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와는 아주 달리 예제키엘(Ezechiel)의 책은 그 구성이 매우 질서정연하다. 예언자가 하느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것을 보도하는 1∼3장은 전체 책의 서문 역할을 맡고 있다. 책의 본론은 아주 선명하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째 부분, 4∼24장은 거의 배타적으로 예루살렘의 포위 이전에 이스라엘인들에게 내린 예언자의 질책과 위협을 수록하고 있다. 둘째 부분 25∼32장은 이방민족들에 대한 신탁(神託)들인데, 여기서 예언자는 예의 민족들과 공모하던 불충한 이스라엘인들에게도 하느님의 저주를 선언하고 있다. 셋째 부분, 33∼39장에서 예언자는 예루살렘 공략 도중과 함락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좀 더 나은 미래가 있으리라고 위로하고 있다. 넷째 부분, 40∼48장에서 에제키엘은 팔레스티나에 장차 세워질 공동체의 정치적 종교적 구조를 미리 구상하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매우 논리적인 이 책의 구성은 상당수의 균열을 노출시키고 있다. 가령 적지 않은 이야기들이 이중적(doublets)으로 수록되어 있다(3:17-21 = 33:7-9, 18:25-29 = 33:17-20 등 …). 또 하느님이 에제키엘에게 걸리게 한 실어증(失語症)에 대한 보도들은 그 사이에 끼여든 긴 연설들로 인해 서로 분리되어 있다(3:26, 24:27, 33:22). 하느님의 수레에 관한 비전, 1:4-3:15의 본문은 책의 비전의 본문, 2:1-3:9에 의해 중단된다.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의 죄악에 대한 묘사, 11:1-21의 본문은 8장의 연장이며 또 하느님 수레의 출발을 보도하는 이야기를 끊어버리고 있다. 그 이야기는 10:22에서 11:22로 다시 연결된다. 그리고 26∼33장에서 나타나는 시대순서는 논리적이 못 된다. 이 같은 문체상의 무질서도 에제키엘서가 한 사람의 저자에 의해 단번에 쓰여지지 않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에제키엘의 저자들이 스승의 어록을 편집하면서 어느 정도 개작을 하고 보충했음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그들이 스승의 말씀과 사상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편집의 작업이 아주 뚜렷이 드러나는 부분은 40∼48장의 본문이지만 이 장들의 핵심사상은 어디까지나 에제키엘 자신의 것이다. 오늘의 우리에게 전수된 본문에 의하면, 에제키엘은 기원전 593∼571년 사이에(1:2과 29:17에 나타난 연대) 바빌론에 유배가 있던 사람들 가운데서 예언자로 활약하였다.
문제는 책의 첫부분에 수록된 신탁들이 예루살렘의 주민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으며 또 에제키엘 자신이 육체적으로 그 도시에 현존했던 것처럼(특히 11:13)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에제키엘이 장소가 다른 두 곳에서 에언자로 활약했다는 가설을 내세우게 하였다. 첫 장소는 예루살렘이었으니 에제키엘은 그 도시가 멸망한 587년까지 팔레스티나에 남아서 설교했다는 가설이다. 그 다음에 에제키엘이 바빌론에 유배가 있던 사람들에게 가서 설교했다는 가설이다. 2:1-3:9의 두루마리에 관한 비전은 팔레스티나에서 있었던 예언자의 소명을 증거하고 있으며 하느님의 수레에 대한 비전(1:4-28과 3:10-15)은 유배간 사람들에게 가서 활동한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가설은 적지 않은 난관에 부딪힌다. 문제는 비록 에제키엘이 팔레스티나에서 활약했음을 인정할지라도, 그가 언제나 예루살렘의 성 밖에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또 이상한 것은 예레미아와 에제키엘이 예루살렘에서 함께 설교했다면, 그 두 예언자들이 서로 알고 있어야 할텐데 에제키엘서에는 전혀 그런 기미가 없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8:3에 의하면, 에제키엘은 ‘비전 가운데’ 예루살렘에 가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주민들에게 질책한 신탁들은 유배간 이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음을 알아 둘 것이다. 에제키엘은 흔히 비전 안에서(11:24) 공간을 극복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오늘날 대부분 성서학자들은 에제키엘이 두 장소에서 활약했다는 그 전통적 가설을 포기하고 있는 것 같다.
