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신 1949년 9월 29일, 논산에서

 

제 3 신 1949년 9월 29일, 논산에서



 사랑하는 부모, 형제 자매들에게

 마침내 어머님으로부터 기뿐 소식을 받았습니다. 8월 23일자 항공으로 보내어진 편지는 9월 3일에 여기에 도착했으니 기록적인 속도로 온 것입니다. 때문에 최신 소식을 알게 되었어요. 한자로 씌여진 주소표 덕분으로 편지가 이렇게 빨리 올 수 있었으므로 앞으로도 그것을 계속 사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 곳 본당 주임 신부님이나 형제 자매로부터는 아무 소식도 받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완쾌하셨다는 소식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대단히 조심하셔야 할 것이며, 만일 의사가 좋겠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X-레이 치료를 다시 받으셔야 할 것입니다.

 내가 떠나기 전에 어머니의 병에 대해서 아무런 귀띔도 해 주지 않은 안느마리. 네가 참으로 원망스럽구나!

 모두가 휴가를 즐겼다는 기쁜 소식, 모든 가족들이 모였다는 소식. 수험생들이 모두 합격했다는 소식, 이 소식들은 나를 아주 기쁘게 했습니다. 합격자들에게 축하를 보냅니다. 의무를 다 하고 난 뒤에 가지게 되는 휴식과 기쁨은 더욱 감미로울 것입니다.

 “위아르”씨의 죽음은 정말 충격적입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그의 잘못도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불결했었지요. 또한 신앙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지요. 그것은 그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는 것처럼, 그 곳 사람들에게도 교리 시험을 치르게 했었더라면, 그 모든 이들이 그렇게 무식하지는 않았을텐데요. 누가 무어라 해도 무지와 열성은 상극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레이몽이 당한 사고는 어떤 것이었는지요? 좀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어요.

 여기서 나는 항상 싸우고 있습니다. 첫째로 본당에 있는 수녀들이 이곳에서 떠나겠다는 위협적인 말을 자꾸 하기에, 그들에게 맡길 두가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우선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관구장 수녀에게 간호사 수녀 한 분을 이 곳으로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여 승낙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파견된 수녀에게 10만원을 주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 작은 시약소를 시작하십시오. 말 그대로의 진짜 진료소를 세우자면, 적합한 집이 있어야 하고, 매월 꼬박꼬박 월급을 지급해야 하는 의사가 필요하고, 갖가지의 약품을 비치해야 하며 그리고 또한 비용을 부담하는 환자들이 이 진료소를 찾아 와야 합니다. 하지만 당장에는 집을 지어줄 수도 없고 의사에게 월급을 줄 형편도 못되니 데려 올 수 도 없지요. 그러니 이 10만원을 가지고 우선 약을 구입하시고 혼자의 힘으로 주변 사람들의 호감을 얻도록 하시며 환자들을 방문해 보십시오. 만약 이것이 잘 된다면 다음에 가서 집도 지어 보고 의사도 찾아봅시다.”

