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 [한] 金顯禹

김현우(?~1801). 순교자. 세례명 마태오. 조선교회의 첫 순교자인 김범우(金範禹)의 일곱 번째 동생인데, 8형제 중 범우, 이우(履禹), 현우의 세 형제가 다같이 순교하였고, 초창기 조선교회를 발전시키는 데 주동적 역할을 하면서 끝까지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킨 증거자들이다. 그는 형 김범우가 단양(丹陽)으로 정배된 후에도 다른 집을 사서 거기서 첨례를 보고 기도를 드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가 포졸에게 잡힌 날짜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잡혀갈 때 찬란한 십자가가 나타나 그의 앞길을 비추어 옥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의 형 이우는 옥에서 매를 맞아 죽었고, 그는 1801년 5월 22일(음) 최인철(崔仁喆), 강완숙(姜完淑) 등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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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배 [한] 金賢培

김현배(1905~1960). 주교. 3대 전주(全州) 교구장. 세례명 바르톨로메오. 전북 익산(益山) 출신. 1932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졸업하고 이해 5월 21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서품 후 대구 계산동 본당 보좌신부와 주임신부를 거쳐 1942년 모교인 유스티노 신학교 교수로 잠시 재직하다가 이해 6월 전주교구로 이적되어 나바위 본당 주임신부, 1945년 전주교구 경리부장 겸 교구재단이사, 1946년 교구장 서리를 역임했고, 1947년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이후 10년간의 전주교구의 행정체계를 바로잡고 교구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여 1957년 전주교구가 지목구에서 대목구로 승격되자 이해 5월 21일 주교로 성성(成聖)되었다.

1950년 6.25전쟁 중에는 한때 공산군에 의해 투옥되기도 했으나 기적적으로 풀려나와 종전 후 폐허가 된 교구 복구작업을 전개하여 파괴된 성당들을 신축하는 한편 1군(君) 1성당(聖堂)주의를 목표로 노송동, 장계, 삼례, 대야, 무주, 임실, 고창, 순창, 함열, 황등, 여산 등의 본당을 신설하였다. 그러나 1960년 전주시 노송동 인봉산 중턱에 대지를 마련하고 주교관건립을 몸소 지휘하던 중, 4월 30일 고혈압으로 사망, 전주교구 성직자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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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빈 [한] 金漢彬

김한빈(1764~1801). 순교자. 세례명 베드로. 충청남도 보령(保寧)에서 태어났다. 1800년 9월(음) 상경하여 정약종(丁若鍾)의 집에서 행랑살이를 하면서 정약종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1801년 신유(辛酉)박해가 일어나자 이 해 6월(음) 체포되었으나 탈출한 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박해에 관한 상황을 수집하여 제천 배론[舟論]에 숨어 있는 황사영(黃嗣永)에게 보고, 백서(帛書) 작성에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1801년 11월 6일(음 9월 29일) 배론에서 황사영과 함께 체포되어 11월 29일(음 10월 24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황심(黃沁)과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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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현 [한] 金泌現

김필현(1910~?). 평양교구 소속 신부. 세례명 루도비코. 1910년 3월 평남 평양시 관후리(舘後里)에서 부(父) 김성호(金聲鎬)와 모(母) 기씨(奇氏) 사이의 5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 관후리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동성상업학교 을조(東星商業學校 乙組)에 진학, 소신학교 과정을 마친 후, 당시 평양교구장 모리스(Morris, 睦) 주교의 추천으로 박용옥(朴瓏玉)과 함께 로마 우르바노 대학에 유학, 1939년 3월 18일 로마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박용옥과 함께 사제서품을 받고 동년 10월 24일 귀국, 평양 대신리(大新里)본당 보좌신부로 첫 사제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 1941년 12월 일제(日帝)에 의해 태평양전쟁이 일어남과 동시에 평양교구 소속 메리놀 외방전교회 신부들이 체포될 때 함께 체포되어 3개월간의 옥고(獄苦)를 치르고 풀려나 3년 동안 대신리 본당의 주임신부로 사목하다가, 1944년 4월 평양교구 부주교 겸 관후리 주교좌 성당의 주임신부로 임명되었다. 광복 후 일제에 의해 징발되었던 관후리성당을 되찾게 되자 성당신축을 책임맡고 공사를 총지휘하였고, 1948년 북한 공산정권이 수립되고 교회에 대한 탄압이 더욱 더 가중되어 원산교구장 사우어(Sauer, 辛) 주교, 평양교구장 홍용호(洪龍浩) 주교가 체포되어 행방불명된 상태에서, 1949년 6월 10일 교구 경리부장 겸 주교비서 최항준(崔恒俊) 신부, 대성당 기성회 이사(理事) 강유선(姜有善)과 함께 북한 정치보위부원에게 연행된 후, 행방불명되었다. 그 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 순교(殉敎)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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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헌 [한] 金風憲

김풍헌(?~1801). 세례명 토마스. 중인(中人) 출신으로 충청남도 청양(靑陽)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았다. 강직한 성품으로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풍헌(風憲)[조선시대에 面이나 里의 일을 맡아하는 사람. 오늘날의 面長과 里長에 해당됨]을 하였고, 천주교인이 된 후에도 계속 이 일을 맡아보며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1796년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형집행 3일전에 청양현감이 파면되어 그로 인해 석방되었다. 그후 고향을 떠나 부여(夫餘), 금산(錦山), 고산(高山) 등지를 떠돌며 극기의 생활을 하는 한편 교우들을 모아 가르쳤다. 그러던 중 1801년 신유(辛酉)박해가 일어나자 가족들을 산속으로 피신시키고 자신은 자수하려 했으나 가족들의 만류로 포기, 이 해 7월(음) 전라북도 용담(龍潭)에서 병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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