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부활 [한] 肉身復活 [라] resurrectio corporis [영] resurrection of the body

세상 종말에 “모든 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육신과 똑같은 육신을 가지고 부활할 것”(제4차 라테란 공의회)이라는 믿음. 그리스도 교인은 사도신경에서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라고 고백한다. 부활은 죽음을 전제한다. “하느님은 죽음을 창조하지 않았으나”(지혜 1:13) 인간이 범죄하여 하느님을 저버리게 되자 인간은 “먼지이므로 먼지로 돌아가게”(창세 3:19) 되었다. 죽음의 원인인 죄에서 인간을 구원하고자 그리스도는 죄없는 분이면서도 우리 죄를 대신하여 하느님으로부터 정죄받고(2고린 5:21) 죄의 벌인 죽음을 당하셨다. 그러나 부활함으로 죽음을 극복하였다(로마 6:9-). “죽음아, 네 가시가 어디 있느냐?”(1고린 15:55). 우리가 죽음의 가시를 없이 할 수 있다면 죽음은 명목에 불과하다. 그리스도는 죄많고 죽어야 할 인간을 당신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으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가장 진지하고 의미있게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으니 모든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2고린 5:14). 우리는 성세를 받을 때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 자신의 죽음으로 하였다.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가 그의 죽음과 연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로마 6:3). 그래서 우리가 살아 있을지라도 죽은 자로 헤아려지고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골로 3:3). 이는 신비로운 죽음 즉 죄와 육신과 세상에 대한 죽음을 의미한다. 세상과 육신은 악마의 권세에 이용되는 도구이다. 세상의 군주인 악마는 이미 심판을 받았으나 세상과 육신은 그리스도 안에 부활할 희망이 있다. 이들은 하느님의 창조하신 것이요 선한 것이다. 육신과 결합하여 세상에 태어난 영혼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일치함으로써 육신과 세상을 구원하여 본래의 선을 회복하게 할 수 있다.

이처럼 영혼을 살리는 신비로운 죽음을 체험한 그리스도교인도 다른 사람들처럼 죽음을 겪어야 한다. “우리는 육으로는 죽음에 내어준 바 되었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다”(1베드 3:18). 그러나 구원은 전인적(全人的) 구원 즉 영혼과 육신이 함께 구원되어 부활함을 의미한다. 인간은 육화된 영이요, 영성화된 육이다. 영육의 합일체이다.

육신부활을 성서는 명시하고 있다. “망자들은 살아 나리라”(이사 26:19). “땅의 먼지 속에 있는 많은 자들이 깨어나리니…”(다니 12:2). 마케베오 시대에는 육신부활에 대한 믿음이 더욱 명확해졌다(2마카 3:9). 그리스도 시대에는 육신부활을 믿지 않던 사두가이들이 이단자로 간주되었다(마태 22:29-32). “때가 올 터인데 그 때에는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다 그의 소리를 듣고 나올 것이며, 선한 일을 행한 사람들은 생명의 부활에 이르고 약한 일을 행한 사람은 심판의 부활에 이를 것이다”(요한 5:28). 부활한 육신은 영혼과 육신의 합일체가 되어 다시는 분리되지 않으며, 본래 세상에 태어났던 바로 그 육신이다. 그러면서도 부활한 육신은 고통, 질병, 죽음 등이 없고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화시켜 그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양이 되게 하실 것”이며(필립 3:20-21), “죽음이 결코 그를 지배하지 못한다”(로마 6:9-11). “그래서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묵시 21:3-4). 부활한 육신의 또 다른 특성은 부활한 그리스도처럼 영적인 육신으로서 시간과 공간의 계약을 벗어나게 된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변모 때처럼 “해와 같이 빛날 것이다”(마태 13:43). 그리스도 교인은 이미 이루어진 영적인 죽음이 장차 올 육신의 부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새생명을 얻는 일련의 단계 중 마지막 단계임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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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 [한] 肉身 [라] corpus [영] flesh

구약에서 육신을 나타내는 말로는 basar가 있고 신약성서에는 sarx가 육신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구약성서에서 basar라는 말은 아마도 근육이나 피부를 나타내는 어원에서 온 것 같다. ‘육’(肉) 또는 ‘살’이란 말은 인간과 동물에 다 같이 쓰이고 있다. 인간에 대하여 쓰일 때에는 육신은 느낌이 있으며 모든 인간행위의 대리자이다.

