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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정신의 법칙

  4.4.5. 교회정신(Ecclesialitas)의 법칙   교회의 역사는 개인적 혹은 단체적 모든 直觀이, 설령 좋은 지향 중에 이루어졌다 해도, 언제나 그리스도교적 有效性의 保證을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것이 아님을 가르치고 있다. 여기에 오늘의 운동들에 대한 명료화의 필요성이 나타난다. 각 운동은 자체의 직관과 선택이 과연 성령의 작용인지 혹은 肉의 결실인지 알아내기 위하여, 먼저 통찰력있는 自己 批判과 교회의 檢閱을 받도록 요청된다. 이런 신중한 절차가 이미 초기교회 공동체들 안에서도 실천되고 있었음을 성서는 증언한다.    “자기가 성령을 받았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다 믿지 말고 그들이 성령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인지 아닌지 시험해 보십시오”(1요한 4,1).   “여러분은 늘 자신을 살피며 성령께서 맡겨주신 양떼들을 잘 돌보시오. 성령께서는 여러분을 주교로 세우셔서 하느님께서 맡겨 주신 당신 아드님의 피로 값을 치르고 얻으신 당신의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습니다”(사도 20,28; 1고린 6,2; 12,18-20 참조).   “성령의 불을 끄지 말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전하는 말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좋은 것을 꼭 붙드십시오. 그리고 악한 일은 어떤 종류이든지 멀리 하십시오”(1데살 5,19-21).   자기 비판과 검열은 운동의 책임자들과 구성원들로 하여금 인간적 견해와 야망을 성령의 카리스마와 너무 쉽게 동일시하지 않도록 돕는다.  1981년 이태리 주교회의의 한 문헌은 단체와 운동들의 敎會精神을 식별하기 위한 네 가지 척도를 제시하였다.   ① 일관성있는 방법과 행위를 동반한 교리의 正統性. ② 교회의 목적과 일치. ③ 사목자들의 親交. ④ 다른 형태의 단체들의 합법성 인정과 환대 및 협동의 자세.   이 점에 관해선, 1977년 세계 주교 시노드가 신학적으로 좀더 보완시킨 지침을 마련했었다.    “하나의 공동체가 참으로 교회적인 것이고 또 그렇게 나타나려면, 이러한 특성을 가져야 한다.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 그리고 성부와의 명확한 結束感(Unus Deus),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알기 위한 기준점으로서 하느님의 말씀(Una Fides), 신앙, 특히 성사들의 집전(Unum Baptisma), 하느님의 말씀으로 양육되는 공동체 기도 및 개인기도, 애덕 안에서의 형제 관계, 온 세계를 향한 선교의식, 타인들과의 관계에 있어 자신의 한계성과 보충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시노드의 이러한 강조점들은 사도행전의 첫 그리스도 공동체 생활에 관한 묘사와 유사하다(사도 2,42-46; 4,32-35; 5,12-1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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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운동의 영적 식별 기준

4.4. 교회운동의 영적 식별 기준   공의회를 계기로 교회가 겪어야 했던 전환기적 시련의 하나는 운동들의 우후죽순격 출현이었다. 따라서 각 운동체들이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태어나고 활동하고 있는지 혹은 너무 주관적이고 인간적인 전망에 의해 이끌려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재보아야 할 어떤 규준이나 척도들이 요청되었다. 한편, 시험기를 거친 운동들이 각 지역 교회 공동체에서 受容 및 適用될 때, 그 참여자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실천하고 있는지 살펴보는데 있어서도, 사목자들에게 판별 기준은 여전히 필요하다.    이 분야의 전문 학자들, 사목자들이 연구, 경험을 통해 분석해낸 척도들을 종합해 보기도 하겠다.     4.4.1. 