 그 수녀는 지난 9월 1일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단지 아직은 시작 단계이므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명의 환자를 방문하였고 1만 5천원어치의 약을 팔았습니다. 불행히도 그 수녀는 아직 단 한 명에게도 대세를 주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오로지 신자들만이 이 시약소를 찾아 왔지만 차차로 비신자들도 찾아오게 되고 나중에는 대세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 시약소를 도와주시려면 이런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구충제인 프랑스제 산또닌 가루약 한 병을 사 보내 주시면 됩니다. 이 곳에는 회충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만 약은 없어요. 이 약병에다 약의 용법을 쉽게 읽을 수 있게 똑똑히 써 주셔야 하겠습니다. 여기서 그런 구충약을 구입하자면 단 한 병에 10만원 이상 주어야 합니다. “항리 랑드리외” 씨를 통하면 그것을 구입하기 쉬울지도 모릅니다. 만약 “리샤르” 신부가 아직 떠나지 않았다면, 마르세이유의 노 거리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대표부로, 내게 보낼 것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부쳐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수녀들에게 맡기려고 하는 사업은 소규모의 교리 학교입니다. 예전에 이곳 수녀들은 200명의 어린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을 운영했었습니다. 그런데 전임 신부가 중학교를 하겠다고 그 유치원을 운영했었습니다. 그런데 전임 신부가 중학교를 하겠다고 그 유치원(국민학교)를 수용(收用)해 버렸기에, “실업자”가 된 수녀들이 철수하겠다는 위협적인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성당 옆에 너비가 5미터, 길이가 1,250미터 되는 2개의 교실이 있는 작은 학교를 짓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건축비가 너무 비싸서 우선 다만 너비 5미터, 길이 5미터의 교실 한 칸만 20만원을 들여 지었습니다. 돈이 생기면 그 나머지를 지을 작정입니다. 이제 학생들이 오기를 기다릴 따름입니다. 이 학교는 어디까지나 교리 문답을 가르치는 교리 학교이지만 교리 공부를 하자면 책을 볼 줄 알고 글을 쓸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수녀들은 교리를 가르치면서 읽고 쓰기를 동시에 가르칠 것입니다. 교회 구내에 고리 강의를 할 수 있는 건물이 허용되므로 국법을 어기는 일이 아닙니다.

 이 학교에는 두 부류의 학생이 다닐 것입니다. 그 하나는 1, 2년 후에 국민학교에 입학할 어린이들인데 국민학교에 입학할 때 이미 일고 쓰기를 아는 어린이로서 다른 학생들보다 학업이 처음부터 우수한 학생들이 될 것입니다. 그 둘째 부류는 너무 가난해서 앞으로 국민학교에 입학하지도 못할 학생들입니다. 이들은 결국 이 교리 학교 밖에 다니지 못할 터이지만, 그래도 여기서 가장 기본적인 것, 즉 읽기와 쓰기를 그리고 교리를 배울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500명의 학생이 다니는 중학교와 싸워야 합니다. 부족한 교실을 신축해야하며, 그 건축비로 100만원 이상 들 뿐 아니라, 게다가 청부업자가 계약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는데 부족한 교실 때문에 아주 곤란합니다. 업자가 며칠 안으로 교실 건축에 착수하리라고 아직 믿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오늘 시멘트로 콘크리트 기초를 해 놓기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점심 때가 되었는데도 그 업자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성당 구내에 드나드는 비신자 학생들을 처음으로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매주 7번의 교리 강의가 있지만 이 강의의 정식 명칭은 “도덕강의”입니다.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즐거운 일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이브나 짱삐에르처럼, 다소간 빈정거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말을 잘못 구사할 때에 그들은 곧잘 껄껄 웃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힘드는 강의이지만, 이럭저럭 끝까지 해내고야 맙니다. 지난 월요일날, 고향 성당 주임 신부님이 주신 그 좋은 제의를 입고 이 학생들 앞에서 미사를 지냈습니다. 그 날은 한국 순교자들의 축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얌전한 태도로 참석했을 뿐 아니라, 만족해 보이기도 하고 감격스러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할 수 있는 데까지 씨를 뿌리는데, 하느님은 그것을 잘 자라도록 돌봐 주시겠지요. 그 학생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그렇게 많은 영혼들, 그렇게 순수하면서 이해할 만한 나이의 영혼들 속에 씨를 뿌린다는 것은 참으로 흐믓한 일입니다.

 세 번째로는 신자들의 신심을 고취하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 신자들 중에 영성체를 하는 사람이나 고백성사를 받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당 아이들에게 정기적으로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하여 그들에게 교리를 주입하곤 합니다. 또한 미사 때에 신자들을 신심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참석을 할 뿐입니다. 연세가 많은 어떤 회장은 항상 똑같은 답답한 목소리고, 또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도 없는 목소리로, 항상 똑같은 기도문을 외울 뿐입니다. 그래서 고향 “헤댕”에서 사용하고 있는 “어린이 미사”라고 하는 그 작은 책자를 번역했고, 이번 월요일에는 그것을 인쇄소에 맡기려고 서울로 올라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청년 미사”라는 제목으로 된 책 50권을 살 생각입니다. 때때로라도 미사 때에 남녀 청년들로 하여금 계-응식으로 기도를 차례로 하도록 할 것입니다. 한 쪽에서 “나는 천주의 제대로 나아가리다.”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나의 즐거움이요 기쁨이신…” 하고 응하는 방법입니다.

