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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관심을“ | |
주요 실천 사항 : ① 친구에게 멜 보내기 ② 학생미사 참례하기 ③ 셀 모임에 참석하기 | |
◈ 정작 중요한 것들을 외면하는 사람들 ◈
1. 독서와 복음
제1독서: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은 한마디도 보태거나 빼지 못한다. 주님의 계명들을 너희는 지켜야 한다” 하느님의 법을 지키는 것은 하느님 백성의 특권이요 영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구속하려고하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 주려고하십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지킨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제2독서:야고보 사도는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말씀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십니다. 빈말보다는 구체적인 사랑 실천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행동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복음: 참된 정결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들은 몸의 정결을 중요시 하여 자주 닦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밖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 안에서 나오는 것임을 말씀해 주십니다. 아무리 손을 닦아도 마음에서 일어나는 죄악과 분노를 씻어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2. 정말로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라고 가르치면서 자신은 안 지키는 사람들. 신앙인이면서 신앙인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 보여 지는 것에는 많은 노력을 투자하지만 보여 지지 않는 것에는 소홀히 하는 신앙인들. 우리는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입니까?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떳떳하고 순수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요? 그들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돌보아 주며, 자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신앙생활을 어리석은 삶, 손해 보는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지혜롭고 슬기로운 삶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입술로만 하느님을 공경하지 않고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경배하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우리를 입니다.
“벗에게 해로운 일 아니 하는 이, 이웃을 비방하지 않는 우리옵니다. 악한 자를 눈 아래 얕이 보아도, 주님을 섬기는 이면 존경하는 저 이옵니다.”라고 고백하도록 노력합시다.
정작 중요한 것들을 외면하는 사람들.
1. 시작기도: 말씀읽기: 마르코7,1-8.14-15.21-23
1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 몇 사람이 예수께 모여 왔다가 2 제자 몇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원래 바리사이파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들은 조상의 전통에 따라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깨끗이 씻었고 4 또 시장에서 돌아 왔을 때에는 반드시 몸을 씻고 나서야 음식을 먹는 관습이 있었다. 그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았는데 가령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 같은 것을 씻는 일들이 그것이다. 5 그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께 “왜 당신의 제자들은 조상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하고 따졌다. 6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사야가 무어라고 예언했느냐?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구나. 7 그들은 나를 헛되이 예배하며 사람의 계명을 하느님의 것인 양 가르친다’ 고 했는데 이것은 바로 너희와 같은 위선자를 두고 한 말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 14 예수께서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시고 이렇게 가르치셨다. “너희는 내 말을 새겨 들어라. 15 무엇이든지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 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더럽히는 것은 도리어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20 안에서 나오는 것은 곧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음행, 도둑질, 살인, 21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같은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이다. 22 이런 악한 것들은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23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띠로 지방으로 가셨다. 거기서 어떤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계시려 했으나 결국 알려지고 말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정작 중요한 것들을 외면하는 사람들.
내적인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외적인 것이 중요한가? 물론 둘 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내적인 것을 무시한 체 외적인 것에만 치중한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얼굴만 잘생기면 뭐하겠습니까? 성격도 좋아야 하고, 공부도 잘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외적인 것만을 존중하는 유대교 신심을 날카롭게 비판하십니다. 참다운 정결이란 무엇일까? 마음과 정신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그런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제자 몇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5“왜 당신의 제자들은 조상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유다인들은 일반적으로 식사 전에 적어도 물 한 움큼으로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손을 씻지 않고 먹는다는 것은 유다인 율법학자들에게 있어서는 거룩한 관습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커다란 범죄, 위반이었습니다. 랍비 아키바는 목말라 죽을 지경이었지만, 식사 전에 주는 한 줌의 물로 손을 씻었습니다.
그런데 이 규정은 모세까지 올라 갈 수 없고, 구약의 모세오경에도 없는 것이었지만 후에 율법의 해석으로서 또 실생활에 대한 율법의 응용으로서 율법학자들에 의해 결정되고, 그리고 그들 학파에게 전해진 규칙이었습니다. 레위기 11장 15절에는 율법상의 깨끗함에 대한 규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손을 씻는 일에 대한 규정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들에게만 국한된 것이며, 그들의 사생활을 규제하는 규정은 아니었습니다. 이 규정을 사제 아닌 일반 신자의 의무라고 규정한 것은 힛레루와 샹마이라는 두 유명한 랍비의 영향인 듯 합니다. 그런데 만지는 음식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모든 식사에 앞서서 손을 씻어 깨끗이 한다는 규정은 모든 유다인이 인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 거의는 이에 구애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율법에 기록되지 않은 규정은 지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레위기가 말하는 성덕에 대한 이상을 일반인들에게 씌우려고, 사제들에게만 명령된 행위를 모든 유다인에게 지키게 하려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생각에 크게 반발하고 대립하였습니다.