統一性 있는 福音的 要請들의 理解   각 운동들이 옳은 길 안에서 발전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교회로부터 주석되는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에 그 기초를 둬야 한다. 운동을 새로이 선택하는데 있어 중요 판별 기준은 그것이 그저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어선 안되고, 성령의 작용 아래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알아듣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성서의 구절들은 서로 분리된 채 이해되어선 안되고 상호 연관성 안에서 알아들어야 한다. 흔희 文脈으로부터 단절된 말씀의 구절들은 오해를 초래하거나 남용되기 일쑤다.  운동의 그리스도교적 진실성의 보증은 그리스도의 총체적 및 근본적 가르침에 일치하여, 사랑의 동기로 다른 이에 베푸는 헌신적 봉사에서 나타난다. 福音은 인간의 구미대로 이해, 적용되어선 안되며, 오히려 인간이 복음의 요청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의무이행, 절제, 십자가의 수락, 이기주의의 극복이 결여되어 있는 곳엔,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는데 요구되는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리스도교적 온갖 이론과 실천의 규범적 기준은 교회 안에서 성령의 力動的 이끄심에 따라 이해되고 읽혀지는 聖書이다.     4.4.2. 聖靈에 의한 活動의 標識   그리스도께서는 거짓 예언자들로부터 참 예언자들을 識別해 내는 하나의 規範을 주셨다. “너희는 결실들(행위들)을 보고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마태 7,16). 결실들은 성령께로부터(갈라 5,22-23 참고) 혹은 肉으로부터(갈라 5,19-21) 맺어질 수 있다. 성령의 열매들이 무르익는 그곳은 교회의 건설을 위해 역동적 사랑의 추진으로 쇄신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며, 또한 교회 공동체 안에 활동하도록 불리운 각자의 기능이 존중되고 있는 곳이다. 반대로, 이기주의, 완고함, 불목, 의견을 달리하는 이에 대한 경멸, 복수, 논쟁 등이 있는 곳엔 성령이 활동하시지 않는다.  교회운동의 信憑性있는 보증은 복음적 삶인 그리스도교적 증거의 결실인 것이다.     4.4.3. 人間的 및 그리스도人的 成長의 法則에 대한 尊重   영성적 측면을 포함하여 인간의 생활 전분야의 성숙은 점진적이며 단계적이다. 이 법칙을 벗어나 성장을 서두를 때, 인간을 비정상적으로 빗나가게 하거나 변태적이게 할 위험도 적지 않다.  傳統的 修德 原理는 인간이 성령의 인도로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聖性 자체이신 聖父께로 나아가는 完成의 단계를 셋으로 요약한다. 초보자의 淨化 단계, 진보자의 照明 단계 그리고 完德人의 一致 단계이다. 이 단계들은 그리스도인 성장의 연속 과정으로서, 세례성사를 받은 이가 向主三德(神學德)의 삶을 깊이 인식하고 일상적으로 삶으로써 실현될 수 있다.    즉 믿음과 희망과 사랑 그리고 성령께로부터 주입되는 초자연적 활동 능력을 실천함으로써 성삼위와의 位格的 관계를 나날이 새롭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형태를 사도 바오로는 “肉에 따라 사는” 삶을 거슬러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로마 8,4-14) 삶이라고 일컬었다. 실로 그리스도인은 “사랑 가운데서 진리대로 살면서 여러 면에서 자라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에페 4,15)이 되도록 노력함으로써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는 것이다”(에페 4,13).   영성적 및 사도적 使命을 일깨우는 운동들의 역할도 많은 난관의 단계와 성장의 리듬 중에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운동의 주요 과제는 그 구성원들을 그리스도께 향한 회심과 일치의 여정으로 인도하는 것으로서, 그들이 하느님의 말씀 속에 점차 깊이 잠기며 이웃 형제들을 통하여 조금씩 그 단계와 방법을 발견하고 전진하도록 하는 것이다.     4.4.4. 