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 그는 누구인가? – 엘리야

 

세례자 요한! 그는 누구인가?

1. 생애

예언자, 구세주가 오실 것을 선포한 인물, 성인,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였으며 회개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세례를 주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라고 부른다. 탄생 대축일은 6월 24일이며, 수난 기념일은 8월 29일이다.



① 역사적 언급과 평가

요세푸스는 세례자 요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일부 유대인들에게 헤로데의 군대를 멸망시킨 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여겨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례자라고 불리는 요한에게 헤로데가 한 일을 복수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정당하게 그를 책벌하셨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헤로데는 요한이 선한 사람이었고, 유대인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서 그들이 덕을 함양하고 상대방에 대한 정의와 하느님께 대한 신심을 기르도록 하였을 뿐인데도 그를 죽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어떤 죄를 용서받기보다는 차라리 몸의 정화를 얻고자 하고 이리하여 그들의 영혼이 정의로 이미 깨끗하여졌다고 간주된다면 하느님께서(자신이 집전하는) 세례를 받아 주시리라는 것이 요한의 생각이었다. (소위 평범한) 유대인들이 요한 주위에 모였을 때 그들은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 흥분이 절정에 달했으므로 헤로데는 군중들을 설득하는 요한의 놀라운 능력이 모종의 폭동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하기 시작하였다. 군중들은 요한이 권고하는 것은 무엇이나 할 것같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헤로데는 요한이 폭동에 불을 붙이기 전에 먼저 공격하여 그를 제거하려고 작정하였다. 헤로데는 이렇게 하는 것이 상황이 악화되어 위기에 빠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헤로데의 음모로 인해 요한은 앞서 언급한 마캐루스 성체로 사술에 묶여 압송되었다. 거기서 그는 처형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헤로데 군대가 패배한 것은 하느님께서 그를 벌하시고 요한의 원수를 갚아 주시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상과 같은 요세푸스의 진술은 복음서가 전하는 종말론적인 예언자로서의 요한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오직 자신의 권위에 근거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유일회적인 세례를 베풀었기에 별칭으로 세례자라고 불렸다는 점, 그는 많은 군중들을 매혹시켰고 이를 두려워한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해 처형되었다는 점은 서로 일치한다. 아울러 일부 유대인들은 헤로데가 서기 36년 나바테아 왕국의 아레타스 4세에 의해 군사적으로 패한 사실을 요한의 부당한 죽음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으로 해석하였을 만큼 요한의 죽음 후에도 그를 흠모하는 군중들이 있었음에도 신약성서와 일치한다. 또한, 요한을 메시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요한복음서와 사도행전은 요한의 제자들과의 경쟁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요한은 살아 있을 때나 죽은 후에도 복음사가들이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그를 적절히 해석하는 대 늘 어려움을 겪을 만큼 독자적인 인물로 남아 있었다.



②<예언자적 삶> 성장 배경 :

루카 복음서 1장은 요한이 즈카르야라는 사제의 외아들로 태어난 이야기를 전해 준다.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면, 요한이 사제직의 계승을 거부하고 광야로 나가 성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사죄를 목표로 세례를 베풀었다는 것은 분명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요한의 성장 과정을 언급하는 루카 복음 1장 80절은 요한과 쿰란 공동체와의 관련성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에세네파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입양하여 에세네의 관습에 따라 교육을 시켰던 것처럼, 어린 요한은 쿰란 공동체에서 종교적 훈련을 받고, 유대의 광야에서 독자적인 예언자요 금욕주의자로 처신하게 되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요한은 세상을 기피하고 광야에서 탈속의 삶을 살면서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정(淨), 부정(不淨)의 기준에 따라 차별했던 쿰란 공동체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마이어(J.P Meier)는 요르단 강에서 목욕재계하며 살았던 바누스(Vanus)를 상기시키면서 요한과 바누스, 쿰란 공동체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고 하더라도 이 공동체의 종말론적 사상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만큼은 굳이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③ 예언자로서의 요한 :

요한이 활동한 요르단 강은 구약에서 구원을 상징하는 장소이다. 여호수아가 요르단 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간 곳이기도 하고, 엘리야와 엘리사가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곳은 또한 심판의 상징으로,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을 받은 장소이기도 하다.

