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리다 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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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족 구성원 되기“ | |
주요 실천 사항 : 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기 ② 미사, 셀모임 참석하기 | |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1. 시작기도: 말씀읽기: 루가 9,28-36
28 이 말씀을 하신 뒤 여드레쯤 되어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다. 29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당신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그 옷이 하얗게 번쩍였다. 30 이 때 마침 두 사람이 예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31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바로 (세상을) 떠나가실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32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깊이 잠들었다가 깨어나서야 예수의 영광을 보았고 또한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33 두 사람이 예수와 헤어지게 되자 베드로는 예수께 “스승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34 그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데 구름이 일어 그들을 감쌌다. 그리고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두려워졌다. 35 그런데 그 구름에서 소리가 울려 “이는 내가 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였다. 36 그 소리가 울렸을 때는 예수만 보였다.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 무렵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보통 만화 영화의 주인공은 변신을 합니다.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나 특별한 때 변신을 하여 평화를 지킵니다. 그들은 평상시에는 자신들의 본 모습을 감추고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수난과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확고한 힘을 주기 위해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가이사리아에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고백했습니다. 변모에서는 하느님이신 아버지께서 세 사도들 앞에서 그분이 하느님이심을 선언하고 예수님께 순명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낙담하고 있는 그들의 마음을 들어 높이기 위하여 변모는 몹시 시기적절했습니다.
가끔은 우리도 변신합니다. 화가 나면 그 무엇보다도 무서운 마귀의 모습으로, 마음이 편해지면 그 누구보다도 순진한 양으로. 어떤 것이 진짜 내 모습인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변신했을 때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보다는…
28 이 말씀을 하신 뒤 여드레쯤 되어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다. 29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당신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그 옷이 하얗게 번쩍였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결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고통받는 야훼의 종, 속죄양,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는 ”이러한 메시아를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변모는 사람의 아들에 의한 심판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알려주셨던 그 영광을, 한 순간이나마 보여줌으로써 사도들의 마음에 신뢰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가이사리아에서 주신 계시를 보충하고 완성하고 또 예수님이 완전히 영적 메시아이심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영광스러운 변모의 장소로 숭배된 갈릴래아의 다볼 산은 확실히 오늘날까지도 선뜻 신현 사건, 즉 현세적 실 상황에서 하느님 세계의 현시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장엄한 자리입니다.
어느 성서 학자는 이 산이 헤르몬산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산 높이는 2,793미터로 쉽게 오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나이산이라는 설도 있지만 다볼산이라는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다볼산은 높이가 562미터이며 나자렛 동남 지점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한 제자들은 세 명 뿐입니다. 교회의 으뜸인 베드로, 열 두 사람 중 최초로 예수님을 위하여 피를 흘리게 될(44년) 야고보, 그리고 예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셨던 요한. 이 세사도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보게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끊임없이 기도하시는 예수님. 오늘 예수님의 변모는 기도 중에 일어납니다. 나 또한 기도를 한다면 변화될 것입니다. 거룩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온화한 모습으로…
30 이 때 마침 두 사람이 예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아마 사도들은 잠시 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눈을 들어보니 그들의 눈앞에는 엘리야와 모세, 그리고 너무도 눈부신 예수님께서 계셨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대표하고 있는 율법과 예언자, 곧 구약 시대가 예수님 옆에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실 때 모세의 권위 이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메시아의 길을 개척하고 이것을 이스라엘에 알릴 역할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나타남으로써 구약과 신약의 이음, 또 율법과 예언이 그리스도께 종속됨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그이 복음으로 구약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완성하고 옛 예언을 실현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31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바로 (세상을) 떠나가실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세와 엘리야와 나누신 대화의 내용은 당신의 죽음에 대해서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에서의 제사. 예수님께서 이 모습을 보여주신 이유는 사도들의 마음에서 십자가의 걸림을 없애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평생 못 잊을 장면을 보게 된 사도들은 스승이신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고 마침내 스승이신 예수님처럼 그렇게 죽게 될 것입니다.
