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부활 제 5주일 셀모임 자료

 

부활 제 5주일










탈리다 쿰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교리에 참석하기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1. 시작기도: 말씀읽기: 요한 14,1-6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그러자 토마가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번에는 필립보가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하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필립보야, 들어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니 무슨 말이냐?


10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못 믿겠거든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최후의 만찬을 하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배반, 베드로의 부인 등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당신께서 떠나가실 것(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예고하시면서 당신께서 아주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다시 제자들에게 돌아오실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제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예수님께서는 이미 제자들의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믿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특별한 신뢰입니다. 나 또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많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하려고 하기에 감당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는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끊임없는 세상의 적개심과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들의 마음을 불안케 하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믿음에 대하여 이와 같이 호소하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떠나시는 이유를 하나 말씀해 주십니다.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이 있을 곳을 준비하려 하신다는 말씀. 제자들에게 있어서 아마 가장 큰 위로가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삶을 합당하게 준비시키셨고, 제자들은 합당하게 하늘나라를 위해 준비했으니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하늘나라에 불러올리실 것입니다.




3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


거처할 곳이 많다는 것은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버지의 집”에 거처할 곳은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아버지의 일치된 공동체를 시사하십니다. 그리고 이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가셔야만 합니다. 아버지 하느님께로 가는 것을 가리키시지만 그 전에 예수님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으니 죽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이 천상세계에서 거처할 자리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하늘에서의 자리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니 지금도 예수님과 함께 있습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나는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죽음 이후에 예수님과 나의 함께 함은 완성될 것입니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예수님의 사명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자신의 희생입니다. 어떤 세상적인 영광을 받으러 오신 분도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당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메시아이신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가르치셨기에 안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5  그러자 토마가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시작하시려고 하시는 그 여행(수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이 예사로운 경우에서 말하는 여행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토마 사도는 제자들 모두를 대표하여 의견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느님께로 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생각해 본다면 그 길은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이고, 그 길은 예수님 자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계시하시기 때문에 길이십니다.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은 길의 의미를 더욱 명료하게 설명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으로 이끄는 진리를 계시하고, 그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내가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실천하고 있기에 나는 그분께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신 그 길. 십자가의 길. 그 길의 목적지는 바로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 자신이 길이라고 말씀하시니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알 수 있고, 또한 구원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놓으시려고 당신을 십자가상의 제물로 바치실 것입니다.




7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예전에 정말 멋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을 볼 때마다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저 사람의 부모님은 누구일까? 어떻게 자녀를 저렇게 아름답게 성장시켰을까?”자녀를 보면 그 안에서 부모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또한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아버지의 모습도 알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벌써 아버지를 보았다고 확신해야 했던 것입니다.




8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이번에는 필립보 사도가 봉창을 두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완전한 모습이었고, 아버지와 같은 본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필립보는 아버지를 보게 해 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친구들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내 모습 안에서 하느님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9  “필립보야, 들어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니 무슨 말이냐?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 안에 있는 하느님을 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문하십니다. “뭔 봉창 두드리는 소리여! 나를 봤으면 아버지를 본 것이쥐…”


10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 있다는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의 생명과 행동이 아버지 하느님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행동은 하느님을 계시하며 따라서 하느님께서 “예수님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없다면 하느님을 볼 수 없고, 신앙이 없다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의 눈으로 본다면 예수님의 모든 일이 결국 하느님의 일이고, 예수님의 모든 의지는 하느님의 뜻이며,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느님을 보여주는 통로요, 하느님께로 인도해주시는 길입니다. 즉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못 믿겠거든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필립보의 믿음은 확실했지만 충분치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필립보의 모습은 지금의 나의 모습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제자들에게 거듭거듭 말씀하셨던 것을 회상시키십니다. 자신이 말씀하실 때는 스스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또 행하실 때도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즉 아버지는 아드님 안에 계시고, 아드님은 아버지 안에 계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를 들어서 믿게 하십니다. 아버지는 아드님 안에 계시고, 아드님은 아버지 안에 계시다는 것을…그래도 못 믿겠다면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서라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12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일들!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시고, 치유하시고…”이 모든 일들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역사 안에서, 그리고 나를 통해서 그 일들이 이루어졌고,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께로 가셨지만 예수님의 일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아니 이제 시작인 것입니다.




2.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는 예수님 안에서 길을 찾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받아들임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받고 있습니까? 나는 어떤 길에 서 있습니까? 어떤 진리를 받아들이고 있고, 어떤 생명을 원하고 있습니까?




2. 나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을 뵙게 해 달라고 청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친구들의 모습 안에서 발견되는 하느님의 모습을 외면하고, 내가 보고 싶은 것만을 청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3. 공지사항


1. 5:30분까지 성당에 옵시다.  2. 셀 모임에 적극 참여 합시다. 3. 개인 성가책 가지고 다닙시다.