修德 안에서 一致의 追求   이것은 운동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인류 가족의 일치 회복을 위한 임무를 의식하며 또한 실천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리스도는 ‘대사제의 기도’(요한 17,1-26 참고)에서 제자들이 하나로 일치하게 해주시길 聖父께 청하셨다. 따라서 교회의 일치는 주님의 간절한 念願인 동시에 소중한 遺言이다.  일치를 이루고 연대성을 강화하는데 있어, 그리스도인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카리스마들은 교회 건설과 유익을 위해 성령의 자유로운 뜻대로 각자에게 주신 선물로서(1고린 12,7-11 참조) 애덕의 실천을 통해 조화를 이루고 완성되어야 한다. 따라서 하느님의 선물들은 서로 대립을 이룰 수 없다. 사랑이신 하느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유일한 형제적 가정을 이루길 원하신다.   애덕 안에서 추구하는 일치의 모습은 단체들과 운동들의 그리스도교적 품위를 알게 해주는 확실한 척도이다. 교회의 일치를 위해 활동하시는 성령의 현존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표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애덕 안에서 일치하기 위하여 각 운동은 유의해야 할 것들이 있다.      ① 상호 체험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각 운동은 자기의 영성적 체험을 極端化하지 말아야 한다. 마치 자신들의 운동만이 특권적 위치에 있으며, 다른 형태나 방법엔 있을 수 없는 어떤 절대적인 영성체험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할 때, 다른 운동들과 일치에 손상을 입는다. 다른 체험들이 동시적으로 존재할 때 자신들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하는 자세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각 운동은 정신이나 계획을 나누기 위해, 언제나 충분한 “兄弟愛의 空間”을 마련해야 하며, 서로 좋고 칭찬할 만한 요소들을 찾고자 힘써야 한다.      ② 교회 안에서 성실히 머물러 있어야 한다.  각 운동은 성령께서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교회와 인류의 유익을 위해 적절한 때와 장소에 필요한 카리스마들을 베풀어주신다는 확신 중에서, 자신의 카리스마에 성실히 머물러 있으며,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르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③ 교회 안에서 카리스마들이 상호 보완을 이루어야 한다.  하느님의 성령은 “自由”이시다. 그분은 원하시는 방법으로 원하시는 때에 교회의 건설과 그 지체들의 성화를 위하여 개입하신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의 확장과 인간 연대성의 성장을 위해 애쓰는 이들끼리 불목을 일으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오히려 각 운동의 카리스마들이 상호 보완을 이룩해야 한다. 또한 다양한 형태의 수도생활의 옛 카리스마들은 현대 운동들의 새로운 요청들과의 만남을 통해 쇄신되고 풍요로와질 수 있으며, 현대의 운동들은 수도회 창설자들의 카리스마에 담겨 있는 지혜화 풍요로움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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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표지의 식별 척도

 4.3. 성령 표지의 식별 척도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에서 우리는 아래 몇 가지 성령표지의 식별척도를 얻어낼 수 있다.    ①성령의 열매: 성령을 따라 사는 이인지 아닌지는 그 삶의 열매을 봄으로써 알아낼 수 있다. 성령이 맺어 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정의, 온유 그리고 절제이다(갈라5,16-22; 에페5,8-10; 로마7,4-5).   이미 예수께서 친히 식별 기준을 가르쳐 주신바 있었다. “너희는 행위를 보고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마태7,16). : 거짓 예언자들 조심하라고 경고하신 후, 그들은 양의 탈을 쓴 사나운 이리(오늘의 사이비 종교 지도자들)라고 하심(마태7,15).    ②계시와의 일치 : 로마서에서 이례적 카리스마인 “예언”에 대해 하나의 식별법이 언급되고 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은 각각 다릅니다. 가령 그것이 예언이라면 자기 믿음의 정도에 따라서 써야 합니다”(로마12,6). 하느님과의 종속관계 안에서 그분으로부터 위탁된 메시지에 아무 것도 보태거나 빼선 안된다. 그리고 그 내용은 성서와 일치해야 한다 : 오늘의 사이비종교들은 계시진리인 하느님의 말씀․성서와 터무니 없이 다르고 빗나가 있음.    ③교회와의 일치: 성령께로부터 오는 신빙성 있는 선물인 카리스마는 “교회를 돕는 것”(1고린14, 4. 12. 26)이고 “공동 유익을 위한 것”(1고린 12,7)이다. 카리스마를 교회의유익을 위한 봉사의 선물로 쓰는지 혹 자신의 유익을 위해 쓰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 사이비종교인들은 종말의 임박을 강조하면서도 헌금 강요하며 챙기고 있음.    ④형제적 일치로서 사랑(1고린 13장) : 성령의 현존의 표지를 나타내는 가장 확실하고 중요한 척도는 사랑이다. 사랑은 다른 이의 특성과 카리스마를 존중하고 또 사랑하게도 한다(1고린12,1-31).    ⑤참된 신앙 고백, “예수는 주님이시다” : 일차적이며 최고의 척도로서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1고린12,3). 예수가 주님이시라는 고백은 믿음과 사랑안에서 그분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의 은총(마태16,17-18)을 통해서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 사이비 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느분인지 이해하지 못하며, 미완성적 구세주로 여기고, 자신들이 구원의 완성자로서 재림 구세주로 자처함. 그들이 성령과 함께 하지 않으며,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는 것이 분명함. 성령안에서만 예수님이 주님, 구세주이심을 믿고 고백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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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식별

4. 영의 식별   4.1. 영성의 수직적 측면과 수평적 측면의 조화와 균형성    가) 종말적 측면과 육화적 측면    나) 그리스도의 천주성과 인성의 통합적 이해    다) 십자가의 두 측면    라) 사랑의 두 측면    마) 기도와 활동의 조화    바)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 사랑    사) 미사전례의 두 차원(하느님께 제사+ 이웃과의 친교 및 나눔)   4.2. 사적 계시와 예언에 관한 영의 식별 지침    ⓐ어떤 계시도 성서말씀이나 그에 근거한 교리․원리에 어긋나면 거짓된 것으로 배척함.    ⓑ신학자의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가르침에 위배되는 경우엔 의심스럽다.    ⓒ계시내용이 전반적인 것은 신빙성이 있으나, 일부 계시부분이 거짓일 경우, 모든 부분을       배척할 필요없으며, 좀더 조사한다.    ⓓ어떤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곧 그 계시는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는 결정적       증거는 되지 않는다(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악령으로부터 올수 있다).    ⓔ단순히 이상하거나 필요없는 것들에 관한 계시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계시를 받은 사람은 조심스러이 조사를 받아야 한다(특별히 기질, 성격, 정신건강, 사회성에       관해서). 그의 전인적 측면에서 조사되어야 한다. – 정신, 육체가 건강한지, 겸손하고 애덕이       있으며, 사려깊고 영적 삶에 진보하려 애쓰는지 등을 살핀다(성령의 열매와 그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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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나라 지향적, 의생적인 영성 등..