32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깊이 잠들었다가 깨어나서야 예수의 영광을 보았고 또한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33 두 사람이 예수와 헤어지게 되자 베드로는 예수께 “스승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베드로 사도는 모세와 엘리야가 머물고 예수님께서 지금부터 자기 나라를 넓히리라는 상상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좌우지간 베드로는 이 놀라운 광경에 너무 매료되어 이 빛나는 인물들에게 머물기를 청합니다. 그는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그는 이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것을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행하고 싶어 했습니다. 세 개의 초막은 초막절을 상기시킨다. 이것은 메시아적이고 종말론적인 기대와 깊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즉 축제 주간은 구원의 시기를 미리 기뻐하는 때였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자신과 다른 두 제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과 천상적 인물들을 위해서 초막을 짓고 싶어 했습니다. 자신들은 그 초막 앞에서 노숙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예언하신(8,31)이후에 그가 보인 태도와 유사합니다. 그때 그는 그러한 과정과 목적을 단념하시도록 예수님께 간청하였고, 여기서는 그 빛나는 인물들이 머물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맛을 찾아서 헤매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디 가니까 좋더라 하면 우르르 몰려가고, 저기 가니까 기도가 효험이 있더라 하면 그쪽으로 몰립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기도가 주는 맛에만 중점을 두면 안됩니다. 그 맛을 통해서 그분께서 나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신 이유는 그 기쁨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난과 죽음 앞에서 힘을 내라고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어떤 맛이 아니라 그분의 뜻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손과 발이 즉시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34 그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데 구름이 일어 그들을 감쌌다. 그리고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두려워졌다. 35 그런데 그 구름에서 소리가 울려 “이는 내가 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였다.
구약에서 구름은 하느님께서 현존하실 때 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율법을 주셨을 때 구름이 시나이산을 뒤덮고 있었습니다(출애24,15). 모세가 장막에 들어 갈 때 구름이 내려와 머물고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의 지도자와 말씀을 하셨습니다(출애33,9-11). 옛날 시나이산에서와 같이 다볼산에서 하느님께서는 구름을 통하여 말씀을 하십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으라고. 하느님께서는 직접 예수님께 말씀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에게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소개하십니다. 예수님의 세례 때에도 세례자요한의 귀에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마르1,11).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분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던 간에 그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가슴이 뜨끔했을 것입니다. 수난예고를 하실 때 안 된다고 펄쩍 뛰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은 것만을 찾지 말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을 찾으려고 해야 합니다.
36 그 소리가 울렸을 때는 예수만 보였다.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 무렵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졌지만 예수님만은 변함없이 계셨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사라질지라도 하느님만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엄청난 체험을 하게 된 사도들. 아무 말도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너무 기쁘거나, 너무 슬프거나, 너무 당황스러울 때, 우리는 아무 말을 못하게 됩니다. 베드로 사도와 다른 사도들은 마음 깊이 이것을 간직하고 내려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메시아께서 죽었다가 살아난다는 것을 아직 그들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이 있은 다음에야 비로소 “아하! 그 말씀이었는데 내가 못 알아들었구나!”하고 무릎을 칠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변모를 말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영광에 찬 변모를 말하면 수난의 괴로움을 믿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군중들에게 그릇된 메시아에 대한 희망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군중들은 고통 받는 메시아를 받아들일 준비를 아직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부활 후에 자연스럽게 밝혀질 것입니다. 메시아의 고통과 죽음이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2. 말씀나누기 –아래의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거나 오늘 말씀 중에 와 닿은 부분에 대해서 자신의 느낌을 나눕니다.
1. 나도 가끔은 천사의 모습처럼, 때로는 헐크의 모습처럼 그렇게 변합니다. 어떤 때 그렇게 변합니까?
2. 신앙인은 변화되어야 합니다. 신앙인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어야 합니까? 어떻게 변화되어야 합니까?