한편 요한 복음서에 의하면(3.22) 요한은 물이 많은 ‘애논’에서 세례를 주었다 한다. 이곳은 사마리아 지방에 속했는데 요한의 활동 범위가 요르단 강을 끼고 상당히 넓게 전개됐었음을 보여 준다. 어쩌면 그도 제한된 범위 내에서 순회 세례자였다고 볼 수 있다.  요한이 설교한 광야는 전통적으로 이스라엘과 하느님이 만나는, 특히 이사야서 40장 3절에 의거하여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자리이다. 사실 쿰란 공동체도 이 성경 구절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삶의 자리로 광야를 선택하였다.  



  요한의 옷은 낙타 털옷으로 엘리야의 의복을 연상시키지만, 베두인의 사막용 복장도 낙타 털옷이었다. 요한은 빵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았고 들꿀과 메뚜기를 먹었다. 이것은 가난한 자의 음식일 뿐 나지르인의 관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야훼께 봉헌된 사람인 나지르인은 술을 금하였으나, 이는 일시적인 서약에 의한 것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요한은 지속적으로 이를 실천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나지르인은 빵과 고기를 금하지 않았다. 한편 요한은 사막에서 성장 과정을 겪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난 뒤 금욕적인 삶을 살아간 것으로 미루어 그가 독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독신은 쿰란 사람들의 제의적 독신과는 달리 예언자적 독신의 형태였다. 탈무드에 의하면, 모세는 하느님께 소명을 받은 이후 아내와의 동거를 중지하기로 자유롭게 선택하였다고 한다. 하느님께 단 한 번 짧게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일시적으로 여인을 멀리하는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 하고, 하느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사람은 항상 정결하게 몸을 지켜야 한다.



④ 죽음 :

요세푸스에 의하면 요한은 베레아의 마캐루스 성채에 압송되어 처형되지만, 마르코 복음에서 요한은 갈릴래아의 연회장에서 헤로디아의 계략으로 참수된다. 그러나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에서 헤로데 대왕의 손녀인 헤로디아가 헤로데라고 불리는 안티파스의 이복형제와 결혼하여 그 사이에서 딸 살로메를 낳았고, 바로 그 살로메가 필립이라는 안티파스의 또 다른 이복형제와 결혼하였다고 한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근거하여 마르코의 내용을 수정한다 하더라도 요한이 안티파스에게 위협적인 인물로 간주되어 처형된 점에서는 서로 일치한다.



   요한의 생애를 요약하여 말하면, 그는 사제 가문에서 태어나서 티베리오 치세 15년 그러니까 서기 28년경부터 팔레스티나를 무대로 세례 활동을 하다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한 30년 4월 7일보다 훨씬 전에 정치적인 이유로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해 성채에서 처형되었다.



2. 요한의 세례

  요한의 세례, 정확히 말하면 침례는 1세기 유대교 안에서 성행했던 침례 운동의 맥락 안에 위치한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첫째, 당대의 일일 세례자들은 명백히 스스로 물에 잠기는 침수자들이었다. 그러나 요한은 그 별명이 시사하듯 자신의 인격적인 권위에 근거하여 세례를 베푸는 세례자였고, 에세네파의 빈번한 목욕재계나 일일 침수자들의 행위와 달리 그의 세례는 유일회적인 것이었다.



  둘째, 요한의 세례는 회개를 통하여 하느님의 용서를 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으러 와서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였다고 한다. 그것을 대속죄일에 행하는 죄의 공개적인 고백과 유사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요한의 경우 고백이 개별적이라는 것이다. 요한은 유대교가 일 년에 한번 속죄의 날, 대사제에게 부여한 사죄의 선포권을 수시로 행사함으로써 성전 체제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비춰졌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유대교의 근본을 건드리는 문제였다.



  셋째,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을 쇄신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기에게 다가오는 이는 차별 없이 죄인과 창녀를 포함하여 모두 받아들이고 세례를 베풀었다. 이것은 바로 바리사이파의 배타적인 집단 행위와 대조된다. 이런 점에서 페로의 말은 참으로 적절하다고 하겠다. “유대인의 세정례가 사람들을 분리시키는 기능을 수행하였다면 요한의 세례는 그들을 일치시키는 기능을 발휘하였다.”