 3.2.8. 하느님 나라 지향적인 영성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는 하늘나라로 나아가도록 운명지어져 있다면 따라서 하느님나라에로 지향되어 있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인 동시에 정의와 평화의 나라이다. 진정한 그리스도교 영성은 정의와 평화 그리고 인권의 제 요구에 항상 응답적인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그리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요구와 울부짖음에 대하여 단절되어 있거나 무관심할 수 없다.   정의는 중요 덕목 중의 하나이다. 그것이 결여된다면, 그리스도인에게 거룩함의 본질적인 어떤 것이 없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에 대한 관심은 예수님의 설교와 선교활동의 중심이었다.  그분이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에게 하신 다음의 말씀은 그분의 주요 사명이 무엇인지 잘 들어내 준다.“너희가 듣고 본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하여진다.”(마태 11,4-5)   예수님 자신이 그분의 교회의 사목자들을 위한 규범을 정하셨다.  그들로하여금 그분이 하신 것 같이 사목하길 원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 생각에만 집착하여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의 합법적인 요구에 둔감하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지향한 영적 생활 양식을 배양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교회의 직무들, 의식들, 법률들, 전통들 그리고 관습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는 것과 하느님께 대해 주의를 기울이며 그분께 봉사하는 것을 혼동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교 영성 및 사목적 영성은 하늘나라 지향적인 것이지 종교 지향적인 것(종교제도 자체, 형식적 종교 생활)이 아니다.    3.2.9. 희생적인 영성   그리스도인은 세례성사를 통하여 성화의 은총을 받았지만 역시 죄인이다. 죄 속의 성인인 것이다. 십자가를 벗어난 그리스도 영성을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영성은 언제나 희생, 이기주의와 자기 모순까지 극복해야하는 절제, 극기 등을 내포한다. 그것은 언제나 원죄의 영향, 즉 교만, 정욕, 위선, 인색, 나태 등을 주의해야한다.    그리스도인은 부활 대축일 없는 성 금요일을 생각할 수 없듯이, 성 금요일 없는 부활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인간으로서 희생이 없는 사랑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사랑은 그 본질상 희생적인 것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타산 없이 준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추구한다.   그리스도인은 가정 안에서 희생적으로 사랑을 지향하듯이, 보다 큰 가정인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그것을 넘어 더 큰 인류의 가정 안에서 희생적인 사랑을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희생적 영성은 향주덕과 윤리덕(지덕, 의덕, 용덕, 절덕) 안에 그 근거를 두고 있기 마련이다. 희생적 영성의 중심은 항상 사랑이다. 사랑 없는 희생은 공허한 것이기 때문이다.    3.2.10. 교회지향적 영성   교회의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무엇보다 교회를 통한 하느님의 말씀의 선포로부터 생겨나며 세례와 견진성사로써 확증되고 성체성사로써 지속적으로 양육되며, 끊임없이 신앙 공동체 자체 안에서 성장되고 지탱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영성은 교회의 생활, 특별히 전례 및 성사 생활과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성체성사를 그 중심에 두지 않는 영성은 진정한 그리스도교 영성이라 할 수 없다.   성체께 예배드리는 것이 교회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교회이며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사명에로 사람들을 부르는 것이 교회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영성 및 사목적 영성은 교회론적으로 균형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공동체로서, 제도로서 그리고 신비체로서의 교회의 본성 전체를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것은 말씀과 예배와 증거, 봉사라는 교회의 사명 전체를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참으로 교회적인 것이지 독자적인 것이거나 개별적인 것이 아니다.    3.2.11.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영성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성성에의 소명은 보편적인 것이다 (교회헌장 5장 참조). 사제나 수도자를 위한 ‘더 높은’ 영성이나 평신도를 위한 ‘더 낮은’ 영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고 온 교회는 성성에로 불림을 받았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결코 위계적인 것이거나 혹은 선발된 자만의 것이 아니다. “신분이나 계급의 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을 실현하도록 불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명한 일이며…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 신자는 성성과 자기 신분의 완덕을 추구하도록 부르심을 받고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다”(교회헌장 40.42항)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영성은 서품이나 수도서원에 근거를 두고있는 것이 아니며 세례 및 견진성사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이다.    3.2.12. 신학적으로 검증되고 뒷받침되는 영성    영성은 신학과 연관되어 있다. 영성은 실천적 삶이고 체험이지만, 한편 신학에 의해 제시되고 반성되며 평가되고 적용되어야 한다. 계시진리에 의한 신학적 뒷받침 없는 영성은 빗나갈 수 있는 것이다. 빗나간 영성은 비복음적인 동시에 비신학적인 것이다.   특히 영성신학은 하느님의 계시원리에서 출발하여, 경험적 자료들(그리스도인들의 체험, 생활 경험, 심리학, 사회학적 자료들)을 이용하며, 영성생활의 성장과 발전을 다루는 법칙과 규정을 제공해 준다. 즉 그리스도인의 영성생활의 시초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정상적으로 거쳐가는 과정을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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