구약성서에서는 육신과 영혼 사이에 어떤 부조화가 없다. 히브리인들은 모든 사물을 전체적 관점에서 보았으며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서도 같았다. 따라서 히브리어 basar는 육신으로 번역되기는 하지만 전체로서의 신체와 구별되는 ‘육’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창세기 2장 21절에는 육신이 근육 또는 피부 등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다음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뽑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시고는…”(창세 2:21)한 것이 그것이다. 육신이 신체의 뜻에서 더욱 발전하여 육체적 정신적 결합으로서의 완전한 형태를 ‘몸’이라고 표현하고도 있다. “이리하여 남자는 어버이를 떠나 아내와 어울려 한 몸이 되게 되었다.” 여기에서의 ‘한 몸’은 단순히 성적인 교섭(sexual intercourse) 이상의 완전한 조화와 결합의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구약성서에서는 육신은 연약하고 고통에 민감한 것으로 표시되고 있다. “사람은 한낱 고깃덩어리,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생각하셨다.”(시편 78:39). 신약성서에서도 육신은 구양성서에서와 대동소이한 뜻으로 쓰이고 있으나 신약성서, 특히 성 바울로는 육신을 죄의 의미로 쓰며 육신을 영혼에 대비 시킨다. 육체를 가진 연약한 생명체의 뜻으로는 요한복음 3장 6절을 들 수 있고 총체적인 ‘약한 인간’의 뜻으로는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요한 1:14)라는 구절이 있다. 성 바울로는, 인간이 원래 약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육체를 가졌으므로 항상 죄를 지을 위험이 있고 지옥에 떨어질 위험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하느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영혼의 가르침에 따라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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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시경 [한] 六時經 [라] sexta [관련] 성무일도

낮 12시경에 바치는 성무일도(聖務日禱)를 말한다. 이 시각은 전례적인 시간으로 제6시에 해당한다. 이 시각에 기도드리는 것은 사도행전 10장 9절의 성서말씀과, 예수 그리스도가 이 시간에 십자가에 못박혀 있었던 사실(마르 15:33)을 근거로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개정된 성무일도에서는 가대 의무가 없을 때 소시경 즉 삼시경, 육시경, 구시경 중에서 그날의 제 시각에 더 적합한 하나를 선택하여 바치게 되어 있다(전례헌장 89조 e). (⇒) 성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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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순절 [한] 六旬節 [라] sexagesima

사순절(四旬節) 2주일 전 일요일을 말한다. 즉 부활절 전 60일째 되는 날. 육순절이란 명칭 오순절(quinquagesima), 칠순절(septuagesima) 등과 유사하게 형성 되었다. 그 기원은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69년 이래로 로마 가톨릭에서는 폐지되었으나 동방교회에서는 계속 지켜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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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도포본당 [한] 六道泡本堂

1923년 만주 간도성 훈춘현 육도포촌(間島省 琿春縣 六道泡村)에 창설되어 1932년 폐쇄된 연길교구 소속본당. 주보는 성 안드레아. 훈춘지역은 1905년경 복음이 전파되어 1907년 이 지역의 주민 13명이 원산본당의 브레(Bret, 白) 신부에게서 영세한 후 교우촌을 건설,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와 라리보(Larribeau, 元亨根) 신부의 순방을 받았고, 1909년 다시 100여명의 영세자들이 나와 7개의 공소가 개설되었다. 그 후 1920년 함경도와 간도지방이 오틸리엔 베네딕토회의 포교지로 되어 1923년 퀴겔겐(C. Kugelgen, 具) 신부와 로트(L. 깨소, 洪) 신부가 파견됨으로써 본당으로 창설되었다. 1924년 훈춘본당을 분리, 독립시킴과 동시에 퀴켈겐 신부가 훈춘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자 보좌이던 로트 신부가 주임신부가 되었고, 이어 1926년 되르플러(E. Dorfler, 鄭) 신부가 3대 주임으로 부임, 1929년까지 사목하였다. 1929년 트라버(Traber, 馬) 신부가 4대 주임으로 부임, 성당을 증축하고 해성학교를 개설했으나 마적과 공산군의 빈번한 침략으로 1932년 트라버 신부가 본당을 함경북도 경흥(慶興)으로 옮기게 되자 이 지역은 훈춘본당 관할 지역으로 되었다. 신부가 떠난 성당과 사제관은 1934년 공산군의 침략으로 전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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