요한이 베풀었던 세례 행위는 모든 이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종교적 재생 운동이라고 불릴 정도로 모든 이에게 개방되어 있었고, 민중환경권에서 베풀어졌고, 종말론적 심판이 목적에 다가왔다고 선포하고 마음의 회개와 죄의 사함을 위해서 흐르는 물에 몸을 담그는 의식에 참여해야 한다는 그런 운동이었다.



그러나 요한 복음서에서는 이 운동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내용으로서 종말론적인 복음 선포에 대해서 즉 세례자 요한이 종말론적인 복음 선포를 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오직 세례자 요한은 선구자로서 어린양에게 행한 요한의 증언만을 요한 복음서에서 전해주고 있을 뿐이다. 이제 성령의 선물로 시작된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서 요한의 세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세례로 대체된다.



3. 가르침

  요한은 1세기 유대교의 다양한 예언자 운동 중에서 소위 신탁 예언자로 활동하였다. 요한의 메시지는 마르코 복음과 예수님 어록(Q)에 요약되어 있는데, 이를 비교하면 예수님 어록의 내용이 더 본래적으로 보인다. 예수님 어록에 의하면, 요한은 두 개의 세례를 말했다. 하나는 곳간에 모아들일 밀을 위해 준비된 성령에 의한 세례요, 또 하나는 불에 태워 없앨 껍질을 위한 불의 세례이다. 이 두 가지 긴장은 정통실천을 강조하는 예언자 전통에 정확히 어우러진다. 요한의 세례가 하는 일은 미래의 종말론적인 심판의 세례를 준비시키는 것이다. 요한의 세례는 어떤 성사적 안전 주의의 보호막이 아니다. 과거의 죄를 용서해 주되 이제부터 회개한 결과로 만들어 가야 할 좋은 열매는 각자가 맺어야 할 결실이다. 그러므로 언젠가 닥쳐 올 심판의 날을 각자는 자신의 열매를 가지고 준비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루카의 고유 자료에 나타나는 요한의 윤리적 권고의 말씀은, 그가 회개의 표지와 사회적 실천을 연결시키는 예언자 전통에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는 나눔으로 사회 정의를 실천하고, 세리와 직업 군인 등을 받다 들여 그들 역시 직업윤리에 충실할 것을 당부한다.



요한은 하느님 진노의 시간이 임박했다고 하여 사회적 삶으로부터 도피를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정의와 자비의 실천을 강조했다. 요한의 윤리적 가르침에 대한 루카의 고유 자료가 나름대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면, 요한은 분명 세례와 종말론적인 심판 사이의 시간적 간격을 사회적 실천의 기회요 장으로 본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요한의 근본 취지는 세례의 성사적 안정성을 고취시키는 데 있지 않고, 구체적인 회개와 그 실천을 앙양시키는 데 있다고 하겠다. 



4. 세례자 요한과 엘리야

엘리야 예언자는 죽지 않고 산 채로 불 수레를 타고 승천했습니다(2열왕2,11). 그는 하느님이 세상을 심판하기 직전에 다시 와서 이스라엘 백성을 화해시키고 열두 부족을 재건할 것입니다(말라3,1.23;집회48,9-10). 엘리야는 종말 심판자이신 하느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메시아가 오시는 것을 준비하기 위해 먼저 엘리야가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바로 엘리야인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요한을 통해 육체적으로 나타났다거나 세례자가 엘리야의 화신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요한은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 온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엘리야요?”라고 물었을 때, 그들이 생각하는 엘리야가 아니기에 “아니오”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요한을 엘리야로 보지도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었기에 세례자 요한의 일을 바라보지 못했고, 믿음이 없었기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귀가 있는 사람은 새겨들으시오.”



5. 요한과 예수님

  예수님께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세례를 받아들임으로써 그의 종말론적인 메시지도 받아들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적어도 한때 요한의 제자요 또는 후계자로 사람들에게 보여 졌을 것이다. 그러면 문제는 “예수님 역시 요한의 세례를 베풀었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한은 예수님께서 베푸실 불과 성령의 세례를 예고하였고, 예수님께서도 세례성사를 제정하시며 제자들에게 성령의 세례를 베풀라고 사명을 부여하셨다.

