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신 1950년 3월 28일, 논산에서

 

제 6 신 1950년 3월 28일, 논산에서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님의 죽음으로 받은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한 채, 어머니와 얼마간의 시간을 이렇게 보내려고 합니다. 요즈음에 어머니 생각이 얼마나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버님을 두 팔 안에 마지막으로 안고 계시는 장면을 머리 속에 그려보기도 하고, 정장을 하시고서 침대에 안치된 아버지의 시신 옆에 서 계시거나 데레즈에게나 나에게 보낼 편지를 쓰시기 위해서 그 옆에 앉아 계신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커텐 뒤에서 지켜보고 계시는 모습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이제 슬픔을 이겨내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작년에 걸리셨던 병으로 보아서, 만일 주의하시지 않으면 어머니에게도 우리들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원기를 회복하셔야 하며, 그렇기 위해서는 우선 기도하셔야 합니다. 나는 매일 같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위해서 드리는 미사를 드리기 위해서 신자들이 청해 온 모든 미사를 거절했습니다. 단 시일 내에 적어도 약 20여 대의 미사를 드리려 합니다. 지난 수요일 오전 8시에 이곳에서 아버지를 위한 창미사를 지냈는데, 이 미사에 많은 신자들이 참례하였고 “모리마르” 신부님도 오셨습니다. 서울 까르멜 수녀원에서도 기도를 해 주시기로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시기보다도, 아버지와 함께 보내신 유익하고 행복한 46년이라는 세월에 대해서 어지신 천주님께 감사를 드리셔야 합니다. 본당 주임 신부로서, 수백 가정들의 사정을 보아 왔는데, 우리 집안만큼 행복한 가족들이 많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토록 오랫동안 어머니를 사랑해 오셨고 바로 지금 어느 때보다도 어머니를 사랑해 주시는 좋으신 천주님께 대단히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리셔야 합니다. 평온한 마음을 되찾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항상 우리를 괴롭히려고 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우리들의 아버지시며 좋으신 아버지십니다. 하느님은 아버지의 행복을 위해서, 그리고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서 아버지를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우리 모두가 당신과 더욱 더 가까이 지내도록 하시기 위해서 아버지를 데려 가신 것입니다. 나는 날마다 어지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불평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물론 나도 눈물을 흘려요. 나도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육체를 가진 하나의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고 나아가서는 기쁨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구원을 확실히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슬픔과 어머니의 슬픔을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에 합쳐 봉헌합시다.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에 합쳐 봉헌합시다.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 덕분으로, 그리고 그분의 고난에 합쳐진 신자들의 고난과 노력 덕분으로 영혼들의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새는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가 고통을 맏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함께 있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나은 행복과 위안을 가졌었겠지만, 그분 때문에 우리가 서로 떨어져 있으니 말입니다.