4. 말씀으로 기도하기(적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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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부활 제 5주일

    탈리다 쿰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교리에 참석하기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1. 시작기도: 말씀읽기: 요한 14,1-6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그러자 토마가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번에는 필립보가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하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필립보야, 들어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니 무슨 말이냐?

    10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못 믿겠거든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최후의 만찬을 하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배반, 베드로의 부인 등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당신께서 떠나가실 것(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예고하시면서 당신께서 아주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다시 제자들에게 돌아오실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제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예수님께서는 이미 제자들의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믿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특별한 신뢰입니다. 나 또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많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하려고 하기에 감당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는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끊임없는 세상의 적개심과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들의 마음을 불안케 하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믿음에 대하여 이와 같이 호소하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떠나시는 이유를 하나 말씀해 주십니다.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이 있을 곳을 준비하려 하신다는 말씀. 제자들에게 있어서 아마 가장 큰 위로가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삶을 합당하게 준비시키셨고, 제자들은 합당하게 하늘나라를 위해 준비했으니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하늘나라에 불러올리실 것입니다.


    3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

    거처할 곳이 많다는 것은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버지의 집”에 거처할 곳은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아버지의 일치된 공동체를 시사하십니다. 그리고 이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가셔야만 합니다. 아버지 하느님께로 가는 것을 가리키시지만 그 전에 예수님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으니 죽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이 천상세계에서 거처할 자리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하늘에서의 자리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니 지금도 예수님과 함께 있습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나는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죽음 이후에 예수님과 나의 함께 함은 완성될 것입니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예수님의 사명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자신의 희생입니다. 어떤 세상적인 영광을 받으러 오신 분도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당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메시아이신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가르치셨기에 안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5  그러자 토마가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시작하시려고 하시는 그 여행(수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이 예사로운 경우에서 말하는 여행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토마 사도는 제자들 모두를 대표하여 의견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느님께로 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생각해 본다면 그 길은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이고, 그 길은 예수님 자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계시하시기 때문에 길이십니다.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은 길의 의미를 더욱 명료하게 설명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으로 이끄는 진리를 계시하고, 그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내가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실천하고 있기에 나는 그분께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신 그 길. 십자가의 길. 그 길의 목적지는 바로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 자신이 길이라고 말씀하시니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알 수 있고, 또한 구원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놓으시려고 당신을 십자가상의 제물로 바치실 것입니다.


    7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예전에 정말 멋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을 볼 때마다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저 사람의 부모님은 누구일까? 어떻게 자녀를 저렇게 아름답게 성장시켰을까?”자녀를 보면 그 안에서 부모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또한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아버지의 모습도 알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벌써 아버지를 보았다고 확신해야 했던 것입니다.


    8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이번에는 필립보 사도가 봉창을 두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완전한 모습이었고, 아버지와 같은 본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필립보는 아버지를 보게 해 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친구들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내 모습 안에서 하느님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9  “필립보야, 들어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니 무슨 말이냐?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 안에 있는 하느님을 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문하십니다. “뭔 봉창 두드리는 소리여! 나를 봤으면 아버지를 본 것이쥐…”

    10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 있다는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의 생명과 행동이 아버지 하느님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행동은 하느님을 계시하며 따라서 하느님께서 “예수님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없다면 하느님을 볼 수 없고, 신앙이 없다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의 눈으로 본다면 예수님의 모든 일이 결국 하느님의 일이고, 예수님의 모든 의지는 하느님의 뜻이며,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느님을 보여주는 통로요, 하느님께로 인도해주시는 길입니다. 즉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못 믿겠거든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필립보의 믿음은 확실했지만 충분치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필립보의 모습은 지금의 나의 모습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제자들에게 거듭거듭 말씀하셨던 것을 회상시키십니다. 자신이 말씀하실 때는 스스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또 행하실 때도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즉 아버지는 아드님 안에 계시고, 아드님은 아버지 안에 계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를 들어서 믿게 하십니다. 아버지는 아드님 안에 계시고, 아드님은 아버지 안에 계시다는 것을…그래도 못 믿겠다면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서라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12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일들!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시고, 치유하시고…”이 모든 일들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역사 안에서, 그리고 나를 통해서 그 일들이 이루어졌고,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께로 가셨지만 예수님의 일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아니 이제 시작인 것입니다.


    2.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는 예수님 안에서 길을 찾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받아들임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받고 있습니까? 나는 어떤 길에 서 있습니까? 어떤 진리를 받아들이고 있고, 어떤 생명을 원하고 있습니까?


    2. 나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을 뵙게 해 달라고 청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친구들의 모습 안에서 발견되는 하느님의 모습을 외면하고, 내가 보고 싶은 것만을 청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3. 공지사항

    1. 5:30분까지 성당에 옵시다.  2. 셀 모임에 적극 참여 합시다. 3. 개인 성가책 가지고 다닙시다.


    4. 말씀으로 기도하기(적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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