가설에 대한 입장이 어떻든지 간에 에제키엘서에 나타나는 예언자는 대단히 큰 인물이다. 에제키엘의 신분은 사제였다(1:3). 그는 야훼의 성전을 정열적으로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교도들의 우상숭배로 더럽혀진 성전을 걱정했고(8), 하느님의 영광이 떠나버린 그 성전을 안타까워했으며(10), 장래에 세워질 깨끗하고도 거룩한 성전을 세밀히 설계했고(40-42) 드디어 그 성전에 되돌아오시는 하느님을 본 것이다(40). 에제키엘은 사제로서 예언자의 소명을 받았다. 그는 하느님의 율법을 가장 중대시하였다. 그래서 에제키엘은 율법을 어긴 이스라엘의 불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20). 20장에서 이스라엘이 안식일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이 노래의 후렴처럼 반복되고 있다. 에제키엘은 율법이 금하는 부정(不淨)을 혐오했으며(4:14) 또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엄격히 구분하였다(45:1-6). 그는 사제였기 때문에 법과 윤리문제에 대해 관심이 컸다. 에제키엘의 윤리적 판단은 흔히 결의론(決疑論)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18). 에제키엘의 사상과 어휘는 성법전(聖法典)인 레위 17∼26장의 본문과 매우 비슷하다. 하지만 에제키엘이 성법전의 영감을 받았는지 아니면 성법전이 에제키엘의 영향을 받았는지를 증명할 길은 없다. 어쨌든 성법전과 에제키엘서는 서로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에게 전수되어 편집된 까닭에, 두 문헌이 사상적으로 비슷할 뿐이다. 하여 예레미야의 작품이 ‘신명기적 사조(思潮)’에 속하듯이 에제키엘의 작품은 ‘사제적 사조’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제는 행동의 사나이였다. 그가 수없이 행한 상징적 행동들이 예의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는 예루살렘의 포위공략을 실제의 상징적 행동으로 보여주었고(4:1-5:4), 유배대열의 출발을 몸짓으로 흉내 내었으며(12:1-7), 정복의 길 위에 서있는 바빌론 왕(21:23 이하)과 유다와 이스라엘의 재결합(37:15 이하)을 몸짓으로 흉내 내었다. 그는 호세아, 이사야 그리고 예레미야처럼 자신이 당한 시련들을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표징으로 여겼고(24:24) 또 그것들이 자신의 몸에 새겨진 하느님의 기호(記號)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에제키엘의 상징적 행동과 제스처는 선임 예언자들의 것들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였다. 에제키엘은 특히 비전의 전문가였다. 그의 책은 단지 네 개의 비전[顯示]을 보도하고 있지만 그것들이 책 안에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히 크다(1-3, 8-11, 37, 40-48). 이 비전의 세계는 매우 환상적이다. 야훼의 수레를 끄는 네 동물들, 괴상한 짐승들과 우상들이 우글거리는 성전예배의 떠들썩한 춤, 뼈들이 널려 있다가 살아나는 평원, 이상적인 설계에 따라 건설된 성전과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꿈같은 강물과 선경(仙境)의 지리(地理) 등이 무척이나 환상적이다. 이 같은 상상력은 예언자가 묘사하고 있는 우의(寓意)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령 오홀라와 오홀리바의 두 자매(23), 때로는 침몰(27), 악어와 같은 파라오(29와 32), 거대한 나무(31), 지옥으로 내려감(32) 등이 그 우의들이다. 하지만 에제키엘의 문체는 그의 다양한 이미지와 형상들의 풍부함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단조롭고 어두우며 차고도 퍼진 듯한 느낌을 준다. 그의 문체는 힘 있고 맑은 이사야의 것과 감동적이며 따뜻한 예레미야의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소박하다. 하지만 에제키엘의 문학적 예술은 하느님의 신비 앞에 인간이 느끼게 되는 거룩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물론 에제키엘이 선임 예언자들의 영향을 받았지만 또 다시 새로운 종교의 길을 개척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하여 그는 사상면에 있어 이스라엘의 과거와 단절을 선언하고 있다. 물론 그의 책에 성조(聖祖)들에게 한 약속의 기억과 시나이의 계약사건이 여기저기에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에제키엘은 만일 하느님께서 날 때부터 더럽혀진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했다면(16:3 이하), 그것은 약속을 완성시키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당신 이름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것(20)이라고 단언한다. 하느님께서 만일 옛 계약을 새 계약으로 대치시켜야 한다면(16:60, 37:26 이하), 그것은 백성의 회개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 순전히 공짜로 내리는 ‘은총’ 때문인 것이다. 이 은총의 하사 이후에 백성의 회개가 뒤따라온다(16:62-63).
