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 가족의 아픔을 어떻게 위로해 줄 수 있을까요?

그와 그 가족의 아픔을 어떻게 위로해 줄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해 주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로받아야 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자살을 살인에 버금가는 대죄(大罪)로 규정하고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자살은 자기 생명을 보존하고 영속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적 경향에 상반되는 것으로, 살아 계신 하느님의 사랑에 어긋나는 것”(2283)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자살은 십계명 중 살인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3)는 다섯째 계명을 어기는 행위입니다.

 

자살을 범죄로 선언한 것은 칼케돈 공의회(451)에서 입니다. 하지만 당시 자살에 대해 형벌적인 규제를 가하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553)에서 자살자에 대해서는 장례미사도 봉헌하지 못하도록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사회 들어 자살은 정신질환 또는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교회도 자살자에 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중한 정신 장애나, 시련, 고통 또는 고문으로 겪는 불안이나 심한 두려움은 자살자의 책임을 경감시킬 수 있다”(2282)고 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영원한 구원에 대해 절망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자기 생명을 끊어 버린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2283)고 했습니다.

 

1983년 개정, 반포된 새 교회법(1184)에서도 자살자의 장례미사를 거절하도록 한 원칙이 중지되고, 공개적 추문(醜聞) 연유가 분명한 죄인들에게만 장례식을 금지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자살자에 대해서도 장례미사를 봉헌하고 유족들을 위로해 줍니다. 왜냐하면 자살자들의 대부분이 정신적 문제, 우울증 등 문제로 목숨을 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을 만큼 절박한 상황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은 큰 병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권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며, 모든 권리의 기본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하느님만이 생명에 대한 지배권을 갖기 때문에 타인의 생명은 물론 자신의 생명에 대한 침해행위도 하느님의 주권에 대한 침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자살은 하느님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하느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가 자기 생명을 그렇게 끊고 싶겠습니까? 견딜 수 없으니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자살한 사람을 그렇게 냉정하게 대하지 않고,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며, 그 가족들을 위로해 주고, 끊임없이 그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죄는 죄입니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결과는 남아있는 가족들에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기에 위로에 위로를 담아서 위로해 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귀한 자녀가 그렇게 고통을 격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신부님이 계셨습니다. 그 신부님은 당뇨가 심하셨는데 발가락을 자르게 되고, 또 발목을 잘라야 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불면증으로 시달렸고, 죽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습니다. 인슐린 펌프의 버튼을 한 번 더 눌러서 잠자면서 조용히 죽고 싶은 유혹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죄임을 알고 있기에 그 신부님은 고통을 이겨나가며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그 신부님은 늘 밤새 묵주기도를 하시며 새벽을 맞이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죽고 싶은 충동을 너무도 많이 느낀다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 더 많이 기도하고 있다네.”

 

누구나 한 번 쯤은, “아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하고 생각 해 봅니다. 그러나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울증이나 극심한 폭력, 고통이 밀려오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선택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는 생명의 관리자이지 주인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생명을 잘 관리해야 하고,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생명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것을 꼭 기억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싶을 때는 그 마음을 사랑하는 누군가와 충분히 이야기하면서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 한 발짝 더 나가서 그것을 이겨내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참 잘 했구나.”하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을 뒤돌아보면 내가 정말 그렇게 어려운 시간을 잘 이겨냈구나.”하는 뿌듯한 성취감도 있을 것입니다.

 

삶은 기쁨도 있지만 슬픔도 있고, 즐거움도 있지만 고통도 있습니다. 오늘의 나의 모습은 어제 내가 선택한 행위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오늘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내일의 모습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죽을 정도로 힘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살만하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나 혼자라고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렇게 생각할 때, 내가 옆에 있어 주면서 힘이 되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도 내 주변에는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힘을 내야 합니다. 우리는 힘을 내야 합니다. 세상은 정말 살만한 곳입니다. 하느님께서 얼마나 아름답게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지를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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