 8일 전에 이곳에서 약 50키로 떨어진 곳에 계시는 “모리마르” 신부님을 찾아뵈었는데 매우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그 분 한테 “플랑”11)

을 만드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곳으로 가려면 아주 넓은, 쎄느 강 보다 적어도 2-3배 넓은 강을 건너가야 하는데, 며칠 전에 비가 왔기에 나룻배가 물이 흘러가는 대로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배를 타고 있는 동안 겁이 났었지요. 이 곳에서는 그 강을 “금강” 이라고 부릅니다. 기왕이면 집에서도 한국 지도를 가지고 계시니, 내가 살고 있는 논산을 찾아 보세요. 우선 이 나라의 가장 큰도시인 수도를, 서해안에서 그리 멀지 않고 한글로 “서울”이라고 써져 있는 도시를 찾아 보세요. 다음에서 그 곳에서부터 남족으로 내려 가는 철도선을 손가락으로 따라 내려 가 보시면, 어느 지점에서 이 철도선이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 데 이 지점에 있는 도시는 “대전”입니다. 그 곳에서부터 서남쪽으로 내려 가다가 멀지 않은 지점에 이르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도시가 나오는데 “논산”이라고 써져 있지요. 다음에 나오는 역이 “강경”인데 그곳에는 “갑”교구 출신의 “베르몽” 노인신부님이 계십니다. 논산에서부터 서북쪽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가면 강변에 “부여”라고 하는 도시가 나옵니다. 이 강을 건너서 조금만 다시 서남쪽으로 가보면 “구룡”이라고 써져 있는 곳이 나오는데, 이 곳에 “모리마르”신부님이 게십니다. 지도를 보시면서 이 여러 곳을 찾아보시고, 다시 힘들여 찾아보실 필요가 없도록, 그 여러 곳에 작은 딱지를 깨끗하게 붙여 보세요.

 두 번이나 데레즈에게 편지를 썼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온 어느 미국인 신부를 통해서 그가 보낸 편지 한 장을 받았지요. 그 편지에서 데레즈는 내가 아무런 소식도 주지 않았다고 불평을 하지만, 한 번은 주한 불란서 영사를 통해서, 한번은 어느 미국인 신부 편으로 편지를 보낸 일이 있습니다.

 르네와 뽈에 대해서 보다 더 자세한 소식을 받고 싶어요. 뽈의 주소를 모르고 있습니다. 르네는 여전히 르하브르에서 살고 있는지요? 공무원이 된 뽈은 마침내 아파트를 구했나요? 어머니에 의하면, 뽈의 아내가 아이를 가졌다는데, 장차 부모가 될 두 사람의 기쁨을 함께 하고 있으며 모든 일이 잘 되어 가도록 여기 먼 곳에서도 기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들의 결혼식 사진이 한 장도 없다니…. 그 조카들이 축하의 말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몰라, 쌩오메르로 곧 편지를 보낼 작정입니다. 리제트와 마리글레르가 항상 건강하고 용기를 잃지 않기 바라면서 그들은 위해서 항상 기도를 합니다.

 미쉘 삼촌, 고모님, 필립, 쟝, 그리고 할머니를 포함하여 여러분 모두에게 사랑을 보냅니다. 할머니는 어떠신지요? 여전하신가요? 그리고 친한 모든 사람들에게, 주인 신부님과 보좌 신부님 그리고 읍장님, 또한 죠셉, 포스뗑, 프랑소와, 마리아, 뽈레트, 레이몽, 그리고 이제는 노인이 되신 존경하옵는 “블롱”씨에게 안부를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몰리마르” 신부님을 만나면 함께 카드놀이를 한답니다.

삐에르 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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