순교의 영광만을 기다리며 함께 신자들을 격려하고 위안하는 데 진력하였다. 1839년 5월 26일 드디어 사형이 집행되어 그는 함께 갇힌 5명과 같이 순교하였는데, 당시의 형조판서(刑曹判書)는 이들 무고한 사람을 죽인 죄책감 때문에 사임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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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애 [한] 金千愛

김천애(1760~1801). 순교자. 세례명 안드레아. 유항검(柳恒儉)의 하인으로 1801년 봄 유항검의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전주감영에서의 혹형과 고문을 이겨내고 서울로 압송되어 사형선고를 받은 후 8월 27일이나 28일(음 7월 19일이나 20일) 전주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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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본당 [한] 金泉本堂

왜관 대리구(倭館代理區) 소속 본당. 주보는 예수성심. 소재지는 경북 김천시 황금동(慶北 金泉市 黃金洞) 76의 18이다. 1901년 낙산(落山) 본당에 있던 김성학(金聖學, 알릭스)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한옥 기와집 1동을 매입해서 성당으로 사용케 되었다. 1928년에는 3대 이약슬(李若瑟, 요셉) 신부가 부임, 이듬해 지금의 성당을 신축하였다. 8대 최재선(崔再善, 요한) 신부는 1944년에 부임, 8.15와 6.25를 겪으며 사목하다가 1955년에 전임하였다. 1958년 김천읍 평화동(平和洞)본당이 분리 독립될 때 이 본당 명칭이 황금동 본당으로 바뀌게 되었다. 1968년 지례면(知禮面)의 지례공소를 본당으로 승격 분할하면서 본당 관할이던 지례면, 부항면(釜項面), 대덕면(大德面), 증산면(甑山面)을 이양하였다. 1970년에는 김천시의 관할 지좌동(智佐洞)공소를 본당으로 승격 독립시키면서 본당관할이던 지좌1동과 금릉군(金陵郡)의 농소면(農所面), 남면(南面) 전 지역을 이양하였다. 현재 주임은 베네딕토수도회의 이석진(李錫震, 그레고리오) 신부이고, 신자수는 782명(1984년 현재), 공소는 금릉군 감문면(甘文面)의 감문공소, 개령면(開寧面)의 개령공소 및 신룡(新龍) 공소, 구성면(龜城面)의 송죽(松竹) 공소 등 4개소이다. 본당 관할구역은 김천시의 황금동 1, 2동, 감호동(甘湖洞), 용두동(龍頭洞), 모암동(帽岩洞), 성내이동(城內二洞), 남산 1, 2동(南山 一, 二洞), 그리고 금릉군의 감문면, 개령면, 감천면(甘川面), 구성면, 조마면(助馬面) 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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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렬 [한] 金昌烈

김창렬(1927~ ). 주교. 제3대 제주(濟州) 교구장. 세례명 바오로. 황해도 연백(延白)에서 출생. 동성상업학교 을조(東星商業學校乙組)[소신학교]와 성신대학(聖神大學, 현 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1953년 8월 22일 서울교구 사제로 서품되었다. 서품 후 곧 군종신부로 입대했고 1956년 제대 후 성신중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0년 로마에 유학, 1962년 라테란대학에서 윤리신학을 연구한 후 1962년 도미(渡美)하여 뉴욕대학에서 신문학을 수학하였다. 그 후 1963년 귀국하여 가톨릭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1965년 가톨릭중앙의료원 원장, 가톨릭대학 의학부장, 성모병원장직을 겸임했고 1969년 가톨릭대학 학장으로 임명되었다가 1973년 다시 가톨릭 중앙의료원원장으로 전임되어 1983년 11월 주교로 피명되기 전까지 재직했으며 이 때 한국 행복한 가정 운동 지도신부, 서울대교구 참사위원 및 인재양성위원 등을 겸임하였다. 1983년 11월 21일 공석 중이던 제주교구장에 임명되어 1984년 1월 6일 주교로 성성(成聖)되었고, 1월 26일 착좌하였다.

[참고 : 김창렬 주교는 2002년 9월 2일 제주교구 교구장직을 퇴임하고, 이어 제4대 교구장으로 강우일 베드로 주교가 2002년 10월 8일 착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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