 어머니의 편지를 받자마자, 데레즈에게 즉시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데레즈는 그의 수녀원장의 편지를 받고, 당장 나에게 편지를 보내 주어서, 결국 우리의 편지 2통은 서로 엇갈렸습니다. 데레즈는 나보다 먼저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알았습니다. 그의 편지는 3월 12일 자로 되어 있는데, 나는 3월 16일에야 그 소식을 알았거든요. 수녀원장이 데레즈의 편지에다 몇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우리 45명의 수녀들 각자는 당신의 사랑스럽고 귀여운 여동생을 형제다운 참된 애정으로 보살피고 있으며, 동생은 공동생활에서 요구되는 희생과 자신의 슬픔으로 우리들에게 아낌없는 보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지난 1월 26일자의 선편으로 보내신 편지를 어제 받았습니다. 그 편지에서 어머니께서는 아버님이 대상포진으로 앓고 계시며, 어머님은 파리로 가야 할 일도 있고 가톨릭 여성단체 연합회 관계일로 바쁘다는 이야기도 하셨고, 도 신문에서 오려 내신 기사 몇 장도 보내 주셨더군요. 이 소식들이 이젠 모두 시간이 지나버린 것이 되었지만 다 흥미 있게 읽었습니다. 지금은 조급한 마음으로 다른 소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집이나 아버지의 장례식에 관한 소식, 마들레느와 르네, 자끄, 즈느비에브, 안느마리, 아팠다는 리제트는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그리고 사랑하는 귀여운 마리글레르, 또한 뽈과 지네뜨에 관한 소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무도 빼놓지 않고 모두에게 편지를 써 보내고 싶은 마음이지만, 본당 일과 학교 일, 그리고 건축 공사 때문에 너무도 바빠서 시간이 없습니다. 어제 본당 입구에 철근 콘크리트 대문 공사를 시작하였고, 어린이들을 위한 교리 학교 확장 공사도 진행 중입니다. 이 두 가지 공사에 약 90만원이 들것입니다. 또 성당 지붕은 곧 페인트칠을 다시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함석으로 되어 있는 지붕이 녹슬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15만원이 들것입니다. 그런데다가 학교를 위해서 두 개의 교실을 신축해야 하는 데 건축비로는 6백만원 정도 예상됩니다. 이 모든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부활절을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원칙적으로 모든 신자들이 교리 찰고를 받고 고백성사를 받으러 오게 되어 있습니다. 거의 모두가 왔기에 매우 기쁩니다. 이 기회에 몇 가지의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 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할머니에게 우선 고백성사를 거절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아들과 며느리가 외교인인 채로 있고 11년 전에 그 할머니가 손자에게 유아영세를 시켰지만, 그 후로는 손자의 신앙 생활에 무관심하여서, 그 손자는 아직도 어떤 기도문도 알지 못하고 첫고백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할머니게 고백성사를 거절하면서 손자가 첫고백을 하게 될 때에 할머니에게도 성사를 주겠다고 약속했었지요. 결국 그 할머니는 오늘 아침에 교리를 가르쳐 달라면서 그 애를 수녀님들에게 부랴부랴 데려 왔습니다. 며칠 전에는 결혼을 앞두고 어떤 청년에게 세례를 주었는데, 그에게 네스토르라14)

는 세례명을 정해 주었습니다. 그는 3월 19일에 혼배를 했지요. 얼마 전에는 종부성사를 주기 전에 어떤 혼인 조당자의 조당을 풀어 주었는데, 그 사람은 78세의 나이에 정식 결혼을 한 것입니다.

 현재 이 지방에는 장티푸스라고 하는 전염병이 약간 퍼지고 있지만, 많이 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며칠 전에 프랑스에서 돌아오신 “불또” 신부님이 구급약을 가져 오셨으리라고 생각되지만, 이교구 저 끝 지역에 발령 받으신 그분으로부터 아직 어떤 소식도 받지못하였습니다. 시작한 시약소가 아주 잘 되어 가는 사업이라서 그것을 운영하는 수녀들은 이제 본격적이 진료소를 지어 달라고 벌써부터 졸라대기만 합니다. 그런데 현재는 돈이 없어서 불가능한 일입니다. 돈이 없을 뿐 아니라 빚투성이입니다. 이 시약소 덕분으로 몇몇 사람들에게 임종대세를 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경과는 아닐지라도 이것을 볼 때 이 사업에 투자한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교리 찰고 받을 때에는 아주 재미있고 우스운 이야기를 듣게 되는 대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며칠 전에 어린이들이 교리 시험을 보고 있을 때 “천주님은 몇 분이 계시냐?” 하고 질문하였더니 한 분 뿐이라고 대답하기에, 만일 두 분이 계시면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다시 물어 보았지요. 그랬더니 “그야 쌍둥이가 될거다.” 라고 어느 아이가 대답하더랍니다.