요한은 메시아의 사자로서 엘리야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를 수 있도록 했으며(요한 1,35), 믿지 않는 제자들을 위해 감옥에 갇혔을 때는 예수님께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기까지 하였다. 가서 보고 믿으라는 것이었다.

요한은 무엇보다 예언자를 능가하는 인물이다.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들 중에 어느 누구도 요한보다 더 크지 않다”고 선언하심으로써 요한을 칭찬하셨다. 그러나 요한이 선포한 하느님 나라는 미래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것은 예수님을 통해 시작된 현재의 하느님 나라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요한보다 더 크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6. 요한과 초대교회

  요한이 여인의 몸에서 난 이들 중에 가장 위대하였다면, 그를 예수님과의 적절한 거리에서 평가하는 일이 초대 교회로서도 그만큼 어려웠을 것이다.

마르코 복음은 요한을 예수님의 선구자로 소개하고 그가 감옥에 갇힌 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복음 선포를 시작하셨다고 보도함으로써, 요한의 시대가 종결되고 메시아의 시대가 열렸음을 강조한다.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의 세례를 의로움의 완성 과정으로 해석하고, 요한을 메시아의 도래를 준비하는 예언자 엘리야로 묘사한다. 그리고 요한이 설교한 미래의 성령 세례는 예수님의 승천 때,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말씀에서 구체화된다.

요한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자 그분은 커져야 하고 자신은 작아져야 한다고 증언하였다. 그리고 요한은 표징을 행한 바가 없어 예수님과 결정적으로 차별화된다. 마르코 복음 6장 14절을 포함하여 복음서와 요세푸스가 요한의 기적 수행능력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요한복음 10장 41절1)은 역사적인 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2세기 초까지 요한을 메시아로 생각하는 제자들이 있었지만, 그는 결국 예수님의 선구자로 그리스도교 안에서 그 고유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이 글은 카테고리: 대림(말씀과놀이), 말씀과 놀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세례자 요한! 그는 누구인가? – 엘리야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세례자 요한! 그는 누구인가?

    1. 생애

    예언자, 구세주가 오실 것을 선포한 인물, 성인,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였으며 회개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세례를 주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라고 부른다. 탄생 대축일은 6월 24일이며, 수난 기념일은 8월 29일이다.


    ① 역사적 언급과 평가

    요세푸스는 세례자 요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일부 유대인들에게 헤로데의 군대를 멸망시킨 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여겨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례자라고 불리는 요한에게 헤로데가 한 일을 복수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정당하게 그를 책벌하셨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헤로데는 요한이 선한 사람이었고, 유대인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서 그들이 덕을 함양하고 상대방에 대한 정의와 하느님께 대한 신심을 기르도록 하였을 뿐인데도 그를 죽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어떤 죄를 용서받기보다는 차라리 몸의 정화를 얻고자 하고 이리하여 그들의 영혼이 정의로 이미 깨끗하여졌다고 간주된다면 하느님께서(자신이 집전하는) 세례를 받아 주시리라는 것이 요한의 생각이었다. (소위 평범한) 유대인들이 요한 주위에 모였을 때 그들은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 흥분이 절정에 달했으므로 헤로데는 군중들을 설득하는 요한의 놀라운 능력이 모종의 폭동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하기 시작하였다. 군중들은 요한이 권고하는 것은 무엇이나 할 것같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헤로데는 요한이 폭동에 불을 붙이기 전에 먼저 공격하여 그를 제거하려고 작정하였다. 헤로데는 이렇게 하는 것이 상황이 악화되어 위기에 빠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헤로데의 음모로 인해 요한은 앞서 언급한 마캐루스 성체로 사술에 묶여 압송되었다. 거기서 그는 처형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헤로데 군대가 패배한 것은 하느님께서 그를 벌하시고 요한의 원수를 갚아 주시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상과 같은 요세푸스의 진술은 복음서가 전하는 종말론적인 예언자로서의 요한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오직 자신의 권위에 근거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유일회적인 세례를 베풀었기에 별칭으로 세례자라고 불렸다는 점, 그는 많은 군중들을 매혹시켰고 이를 두려워한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해 처형되었다는 점은 서로 일치한다. 아울러 일부 유대인들은 헤로데가 서기 36년 나바테아 왕국의 아레타스 4세에 의해 군사적으로 패한 사실을 요한의 부당한 죽음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으로 해석하였을 만큼 요한의 죽음 후에도 그를 흠모하는 군중들이 있었음에도 신약성서와 일치한다. 또한, 요한을 메시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요한복음서와 사도행전은 요한의 제자들과의 경쟁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요한은 살아 있을 때나 죽은 후에도 복음사가들이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그를 적절히 해석하는 대 늘 어려움을 겪을 만큼 독자적인 인물로 남아 있었다.


