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urthie, Jean Antoine(1830∼1866). 순교자.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한국명 신요안(申妖案). 1830년 12월 20일 프랑스 알비(Albi) 교구의 ‘발랑스 앙 알비즈와(Valence en Albigeois) 지방에서 출생. 1854년 6월 11일 알비 교구 소속으로 사제서품을 받고 즉시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1855년 중국 귀주(貴州) 지방의 선교사로 파견되었으나 포교지가 한국으로 변경되어 1856년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 프티니콜라(Petitnicolas, 朴) 신부와 함께 상해(上海)를 거쳐 해로(海路)로 한국에 잠입, 충청도 배론[舟論]의 성 요셉신학교 교장으로 한국인 신학생 양성을 위해 일하다가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신학교 교수 프티니콜라 신부, 신학교 주임 장주기(張周基, 요셉)와 함께 체포되어 그해 3월 11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軍門梟首)로 순교하였다. 유해는 순교 직후 교우들에 의해 왜고개에 안장되었다가 1899년 용산 예수성심 신학교로 이장되었고, 1900년 다시 명동 대성당으로 옮겨졌다.
표양 [한] 表樣 [라] exemplum [영] model
≪한불자전≫에 따르면 ‘표양’이란 말은 모범 또는 본보기를 뜻한다. 어떤 사람 또는 어떤 물건의 본보기가 되는 사람, 대상, 생각 등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와 성인은 그리스도교 완덕(完德)의 모범 즉 ‘표양’으로서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다.
“좋은 모범을 보인다”는 옛말이 “좋은 표양을 뵈다”이고, “나쁜 모범을 보인다”는 옛말로는 “악한 표양을 뵈다”로 사용해 왔다.
폴리카르포 [라] Polycarpus
Polycarpus(69?∼155?). 성인 . 순교자. 2세기 스미르나(Smyrna)의 주교. 초기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의 생애도 사도시대와 2세기말 성 이레네오(St. Irenaeus)와 같은 위대한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을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성 이레네오에 의하면, 그는 사도 요한의 제자였고 그리스도를 직접 본 사람들과 교제가 있었다. 폴리카르포가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서간(다른 날짜의 두 서간 이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과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가 그에게 보낸 편지가 남아 있다. 이냐시오는 로마로 가던 길에 그를 만난 것으로 보인다(116년경). 말년에, 부활 축제 일자와 과월제파(過越祭派, Quartodecimani)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소아시아 교회의 대표자로 로마에 가서 교황 성 아니체토(St. Anicetus, 재위 : 155∼166)를 만났다. 로마 체류 중, 전통 교리의 충실한 옹호자였던 그는 마르치온파(Marcionians)와 발렌티노파(Valentinians)와 같은 이단과의 논쟁에 주력하였다.
스미르나로 돌아온 직후 이교 축제 동안 체포되어 배교를 거절, 처형당하였다. 필로멜리움(Philomelium) 교회의 요청으로 스미르나에서 써 보낸 ≪폴리카르포 순교전≫(Martyrium Polycarpi)은 그의 심문과 순교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전해 준다. 처형날짜는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는데 155년 2월 22일 혹은 2월 23일이었던 것 같다. 에우세비오(Eusebius)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치하(161∼180년)였다고 주장하였다. 축일은 1월 26일(동방 교회에서는 1월 25일 혹은 2월 23일).
폴리카르포의 편지는, 이냐시오의 편지들을 제공해 주기를 요구했던 필립비교회의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 쓰여졌는데 사도 바울로의 서신과 요한 1서 등의 인용으로 성서의 역사적 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 편지는 그리스어로 보존되어 있고 초기에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전체 17장 중 1-12장은 필립비 교회에 보낸 사목서간이며 13장은 이냐시오 편지에 소개장으로서 삽입된 개별적 편지로 보인다. 편지에서 그는 교회의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음서대로 생활할 것과 왕과 통치자, 적과 박해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것을 등을 권고하였다. 그의 모든 도덕적 권고는 그리스도의 모방에 그 근거를 두었다.
폴란드 [원] Poland
유럽 중부, 발트해에 면해 있는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정식 명칭은 ‘폴란드인민공화국’. 소련, 동독, 체코슬로바키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면적은 31만 2,677㎢, 인구는 3,623만명 (1982년 추계)이다. 10세기 후반에 처음으로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었으며 1000년에 그네센(Gnesen)에 대교구가 설치되었다. 11∼12세기에는 내란이 계속되었고 교회도 타락하였으나 13세기에 타타르인의 침입을 받자 교회는 각성하였다. 16세기에는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아 종교전쟁이 일어났으며, 1537년 바르샤바회의에서 협정을 체결하고 교회는 ‘관용령’을 발표하였다. 이후 교회는 국법 개혁에 착수했고 개혁파들은 자체세력의 분산으로 약화되어 17∼18세기에는 가톨릭이 압도적으로 우세하게 되었다. 그러나 1772년과 1773년의 폴란드 분할은 가톨릭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러시아에 속한 동부지역의 주민은 정교회의 신앙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고, 프로시아는 가톨릭 신자를 박해했으며 오스트리아는 종교의 국가관리체제를 강력히 시행하였다. 1918년 독립으로 가톨릭은 자유를 얻었으나 동부에서는 정교회가 상당히 많은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폴란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화되었다. 국민의 94%인 약 3,410만 3,000명(1982년 현재)이 가톨릭 신자이며 27개의 교구를 갖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