 이번 주에 미국에 있는 라라 자선사업 단체로부터 구호물자를 받았는데 그 가운데는 고의 7개가 든 대단히 커다란 뭉치와 좀 낡아 보이는 반 장화와 구두 8상자가 있었습니다. 구두는 여자용 구두가 많은데 이 가운데는 타조의 다리만큼 굽이 높은 데다 엄지 발가락이 튀어 나올 수 있도록 큰 구멍이 있는 구두까지 있었습니다. 진흙 투성이인 이 지역의 시골뜨기 부인들께 이 구두들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근래에 와서는 미사 집전이 아주 잘 이루어지고 있으며 참석하는 신자도 많습니다. 제가 한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판매하지 않고 성당에 항상 비치해 두는 책을 많이 구입했는데, 이 책에는 완전히 번역된 미사 통상문이 실려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그날의 입당송 본 기도, 독서, 복음 등을 혼자 따로 낭독하고 다른 기도문은 남자들끼리 또는 여자들 끼리 계-응 식으로 하거나 남녀 모두 함께 하거나 하여튼 일반 진자들이 높은 소리로 낭송하는 것입니다.

 주송자 한 분이 기도를 시작하면, 일반 신자들은 어린이들까지도 함께 기도합니다. 바꾸어서 말하면 신자들이 한국말로 미사의 기도들을 하는 동안, 나는 혼자 정식 라틴어로 미사를 집전하는 것입니다. 때에 따라서 내가 큰 소리로 “도미누스 보비스꿈” 이나 “키리에”나 “패롬니아 세꿀라 세꿀로름” 하면 모두가 역시 큰 소리로 이에 응답합니다. 이렇게 해서 모두가 최대한으로 집전자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이것이 좀 불편하지만, 나는 내 자신을 위한 사제가 아니며 나에게 맡겨진 신자들이 가능한 한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고 그 일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나의 임무라고 봅니다.

 부활 축일 때에 새로 영세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약 40명의 예비자는 있으나, 그들은 준비가 아직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그냥 세례를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성당 대지에 새로 개설된 도로 양쪽으로 200그루 의 작은 전나무를 심었는데 고향집의 잔디밭과 벤치 옆에 있는 전나무와 같은 것들입니다. 내일은 전나무를 좀더 심고 500여 그루의 탱자나무를 심으려 합니다. 탱자나무란 울타리로 쓰이는 나무인데 뾰쪽하고 손가락만큼 큰 가시들이 돋아 있는 나무입니다. 성당에는 담장이나 울타리가 둘러처져 있지 않아서, 아무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몇 년 후에 이 나무들이 잘 자라면 성당 주변이 참으로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러나 뽑아 버리고 부러뜨려 버리는 이곳 사람들의 그 나쁜 버릇 때문에, 그 좋은 때가 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서울의 성가소비녀회 수녀들이 우리 아버지를 위해서 미사도 지냈고 9일간 영성체도 하였습니다. 몇몇 동료 신부들에게 아버지를 위해서 미사를 지내 달라고 하면서 예물을 맡겼습니다. 이곳 미사예물은 2,000원인데 신자들과 학교가 30,000원을 갖다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께서 자주 편지를 쓰셔야 합니다. 자주 쓰시면 피곤해 지신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편지를 받지 못하게 되면 저는 너무도 괴롭습니다. 그래서 너무 자주 편지를 쓰실 필요가 없도록 다음과 같이 의견을 제안합니다. 데레즈와 나에게 각각 따로 편지를 쓰시면 우리가 그것을 교환하자는 것입니다. 테레즈의 원장 수녀님이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지요. 일본과 한국과의 우편물 왕래는 확실치는 않지만 그래도 비교적 잘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시면 누가 어머니처럼 나에게 편지를 해주시겠습니까? 어머니. 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하시고 지내시는지요? 저녁에 방에 혼자 올라가실 때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아버지는 어느 때보다도 지금 우리와 더 가까이 계십니다. 말가리다와 데레즈와 제가 집을 떠나 올 때 아버지는 매우 상심하셨던 것 같지만 그러나 모두가 함께 있을 때보다 아버지는 지금 더 행복을 누리고 계십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커다란 교훈입니다. 부전 자전이란 말같이 내 삶을 통하여 아버지를 본받으려합니다.

 사랑스러우시고 좋으신 어머니. 마음을 다해서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형제와 자매들에게 또 남녀 조카들에게 전해주십시오.

삐에르 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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