3. 알림 및 공지
1. 다음 주 복음 말씀 한두 절씩 나눠서 연구해 오기 2. 성서나 매일 미사 책 가지고 다니기
3. 라뽀니 책 들고 오기. 4. 학교생활 열심히 하기
4. 마침기도 …말씀으로 기도하기

멸시천대 십자가는 예수님이 지셨으니 감사하고 섬기리라
탈리다 쿰
“행복한 가족 구성원 되기“
주요 실천 사항 :
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기 ② 미사, 셀모임 참석하기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1. 시작기도: 말씀읽기: 루가 9,28-36
28 이 말씀을 하신 뒤 여드레쯤 되어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다. 29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당신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그 옷이 하얗게 번쩍였다. 30 이 때 마침 두 사람이 예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31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바로 (세상을) 떠나가실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32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깊이 잠들었다가 깨어나서야 예수의 영광을 보았고 또한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33 두 사람이 예수와 헤어지게 되자 베드로는 예수께 “스승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34 그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데 구름이 일어 그들을 감쌌다. 그리고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두려워졌다. 35 그런데 그 구름에서 소리가 울려 “이는 내가 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였다. 36 그 소리가 울렸을 때는 예수만 보였다.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 무렵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보통 만화 영화의 주인공은 변신을 합니다.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나 특별한 때 변신을 하여 평화를 지킵니다. 그들은 평상시에는 자신들의 본 모습을 감추고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수난과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확고한 힘을 주기 위해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가이사리아에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고백했습니다. 변모에서는 하느님이신 아버지께서 세 사도들 앞에서 그분이 하느님이심을 선언하고 예수님께 순명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낙담하고 있는 그들의 마음을 들어 높이기 위하여 변모는 몹시 시기적절했습니다.
가끔은 우리도 변신합니다. 화가 나면 그 무엇보다도 무서운 마귀의 모습으로, 마음이 편해지면 그 누구보다도 순진한 양으로. 어떤 것이 진짜 내 모습인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변신했을 때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보다는…
28 이 말씀을 하신 뒤 여드레쯤 되어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다. 29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당신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그 옷이 하얗게 번쩍였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결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고통받는 야훼의 종, 속죄양,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는 ”이러한 메시아를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변모는 사람의 아들에 의한 심판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알려주셨던 그 영광을, 한 순간이나마 보여줌으로써 사도들의 마음에 신뢰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가이사리아에서 주신 계시를 보충하고 완성하고 또 예수님이 완전히 영적 메시아이심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영광스러운 변모의 장소로 숭배된 갈릴래아의 다볼 산은 확실히 오늘날까지도 선뜻 신현 사건, 즉 현세적 실 상황에서 하느님 세계의 현시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장엄한 자리입니다.
어느 성서 학자는 이 산이 헤르몬산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산 높이는 2,793미터로 쉽게 오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나이산이라는 설도 있지만 다볼산이라는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다볼산은 높이가 562미터이며 나자렛 동남 지점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한 제자들은 세 명 뿐입니다. 교회의 으뜸인 베드로, 열 두 사람 중 최초로 예수님을 위하여 피를 흘리게 될(44년) 야고보, 그리고 예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셨던 요한. 이 세사도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보게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끊임없이 기도하시는 예수님. 오늘 예수님의 변모는 기도 중에 일어납니다. 나 또한 기도를 한다면 변화될 것입니다. 거룩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온화한 모습으로…
30 이 때 마침 두 사람이 예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아마 사도들은 잠시 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눈을 들어보니 그들의 눈앞에는 엘리야와 모세, 그리고 너무도 눈부신 예수님께서 계셨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대표하고 있는 율법과 예언자, 곧 구약 시대가 예수님 옆에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실 때 모세의 권위 이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메시아의 길을 개척하고 이것을 이스라엘에 알릴 역할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나타남으로써 구약과 신약의 이음, 또 율법과 예언이 그리스도께 종속됨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그이 복음으로 구약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완성하고 옛 예언을 실현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31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바로 (세상을) 떠나가실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세와 엘리야와 나누신 대화의 내용은 당신의 죽음에 대해서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에서의 제사. 예수님께서 이 모습을 보여주신 이유는 사도들의 마음에서 십자가의 걸림을 없애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평생 못 잊을 장면을 보게 된 사도들은 스승이신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고 마침내 스승이신 예수님처럼 그렇게 죽게 될 것입니다.
