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신 1950년 4월 15일 논산에서
사랑하는 어머님께
부활 축제가 지나갔습니다. 부활 후 첫 주일이었던 어제는, 이 성당에서 새로 서품된 젊은 사제의 첫 미사 봉헌이 있었습니다. 전에 “공베르” 신부님이 신학교로 보내신 사람인데, 이 본당이 설립된 이래 첫 본당 출신의 사제입니다. 오늘부터 학교에서 도덕 강의를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겨우 숨돌릴 수 있는 시간이 생겼고 그래서 자연히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토요일이었던 그저께 어머니께서 4월 1일자로 보내 주신 편지를 받았습니다. 부활절을 맞이하여 받은 것이 아니라 “사백주일” 을 맞이해서 받은 편지입니다. “프꽁” 의사의 그 편지, 아버지께서 우리 각자가 읽기를 원하셨다는 그 편지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그 편지를 읽도록 하였습니다.
사랑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그분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3월 16일 이후로는 그분 생각이 기억 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위해서 이미 20여대의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다른 지향으로 청해지는 미사들을 다 거절해 왔기에, 본당 교우들과 공소 교우들이 아버지를 위해서 미사를 봉헌해 달라고 하면서 미사예물을 갖다주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를 위해서 더 많은 미사를 드리고 싶어도 곧 중지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것은 나도 살아야 하니까요. 매일 들어야 하는 나의 생활비가 다만 미사예물로 충당되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본국에 가 있는 동안에 아버지께서 고독하게 살아가시는 것을 보고 놀랐었습니다. 사무실에 혼자 계시고 정원에서도 혼자 작업하기를 좋아하셨지요. 아마도 귀가 어두워졌기 때문에 그러하셨겠지만 그것은 나를 아주 슬프게 했었습니다. 아버지의 모든 걱정거리를 풀어 드리고 정성을 다해서 아버지를 사랑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고 가끔 섭섭하게 해 드린 것입니다. 이 얼마나 후회스러운 일인지요? 아버지는 얼마나 어질고 얼마나 다정스러운 분이셨는지요! 말씀이 없으셨지만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우리들의 양육비와 교육비를 충당하시기 위해서 얼마나 애쓰셨는지! 아버지의 노고를 보상해 주실 것을 매일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이제 아버님은 당신의 부모를 다시 만나셨습니다. 또 10년이나 20년, 그리고 심지어 30년이란 세월도 별 것이 아니므로, 결국 곧 우리 모두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아버지는 행복감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강론 중에서 아버지께서는 일평생을 통해서 주일마다 영성체를 하셨다고 신자들에게 이야기하면서 이곳의 많은 신자들도 그처럼 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부활 축일을 맞이해서 새 영세자는 10명뿐이었습니다. 적은 숫자이지만 영세 예비자는 많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교리 지식이 부족한 그 예비자들에게 세례를 줄 수는 없습니다. 새 사제의 첫 미사가 있었던 어제, 청년들은 대문을 장식하였고 부인들은 제의를, 처녀들은 장백의를 새 사제에게 선물하였습니다. 그런데다가 새 사제의 집안이 매우 가난해서 부인들이 그 집에 가서 잔치 준비를 해 주었지요. 그 집에는 고향집의 큰 계단 밑에 있는 창고 크기 만한 방이 2개 있을 뿐입니다. 다섯이서 식사를 하고 나가면, 다른 사람들의 순서가 되는 것이었지요. 놀라지 마세요. 한국의 방들은 모두가 그렇게 좁고 천장이 매우 낮습니다. 그러므로 겨울에 난방하기가 쉽지요. 또 가구란 전혀 없어서 바닥에 그냥 앉아서 생활합니다. 이것은 조금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며칠 전에는 학교에 교실 두 개를 신축하기 위한 상당한 보조금을 주교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6월에 있을 개학 전에 공사를 해야 하거든요. 올해에는 신입생들이 6월에 입학하지만 내년에는 3월에 입학 할 것입니다. 이 편지와 때를 같이 해서 마침내 오랫동안 기다려 온 약품상자를 받았습니다. 고향 성당 주임 신부님과 “꼴레뜨” 씨에게도 몇 마디를 적어 보냅니다. 다음 주에 떠나시는 주교님 편에 몇 개의 작은 기념품을 보내 드립니다. 이것은 지난 번 성가회 수녀들에게 피정 지도를 했을 때 수녀들이 준 것인데,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메이스터” 청년에게나 “길보” 양에게 한 두가지를 주셔도 좋습니다. 집안 모든 식구들과 친척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지만 우표 갑이 너무 비싸서 이번에는 어머니께 좀 짧게 써 드리고 봉투 안에 다른 몇 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동봉할테니 어머니께서 그분들에게 전해 주시기 부탁합니다. 내일은 이 벽지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결혼식의 주례를 해야 하며, 모레는 장례식이 있습니다. 인생은 이런 것입니다.
당장은 생활 문제 때문에 걱정거리가 많습니다. 도둑이 많아서 경찰이 하듯이 순찰도 해야 하고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게 집단속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며칠 전 밤중에 학교 안으로 들어온 도둑은 창문 유리를 70개나 훔쳐 갔습니다. 돌아오는 월요일은 하루정도 일할거리가 있는 공소로 나갈 예정입니다.
마음이 몹시 아프실 어머님께 애정 담긴 키스를 보냅니다. 매일 매일 어머님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삐에르 쎙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