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신1949년 8월 5일, 논산에서
사랑하는 부모님, 형제 자매, 조카와 질녀, 삼촌과 고모들, 사촌들과 친구들에게.
세월은 참 빠릅니다. 바로 일년 전까지만 해도 함께 모여 살았던 우리 가족 모두가 지금은 다 사방에 흩어져 있군요! 하지만 언젠가 하느님께서는 그분이 원하시는 자리에, 우리를 다시 모아 놓으실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여름 휴가를 즐기고 계시겠지요. 그런데 이브는 대학 입시에 합격했나요? 마찬가지로 끌로드는? 또 끌로드는 건강을 회복했나요? 과 자네트가 집에 있나요? 여러분 모두 만족하신가요? 르네는 꿈꾸어 온 그 직장을 마침내 얻었는지요? 특히 어머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여러분들의 소식을 애가 타도록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곳으로 온 이후 여러분에게 5통의 편지를 보냈으면서도 아직까지 답장이라곤 하나도 받지 못했어요.
이미 알려 드린 바와 같이, 저는 논산 성당의 주임 신부가 되었습니다. 좁지만 아담한 성당이 있고 착실한 신자들이 있어서 마음이 편합니다. 날씨가 몹시 더워서, 미사 지낼 때에만 “수단”을 입고, 그 시간 이외에는 그것을 입지 못합니다. 그리고 방안에서는 맨발로 삽니다. 며칠 전에 종부성사를 주기 위해서 20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가야 했는데, 날씨가 너무도 더워서 몹시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와서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나니 다시 개운한 기분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햇볕에 아래 팔을 데었는데 다행히도 헬멧을 쓰고 갔었으므로 더위는 먹지 않았습니다.
성당을 맞은 편에 개신교 교회가 있어서 다소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 아픈 일이지만, 이것도 하나의 현실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 리세트는 기분이 나쁘다고 할 줄로 알지만 어떻게 합니까? 내양들을 혼란시키고 그들을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하는 나쁜 목자들을 대항하여 싸우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양심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중학교에 관한 문제는 아직도 나의 가장 큰 걱정거리인데다가 주교님은 이 일을 전혀 도와주실 수 없다고 하십니다. 15일 전에 학교를 수색하러 온 경찰은, 공산주의자들이라고 하면서 30명의 학생과 교사 한 명을 연행해 갔습니다. 신자 교사들이 있어야 할텐데, 아무도 없습니다. 10일 전에 입학 시험이 있었습니다. 100명만 합격시키게 되었는데, 400명의 수험생이 몰려 왔습니다. 300명이나 낙방시켜야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100명의 신입생을 뽑았지만 불행히도 그들이 들어갈 수 있는 교실은 아직도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이 달 중에 교실을 지어야 하고 교실을 지으려면 돈이 있어야 하지만 주교님은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하십니다. 학교는 이미 80만원의 부채를 지고 있는데다 교실 신축비는 150만원이나 들것입니다. 신입생 각자에게 3만원씩 내라고 했는데, 모두가 낸다면 3백만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마저 잘 걷히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고! 이 골치거리.
이번 주에 “꼴랭”, “쉬살레”. 그리고 “몰리마르”7)
세 분의 신부들이 차례로 예고없이 나를 방문하러 왔는데, 그분들을 대접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주한 프랑스 영사가 그의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찾아 왔습니다. 아들은 진짜 샤르트뢰스 술 한 병을 갖다 주었어요. 샤르트뢰스 술 생산지 근처에 있는 데레즈와 꼴레뜨조차도 아직 마셔 보지 못했을지 모르는 진짜 샤르트뢰스 술을 그것도 머나먼 한국에서 마시게 되는 행운을 내가 갖게 될 줄이야!
동료 신부들을 잘 대접하기 위해서, “항리 랑드리외” 네 가게에서 사 가지고 온 식후 주 원액의 작은 병들에다 한국의 소주와 물과 설탕을 뒤섞어서, 3병의 술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것을 맛본 모든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제거해 버리지 못한 소주의 뒷맛을 빼고는, 아주 맛이 좋다고들 합니다. “체리브랜디” 한 병, “뀌라사오” 한 병, 그리고 “꾸모스” 한 병을 만들어 놓았으니, 그것을 여러 해 동안 쓸 수 있을 겁니다. 빨간 식용 무, 가지, 양배추, 당근 등 봄에 씨뿌려 가꾼 채소들을 가두어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는 한국 배추와 무와 쌀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월동 준비로 지금 거두어들인 것들을 좀 저장해 두어야 하겠습니다.
일꾼 때문에 걱정이 생겼습니다. 그의 부인이 아기를 출산하는데 수술을 하여야 했으므로 수술비를 내가 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기가 세례를 받은 날에는 아기 아버지가 내 저녁식사를 준비하지 못할 만큼 술에 취하였습니다. 그 사람을 해고하고 싶지만 그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나에게 많은 돈을 빚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이는 다시는 못된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그것은 두고 보아야 알 일입니다.
한 달 있으면 2명의 새 동료 신부8)
가 한국으로 올 것이며, 자세히 모르지만, “리챠르” 신부도 같이 올 것 같습니다. 내 문제를 가지고 여러분을 자꾸 귀찮게만 해서 미안하지만, 주방 일에 직접 관여하고 요리책을 보면서 일꾼에게 요리 공부를 가르쳐야 할 형편이 되고 보니, 몇 가지의 주방 기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은 상자를 준비하시오, 마르세이유시, 노 거리 38번지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대표부를 통해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상자 안에는 이곳에서 구할 수 없는 “퓌레여과기”9)
한 개와, 고기를 잘게 써는 칼(이곳 고기는 얼마나 질긴지 잘게 썰어서 만두 속과 비슷하게 만들지 않으면 먹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한 개와 계란프라이를 만들기 위한 작은 알미늄 프라이팬 2개와 또 가능하면 닭 한 마리가 들어갈 만큼 큰 남비 한 개, 그리고 완두콩 씨앗, 아스파라거스 씨앗, 양 엉컹퀴 씨앗을 넣어 주셨으면 합니다.
한 달 전에 성가수녀회 수녀들에게 피정 지도를 하기 위해서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이 작은 수녀회는 연륜이나 지혜나 숫자 면으로 계속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있는 논산이 서울에서 기차로 6시간의 거리에 있기 때문에, 그 수녀회에서 손을 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하긴 노주교도 라리보주교도 저에게 때때로 그 수녀들을 찾아가 돌보아 달라고 요청하셨지만, 내 사정이 전과 같지 않습니다.
모두가 휴가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나는 매일 같이 모두를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열심히 사랑하시고, 맹리 묵주의 기도를 바치십시오. 2차대전 동안에 하느님이 여러분을 확실히 돌보아 주신 사실을 잊어 버리시면 안됩니다. 모두를 포옹합니다. 나에게 보내 주시는 편지 봉투에다 여기에 동봉한 주소표10)
를 붙여 주시기 바랍니다.
삐에르 쎙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