32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깊이 잠들었다가 깨어나서야 예수의 영광을 보았고 또한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33 두 사람이 예수와 헤어지게 되자 베드로는 예수께 “스승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베드로 사도는 모세와 엘리야가 머물고 예수님께서 지금부터 자기 나라를 넓히리라는 상상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좌우지간 베드로는 이 놀라운 광경에 너무 매료되어 이 빛나는 인물들에게 머물기를 청합니다. 그는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그는 이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것을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행하고 싶어 했습니다. 세 개의 초막은 초막절을 상기시킨다. 이것은 메시아적이고 종말론적인 기대와 깊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즉 축제 주간은 구원의 시기를 미리 기뻐하는 때였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자신과 다른 두 제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과 천상적 인물들을 위해서 초막을 짓고 싶어 했습니다. 자신들은 그 초막 앞에서 노숙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예언하신(8,31)이후에 그가 보인 태도와 유사합니다. 그때 그는 그러한 과정과 목적을 단념하시도록 예수님께 간청하였고, 여기서는 그 빛나는 인물들이 머물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맛을 찾아서 헤매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디 가니까 좋더라 하면 우르르 몰려가고, 저기 가니까 기도가 효험이 있더라 하면 그쪽으로 몰립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기도가 주는 맛에만 중점을 두면 안됩니다. 그 맛을 통해서 그분께서 나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신 이유는 그 기쁨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난과 죽음 앞에서 힘을 내라고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어떤 맛이 아니라 그분의 뜻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손과 발이 즉시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34 그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데 구름이 일어 그들을 감쌌다. 그리고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두려워졌다. 35 그런데 그 구름에서 소리가 울려 “이는 내가 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였다.
구약에서 구름은 하느님께서 현존하실 때 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율법을 주셨을 때 구름이 시나이산을 뒤덮고 있었습니다(출애24,15). 모세가 장막에 들어 갈 때 구름이 내려와 머물고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의 지도자와 말씀을 하셨습니다(출애33,9-11). 옛날 시나이산에서와 같이 다볼산에서 하느님께서는 구름을 통하여 말씀을 하십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으라고. 하느님께서는 직접 예수님께 말씀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에게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소개하십니다. 예수님의 세례 때에도 세례자요한의 귀에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마르1,11).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분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던 간에 그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가슴이 뜨끔했을 것입니다. 수난예고를 하실 때 안 된다고 펄쩍 뛰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은 것만을 찾지 말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을 찾으려고 해야 합니다.
36 그 소리가 울렸을 때는 예수만 보였다.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 무렵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졌지만 예수님만은 변함없이 계셨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사라질지라도 하느님만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엄청난 체험을 하게 된 사도들. 아무 말도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너무 기쁘거나, 너무 슬프거나, 너무 당황스러울 때, 우리는 아무 말을 못하게 됩니다. 베드로 사도와 다른 사도들은 마음 깊이 이것을 간직하고 내려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메시아께서 죽었다가 살아난다는 것을 아직 그들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이 있은 다음에야 비로소 “아하! 그 말씀이었는데 내가 못 알아들었구나!”하고 무릎을 칠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변모를 말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영광에 찬 변모를 말하면 수난의 괴로움을 믿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군중들에게 그릇된 메시아에 대한 희망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군중들은 고통 받는 메시아를 받아들일 준비를 아직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부활 후에 자연스럽게 밝혀질 것입니다. 메시아의 고통과 죽음이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2. 말씀나누기 –아래의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거나 오늘 말씀 중에 와 닿은 부분에 대해서 자신의 느낌을 나눕니다.
1. 나도 가끔은 천사의 모습처럼, 때로는 헐크의 모습처럼 그렇게 변합니다. 어떤 때 그렇게 변합니까?
2. 신앙인은 변화되어야 합니다. 신앙인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어야 합니까? 어떻게 변화되어야 합니까?
3. 알림 및 공지
1. 다음 주 복음 말씀 한두 절씩 나눠서 연구해 오기 2. 성서나 매일 미사 책 가지고 다니기
3. 라뽀니 책 들고 오기. 4. 학교생활 열심히 하기
4. 마침기도 …말씀으로 기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