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티나 성당 [한] ~聖堂 [영] Sistine chapel

바티칸 궁전안의 주요한 성당. 승천하신 성모(聖母)에게 봉헌된 성당으로 규모가 수준급이다. 식스토 4세(재위 : 1471-1484) 교황 시대에 설계된 관계로 이런 명칭이 붙여졌다. 일련의 유명한 프레스코화(畵)로 장식되고, 좌측벽에는 모세 성전의 사건들이, 우측벽에는 그리스도의 생애가, 보티첼리(S. Botticelli), 코지모(Cosimo), 로셀리(Rosselli), 기를란다요(Ghirlandajo), 페루지노(Perugino), 핀투리코(Pinturicchio) 등에 의해 그려져 있다. 미켈란젤로의 걸작으로 간주되고 있는 천장화는 현존하는 최대의 그림이며, 1508년에 착수되어 4년 후에 완성되었다. 미켈란젤로는 그림에 의해 둥근 천장으로 보이게 한곳의 각 부분에 천지창조, 에덴동산으로부터의 아담과 이브의 추방, 노아의 총수 장면 등을 그렸다. 그 아랫부분에는 일련의 유명한 예언자 및 여자 예언자의 좌상(坐像)이 그려져 있다. 1508년에 그림이 완성되었다. 그보다 23년 후인 1536년에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시작, 1541년에 완성하였다. 이 그림은 최후의 만찬의 정경을 가장 총괄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성당 안의 대리석제 제단부분 칸막이와 성가대석은 피에솔레(Mino da Fiesole)가 설계 제작하였다. 교황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제단은 진주층으로 장식되어 있다. 시스티나 성당은 교황의 사적인 예배당이며,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 회의가 거행되는 장소이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시오니즘 [독] Zionismus [영] zionism [관련] 시온

19세기말에 일어난 유대민족의 국가건설운동. 유럽 각지에 흩어져 소수민족의 상태로 있던 비정상적인 생활을 청산하고 조상들이 살던 곳에 유태인에 의한 유태국가를 건설하려던 시오니즘은 1948년 팔레스타인 지방에 이스라엘을 건설함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하였다. 유대민족이 본국으로 돌아가려는 운동을 시작한 것은 유대국가가 로마의 지배로 그 명맥이 끊어진 이후부터 계속되었지만, 정치적 운동으로 전환된 것은 데오도르 헤르츨(Theodor Herzl, 1860-1904)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는 이스라엘인이 하나의 민족임을 표명하고 유태인 대표자회의(제 1회 시오니스트회의)를 1897년 스위스의 바젤에서 개최하여 여기서 “시오니즘의 목적은 유대민족을 위한 국가를 공법상 보증된 형태로 팔레스티나 지방에 건설하는 것”이라는 바젤 강령을 채택하는 데 공헌하였다. 1917년 이 성명은 영국정부의 빌보어선언에 의해 확인되고, 그동안 유태인들은 속속 팔레스티나지방으로 귀환하여, 1920년부터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다가, 1947년 11월 국제연합 총회에 의해 유태인 국가의 건설이 결의됨으로써 1948년 5월 이스라엘은 독립하였다. 그러나 팔레스티나지방에 살던 아랍민족과의 대립과 마찰은 이제까지 계속되어 온 중동전쟁의 불씨가 되었고, 중동을 세계의 화약고로 만들어 놓았다. (⇒) 시온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시온 [영] Zion [그] Sion [히] Siyyon

원래는 예루살렘 남동부에 위치한 언덕을 가리키는 이름 이었으나, 다윗이 계약의 궤를 이곳에 옮겨서 제단을 쌓은 이래 이 언덕은 ‘야훼의 거룩한 산’이라 불리게 되었다(2사무 6:12-18, 시편 2:6). 그 후 솔로몬이 모리야산에 성전을 세웠기 때문에 시온이라는 명칭은 모리야산의 성전까지도 포함하는 이름이 되었고(이사 18:7, 미가 4:7), 상징적으로는 ‘거룩한 산’, ‘예루살렘 도시 전체’(시편, 48:2 69:35, 이사 2:3, 60:14)를 의미하기도 하였다. 이 경우는 대체로 시적인 용법에 자주 나타나는데 ‘야훼의 도시’로서의 예루살렘이라는 점을 강조할 때 사용된다. ‘시온의 딸’이라는 성서의 표현법은 예루살렘의 시민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 시온은 기다리는 유대의 신정(神政)을 의미하기도 하며 (시편, 126:1, 이사 34:8), 신약성서에서는 하늘에 있는 신의 도시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한다(히브 12:22, 묵시 14:1).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시잘레 [원] Chizallet, Pierre

Chizallet, Pierre(1882~1970). 신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한국명은 지사원(池士元). 프랑스의 론느(Rhone)에서 출생. 론느의 알릭스(Alix)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수학하던 중 1902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 1905년 6월 29일 사제로 서품됨과 동시에 한국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이해 10월 10일 한국에 입국하였다. 1905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서 자연과학과 수학을 가르치다가 이해 6월 원주본당 주임신부로 전임되어 2년간 사목하였고, 1908년 다시 신학교 교수로 임명되어 1914년까지 재직하였다. 1914년 용소막본당 3대 주임신부로 임명되어 1915년 가을 용소막성당을 신축하는 등 12년 동안 사목하다가 1926년 서울 혜화동본당 창설신부로 전임, 1927년부터는 소신학교의 교장, 경리까지 겸직하였고 1936년 신병치료차 프랑스로 귀국하였다가 이듬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대신학교 교수, 학장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 자리 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을 역임하고 1948년 대전교구가 설정되자 대전교구 소속으로 공주본당 주임, 1952년 대전교구 경리부장, 1957년 대전교구청 관리자를 역임한 후 1970년 1월 9일 사망, 대전교구 성직자묘지에 안장되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시종직 [한] 侍從職 [라] acolythatus [영] acolytat [프] acolytat

차부제품(次副祭品) 이하 모든 소품(小品)이 폐지되면서 새로이 제정된 직위(職位). 교회 내의특정 직무(職務)를 보존하고, 현시대의 필요성에 입각하여 모든 신자들이 모든 전례의 식에 깊은 이해를 갖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 위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칠품(七品) 중 차부제품 이하의 모든 품급을 폐지하였다. 그 중 특히 말씀과 제대(祭臺) 위에서의 전례와 밀접히 결부되어 있는 강경품(講經品)과 시종품(侍從品)과 차부제품의 이하의 기능을 보존하고 조정하여 부제품(副祭品) 아재 시종직과 독서직(讀書職)을 두어 현재 사제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들 직(職)의 수여를 하고 부제품 이상만을 서품(敍品)을 하여 부제부터 성직(聖職)으로 간주하고 있다. 시종직은 말씀과 제대 위에서의 전례 중 제대 위에서의 전례에 사제를 도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직위를 말하며 독서직은 말씀의 전례에 사제를 도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직위를 말한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