    ②<예언자적 삶> 성장 배경 :

    루카 복음서 1장은 요한이 즈카르야라는 사제의 외아들로 태어난 이야기를 전해 준다.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면, 요한이 사제직의 계승을 거부하고 광야로 나가 성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사죄를 목표로 세례를 베풀었다는 것은 분명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요한의 성장 과정을 언급하는 루카 복음 1장 80절은 요한과 쿰란 공동체와의 관련성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에세네파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입양하여 에세네의 관습에 따라 교육을 시켰던 것처럼, 어린 요한은 쿰란 공동체에서 종교적 훈련을 받고, 유대의 광야에서 독자적인 예언자요 금욕주의자로 처신하게 되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요한은 세상을 기피하고 광야에서 탈속의 삶을 살면서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정(淨), 부정(不淨)의 기준에 따라 차별했던 쿰란 공동체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마이어(J.P Meier)는 요르단 강에서 목욕재계하며 살았던 바누스(Vanus)를 상기시키면서 요한과 바누스, 쿰란 공동체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고 하더라도 이 공동체의 종말론적 사상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만큼은 굳이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③ 예언자로서의 요한 :

    요한이 활동한 요르단 강은 구약에서 구원을 상징하는 장소이다. 여호수아가 요르단 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간 곳이기도 하고, 엘리야와 엘리사가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곳은 또한 심판의 상징으로,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을 받은 장소이기도 하다.

    한편 요한 복음서에 의하면(3.22) 요한은 물이 많은 ‘애논’에서 세례를 주었다 한다. 이곳은 사마리아 지방에 속했는데 요한의 활동 범위가 요르단 강을 끼고 상당히 넓게 전개됐었음을 보여 준다. 어쩌면 그도 제한된 범위 내에서 순회 세례자였다고 볼 수 있다.  요한이 설교한 광야는 전통적으로 이스라엘과 하느님이 만나는, 특히 이사야서 40장 3절에 의거하여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자리이다. 사실 쿰란 공동체도 이 성경 구절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삶의 자리로 광야를 선택하였다.  


      요한의 옷은 낙타 털옷으로 엘리야의 의복을 연상시키지만, 베두인의 사막용 복장도 낙타 털옷이었다. 요한은 빵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았고 들꿀과 메뚜기를 먹었다. 이것은 가난한 자의 음식일 뿐 나지르인의 관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야훼께 봉헌된 사람인 나지르인은 술을 금하였으나, 이는 일시적인 서약에 의한 것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요한은 지속적으로 이를 실천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나지르인은 빵과 고기를 금하지 않았다. 한편 요한은 사막에서 성장 과정을 겪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난 뒤 금욕적인 삶을 살아간 것으로 미루어 그가 독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독신은 쿰란 사람들의 제의적 독신과는 달리 예언자적 독신의 형태였다. 탈무드에 의하면, 모세는 하느님께 소명을 받은 이후 아내와의 동거를 중지하기로 자유롭게 선택하였다고 한다. 하느님께 단 한 번 짧게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일시적으로 여인을 멀리하는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 하고, 하느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사람은 항상 정결하게 몸을 지켜야 한다.