에제키엘은 드물게 메시아니즘을 말하고 있으니, 그의 메시아는 왕적인 존재도 아니요 영광의 인물도 아니다. 물론 그가 미래의 다윗을 예고하지만 후자는 자기 백성의 ‘목자’(34:23, 37:24)요 ‘왕자’(24:24)일뿐 결코 대왕으로 군림하고 있지는 않다. 다윗의 후손은 제정일치(祭政一致)의 비전 속에서 성전 밖으로 쫓겨난 인물에 불과하다(45:7 이하). 에제키엘은 처벌의 연대성을 강조하던 옛 전승을 부인하고 개별인간의 인과응보의 사상을 단언하고 있다(18:33 참조). 이 같은 사상은 인간의 죽음 이후에 있을 응보사상을 준비하였다. 현실은 언제나 강자의 정의를 옹호했었기 때문이다. 사제로서의 에제키엘은 성전을 매우 사랑했지만 예레미야처럼 하느님의 현존이 벽돌로 지은 성전에 예속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에제키엘을 통해 지금까지 대립되어 온 예언자의 정신과 사제의 정신은 화해를 한다. 하여 종교적 의식은 그 의식에 영감을 내리는 정신에 따라 자기의 가치를 살리게 되는 것이다. 에제키엘의 사상은 모두 인간의 내적 개혁에 집중되어 있다. 인간은 자기 안에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영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18:31). 아니 하느님께서 돌 심장과는 ‘다른 마음’, 곧 ‘새 마음’을 창조하시고(시편 51:12-14), 인간의 속마음에게 ‘새로운 영’을 선물로 주실 것(11:19, 36:26)이라고 에제키엘은 선언하고 있다. 인간의 죄를 공짜로 용서하고 그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내리는 것은 일종의 창조이다. 창조가 은총이듯이 용서도 일종의 새로운 창조이다.
하느님의 사죄경(36:25-28)은 은혜로이 새로 태어난 인간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뉘우침을 유발시키는 하느님의 은총을 강조하는 에제키엘의 사상은 사도요한과 바울로의 은총신학을 준비시켰다. 종교의 모든 것을 영성화(靈性化)시킨 것은 에제키엘의 큰 공헌이다. 흔히 사람들은 에제키엘은 유다이즘의 아버지라고 부르니, 그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엄격히 분리했고 율법적인 깨끗함을 강조했으며 종교의식의 세밀한 규칙을 세웠다는 것 때문이다. 하여 에제키엘을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조상으로 본 것이다. 이 같은 견해는 전적으로 틀렸고 불의한 판단이다. 에제키엘과 예레미야는 각기 서로 다른 인물이긴 했지만 유다이즘과 신약성서의 종교를 준비한 순수하고도 고매한 영성(spiritualite)의 샘물이었다. 예수는 에제키엘이 예고한 의미로(34) 착한 목자이다(요한 10장). 또 에제키엘이 시작한 영성적 예배를 예수께서 확인하고 있다(요한 4:23). 또 에제키엘은 묵시문학적 사조의 기원이다. 그의 웅장한 비전들은 다니엘의 비전들을 예고하고 있으니, 요한의 묵시록에서 자주 에제키엘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결코 놀랍지 않다. (徐仁錫)
[참고문헌] J. Knabenbauer, 1890 / P. Heinisch, 1923 / G. Pongel, J. Grisson, Aufl. 2, 1934 / L. Tondelli, 1930 / C.v. Grelli, Aufl. 2, 1896 / A. Bertholet, 1897, 1937 / Hermann, 1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