또 시장에서 돌아오면 더 엄한 규정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시장에서는 죄인이나 이방인의 상인과 접촉하게 됩니다. 따라서 몹시 크게 더러워질 위험이 있었던 것입니다. 큰 그릇에다 팔을 팔꿈치까지 담궈야 했습니다. 팔레스틴과 같이 물이 귀한 지방에서는 이런 씻음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랍비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런 씻음을 실천하기 위해 가령 4마일(6.4키로)을 걸을지라도 고생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쓰는 그릇을 깨끗하게 하는 다른 특별한 규정을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나무 또는 쇠붙이 잔, 접시에 한정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질그릇은 부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은 대단한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6 이사야가 무어라고 예언했느냐?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구나. 7 그들은 나를 헛되이 예배하며 사람의 계명을 하느님의 것인 양 가르친다’ 고 했는데 이것은 바로 너희와 같은 위선자를 두고 한 말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
성당에 있다고 해서 다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있어도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참으로 더럽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는 그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5 무엇이든지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 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하느님 앞에서 사람을 깨끗하게 하고 또 더럽게 하는 것은 물질이나 음식이 아닙니다.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와 마음이 행실로 드러나 깨끗하게도 하고, 더럽게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형식적인 종교와 그들의 윤리관을 공격할 뿐만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구약 자체도 공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돼지고기를 먹기보다는 죽음을 택한 늙은 엘르아잘의 영웅적인 정신이나 일곱 아이를 둔 어머니의 순교 이야기(마카베오)를 군중들과 제자들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세대에 걸친 그들의 교육과 사고방식이 한 순간에 바뀔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마카베오서에서 돼지고기를 부정하는 것은 박해자들이 유대인들의 신앙을 없애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즉 돼지고기를 먹어서 몸이 부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돼지고기를 먹음을 통해서 신앙을 부정하게 만들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박해자들이 없는 상황에서 돼지고기가 신앙을 위협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요빠에서 베드로 앞에 여러 가지 짐승을 담은 보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먹으라는 소리가 들려왔을 때, 베드로는 두려워한 나머지 자기는 더러운 것을 먹은 일이 없다고 외칩니다(사도10,14). 보통 유다인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깨끗함과 더러움은 사물에 붙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사고방식을 배격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깨끗함과 더러움의 근원은 사람의 마음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음식은 다 깨끗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먹는 것이 사람을 부정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잠깐. 개고기를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개고기를 안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는 못 먹는다고. 그런데 개고기를 잘게 썰어서 육개장이라고 하면 맛있다고 먹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음식의 맛도 선입견이 좌우하는 듯 합니다. 또한 남이 먹는 음식을 가지고 뭐라 해도 안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다고 야만인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성서의 이 말씀을 한번쯤 묵상해 본다면 그런 말을 삼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15 더럽히는 것은 도리어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나에게서 나오는 더러움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음행,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같은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을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나를 위한 마음에서 행하는 것들은 악한 것이 될 수 있지만, 남을 배려하면서 하는 것들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이 됩니다
2. 말씀나누기: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하느님을 입술이 아니라 마음으로 공경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2.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바라보면서 못마땅한 것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3. 친구를 사귈 때 외모만을 보고 사귑니까? 아니면 내면의 모습을 보고 사귑니까? 만일 내가 내세울 것이 없는 외모라면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선택을 받고 싶습니까? 혹시 폭탄대접을?
3. 알림 및 토의
– 전달할 내용이 있거나 함께 논의할 이야기가 있다면 이 시간에 진행한다. 친구들에게 권면하여 다음 주에는 누구를 성당으로 인도할 것인지를. 그리고 새로 나온 조원들을 환영하는 인사를 하고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친교를 나눈다.
4. 말씀으로 기도하기
– 한 두 사람이 오늘 말씀으로 기도를 하고 마친다. 그리고 성가를 부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