    ④ 죽음 :

    요세푸스에 의하면 요한은 베레아의 마캐루스 성채에 압송되어 처형되지만, 마르코 복음에서 요한은 갈릴래아의 연회장에서 헤로디아의 계략으로 참수된다. 그러나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에서 헤로데 대왕의 손녀인 헤로디아가 헤로데라고 불리는 안티파스의 이복형제와 결혼하여 그 사이에서 딸 살로메를 낳았고, 바로 그 살로메가 필립이라는 안티파스의 또 다른 이복형제와 결혼하였다고 한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근거하여 마르코의 내용을 수정한다 하더라도 요한이 안티파스에게 위협적인 인물로 간주되어 처형된 점에서는 서로 일치한다.


       요한의 생애를 요약하여 말하면, 그는 사제 가문에서 태어나서 티베리오 치세 15년 그러니까 서기 28년경부터 팔레스티나를 무대로 세례 활동을 하다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한 30년 4월 7일보다 훨씬 전에 정치적인 이유로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해 성채에서 처형되었다.


    2. 요한의 세례

      요한의 세례, 정확히 말하면 침례는 1세기 유대교 안에서 성행했던 침례 운동의 맥락 안에 위치한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첫째, 당대의 일일 세례자들은 명백히 스스로 물에 잠기는 침수자들이었다. 그러나 요한은 그 별명이 시사하듯 자신의 인격적인 권위에 근거하여 세례를 베푸는 세례자였고, 에세네파의 빈번한 목욕재계나 일일 침수자들의 행위와 달리 그의 세례는 유일회적인 것이었다.


      둘째, 요한의 세례는 회개를 통하여 하느님의 용서를 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으러 와서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였다고 한다. 그것을 대속죄일에 행하는 죄의 공개적인 고백과 유사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요한의 경우 고백이 개별적이라는 것이다. 요한은 유대교가 일 년에 한번 속죄의 날, 대사제에게 부여한 사죄의 선포권을 수시로 행사함으로써 성전 체제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비춰졌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유대교의 근본을 건드리는 문제였다.


      셋째,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을 쇄신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기에게 다가오는 이는 차별 없이 죄인과 창녀를 포함하여 모두 받아들이고 세례를 베풀었다. 이것은 바로 바리사이파의 배타적인 집단 행위와 대조된다. 이런 점에서 페로의 말은 참으로 적절하다고 하겠다. “유대인의 세정례가 사람들을 분리시키는 기능을 수행하였다면 요한의 세례는 그들을 일치시키는 기능을 발휘하였다.”


    요한이 베풀었던 세례 행위는 모든 이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종교적 재생 운동이라고 불릴 정도로 모든 이에게 개방되어 있었고, 민중환경권에서 베풀어졌고, 종말론적 심판이 목적에 다가왔다고 선포하고 마음의 회개와 죄의 사함을 위해서 흐르는 물에 몸을 담그는 의식에 참여해야 한다는 그런 운동이었다.


    그러나 요한 복음서에서는 이 운동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내용으로서 종말론적인 복음 선포에 대해서 즉 세례자 요한이 종말론적인 복음 선포를 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오직 세례자 요한은 선구자로서 어린양에게 행한 요한의 증언만을 요한 복음서에서 전해주고 있을 뿐이다. 이제 성령의 선물로 시작된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서 요한의 세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세례로 대체된다.


    3. 가르침

      요한은 1세기 유대교의 다양한 예언자 운동 중에서 소위 신탁 예언자로 활동하였다. 요한의 메시지는 마르코 복음과 예수님 어록(Q)에 요약되어 있는데, 이를 비교하면 예수님 어록의 내용이 더 본래적으로 보인다. 예수님 어록에 의하면, 요한은 두 개의 세례를 말했다. 하나는 곳간에 모아들일 밀을 위해 준비된 성령에 의한 세례요, 또 하나는 불에 태워 없앨 껍질을 위한 불의 세례이다. 이 두 가지 긴장은 정통실천을 강조하는 예언자 전통에 정확히 어우러진다. 요한의 세례가 하는 일은 미래의 종말론적인 심판의 세례를 준비시키는 것이다. 요한의 세례는 어떤 성사적 안전 주의의 보호막이 아니다. 과거의 죄를 용서해 주되 이제부터 회개한 결과로 만들어 가야 할 좋은 열매는 각자가 맺어야 할 결실이다. 그러므로 언젠가 닥쳐 올 심판의 날을 각자는 자신의 열매를 가지고 준비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루카의 고유 자료에 나타나는 요한의 윤리적 권고의 말씀은, 그가 회개의 표지와 사회적 실천을 연결시키는 예언자 전통에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는 나눔으로 사회 정의를 실천하고, 세리와 직업 군인 등을 받다 들여 그들 역시 직업윤리에 충실할 것을 당부한다.


    요한은 하느님 진노의 시간이 임박했다고 하여 사회적 삶으로부터 도피를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정의와 자비의 실천을 강조했다. 요한의 윤리적 가르침에 대한 루카의 고유 자료가 나름대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면, 요한은 분명 세례와 종말론적인 심판 사이의 시간적 간격을 사회적 실천의 기회요 장으로 본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요한의 근본 취지는 세례의 성사적 안정성을 고취시키는 데 있지 않고, 구체적인 회개와 그 실천을 앙양시키는 데 있다고 하겠다. 


    4. 세례자 요한과 엘리야

    엘리야 예언자는 죽지 않고 산 채로 불 수레를 타고 승천했습니다(2열왕2,11). 그는 하느님이 세상을 심판하기 직전에 다시 와서 이스라엘 백성을 화해시키고 열두 부족을 재건할 것입니다(말라3,1.23;집회48,9-10). 엘리야는 종말 심판자이신 하느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메시아가 오시는 것을 준비하기 위해 먼저 엘리야가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바로 엘리야인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요한을 통해 육체적으로 나타났다거나 세례자가 엘리야의 화신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요한은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 온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엘리야요?”라고 물었을 때, 그들이 생각하는 엘리야가 아니기에 “아니오”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요한을 엘리야로 보지도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었기에 세례자 요한의 일을 바라보지 못했고, 믿음이 없었기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귀가 있는 사람은 새겨들으시오.”


    5. 요한과 예수님

      예수님께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세례를 받아들임으로써 그의 종말론적인 메시지도 받아들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적어도 한때 요한의 제자요 또는 후계자로 사람들에게 보여 졌을 것이다. 그러면 문제는 “예수님 역시 요한의 세례를 베풀었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한은 예수님께서 베푸실 불과 성령의 세례를 예고하였고, 예수님께서도 세례성사를 제정하시며 제자들에게 성령의 세례를 베풀라고 사명을 부여하셨다.

    요한은 메시아의 사자로서 엘리야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를 수 있도록 했으며(요한 1,35), 믿지 않는 제자들을 위해 감옥에 갇혔을 때는 예수님께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기까지 하였다. 가서 보고 믿으라는 것이었다.

    요한은 무엇보다 예언자를 능가하는 인물이다.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들 중에 어느 누구도 요한보다 더 크지 않다”고 선언하심으로써 요한을 칭찬하셨다. 그러나 요한이 선포한 하느님 나라는 미래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것은 예수님을 통해 시작된 현재의 하느님 나라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요한보다 더 크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6. 요한과 초대교회

      요한이 여인의 몸에서 난 이들 중에 가장 위대하였다면, 그를 예수님과의 적절한 거리에서 평가하는 일이 초대 교회로서도 그만큼 어려웠을 것이다.

    마르코 복음은 요한을 예수님의 선구자로 소개하고 그가 감옥에 갇힌 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복음 선포를 시작하셨다고 보도함으로써, 요한의 시대가 종결되고 메시아의 시대가 열렸음을 강조한다.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의 세례를 의로움의 완성 과정으로 해석하고, 요한을 메시아의 도래를 준비하는 예언자 엘리야로 묘사한다. 그리고 요한이 설교한 미래의 성령 세례는 예수님의 승천 때,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말씀에서 구체화된다.

    요한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자 그분은 커져야 하고 자신은 작아져야 한다고 증언하였다. 그리고 요한은 표징을 행한 바가 없어 예수님과 결정적으로 차별화된다. 마르코 복음 6장 14절을 포함하여 복음서와 요세푸스가 요한의 기적 수행능력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요한복음 10장 41절1)은 역사적인 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2세기 초까지 요한을 메시아로 생각하는 제자들이 있었지만, 그는 결국 예수님의 선구자로 그리스도교 안에서 그 고유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