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신 1950년 6월 16일, 논산에서
사랑하는 어머님께 그리고 사랑하는 모두에게
어제 어머니께서 6월 5일자로 항공으로 보내신 편지를 받았습니다. 항공 우편은 참으로 빠르고 확실한 것입니다. 좀 비싼 항공 요금이 아깝긴 하지만, 도착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항공우편입니다. 저로서는 불행히도 이전에 비해서 좀 드물게 편지를 드릴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요새 항공요금이 전보다 5배로 올랐기 때문입니다. 전에 500원 하던 것이 현재는 1000원으로 올랐습니다. 주한 프랑스 공사는 하나의 제안을 해 주었는데, 그 내용은 우리선교사들의 우편물을 동경에 있는 주일 프랑스 대사관까지 외교행랑으로 보내어 거기서 다시 같은 방법으로 파리 외무부로 발송하면, 외무부에서 그것을 다시 파리 외방전교회 본부로 전달했다가, 외방전교회에서는 프랑스 우표를 붙여 수취인들에게 부치면 된다는 것인데 좀 복잡한 방법이라고 생각되지만, 차차로 보아가면서 결정하겠습니다. 어떻든 이 곳의 소식이 좀 뜸해져도 걱정하지 마시고 다만 “무소식은 희소식”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우편 요금이 대폭 인상된 반면에 우편 중량에 있어서도 그전의 5그람에서 이제는 20그람까지 가능하답니다. 그러므로 한 봉투 안에 여러 장의 편지를 넣어 보내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수신인들에게 전해 주시면 수취인들이 편지를 잘 받아 볼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나에게는 전과 같은 비용이 드는 것입니다. 일본행 항공 우편요금은 별 문제가 아니므로 걱정하지 마십시오. 합의가 되는 대로 오늘 어머니께서 저에게 보내 주신 편지를 데레즈에게 보내면서 거기에 저의 편지와 고향 성당 주임 신부님께서 아버지의 장례식 때 하신 강론도 동봉하고자 합니다. 그 곳 주임 신부님게서 그 때 하신 강론의 원고를 보내 주셨는데, 감사하는 뜻에서 그분께 보내 드리는 편지를 여기에 동봉하니,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며칠 후에 방학과 휴가가 시작 될 테니 모두가 집으로 돌아오겠지요. 나도 며칠 동안만이라도 모두와 함께 했으면 하지만, 이것은 꿈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과 기도를 통해서 만이라도 여러 분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곧 여러 가지의 시험이 있을 텐데, 그 결과를 속히 알려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졸업생들, 특히 변호사 자격을 가지게 될 사람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모두와 함께 있으며 아버지께서 하시던 상업을 계속 하기로 하신 결정에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마음대로 하도록 하셔야 합니다. 실은 어머니께서는 이제 그 일을 더 이상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십니다. 물론 집을 청소하고 유지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작년에 본국에 있을 때 집 손질이 문제된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가 되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틀림없이 무엇인가 결정을 속히 하셔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변화를 미룰수록 더욱더 변화를 두려워해서 고집스러운 수구 주의자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사랑스러운 어머니, 그 무수한 시련과 연로하심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서 그렇게도 용기 있으시고 그렇게도 강하게 살아 나가시는 것을 보면서 저는 자랑스러운 생각이 들고 행복과 위안을 느낍니다. 자! 어머니, 두려움 없이 살아 나가십시오. 그러면 어머니도 우리들에게 잊지 못할 모범이 되실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가치가 있는, 귀한 것입니다. 확신합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것을…
르네와 마리도 마침내 집을 얻었군요! 그들과 함께 나도 큰 기쁨을 느낍니다. 자녀들의 교육이나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서, 자기네들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자녀들이 모두 건강하게 자라고, 공부도 잘 하며, 또 성장해 감에 따라서 어른스런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리제뜨에게 축하를 보냅니다. 그녀는 참으로 여장부라고 생각합니다. 긴장을 풀 수 있는 멋진 방학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수고한 대가를 받는 것은 마땅하므로… 수요일마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 미사를 봉헌할 때 항상 안느마리와 리제뜨와 마리끌레르를 우선 생각합니다. 나는 그들의 장래에 대해서 걱정할 것 없다고 믿어요. 뽈이 지내뜨와 어린 삐에르 2세를 데리고 집으로 온다니, 이것은 어머니께서 어머니께 아주 큰 기쁨이 되고 일종의 피로 회복제가 되리라 믿어요. 고마운 사람들이어요. 쟈끄와 즈느비에브와 그들의 자녀들 모두다 간절히 오고 싶어 할 것이니 분명 꼭 올 것입니다. 그들에게 휴가가 없어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아무리 어려운 것이라 해도, 온갖 시험에 합격하는 그들의 자녀들을 볼 때, 그들은 대단한 만족감을 가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에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자녀들을 잘 길러 놓으면 언젠가는 그 자녀들 덕분으로 즐겁고 한가한 나날을 그들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떼레즈와 꼴레트는 결국 “레망” 호수 변으로 가게 되었다니 요즘의 처녀들은 예전의 처녀들보다 참으로 호강하네요! 마르그리뜨는 단 하루만이라도 집으로 올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지만, 그것은 쓸데없는 꿈에 불과하겠지요. 저는 이곳에서 마치 징역살이하는 사람처럼 계속해서 고된 일을 하면서도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달 전에 입학식이 있었습니다. 입학 시험 때 340명의 학생이 지원했는데, 그 중에서 100명만 합격했지요. 합격자 가운데 신자는 겨우 2명뿐입니다. 어제 신자 학생들에게 고백성사를 주었는데, 학생 전체 600명중에서 성사를 받으러 나온 학생은 27명에 불과했습니다. 교회가 운영하는 이 학교는 사실상 교회와 무관한 학교일 뿐입니다. 나는 돈을 대는 사람일뿐이고요. 돈을 내줄 때에만 교사들은 나에게 미소를 보내 주고 내주지 못할 때는 싫은 표정을 짓거나 사표를 내겠다면서 나를 위협하곤 합니다. 현재 학교를 위해서 2개의 교실을 신축 중인데, 부담해야 하는 신축비는 4백 50만원, 즉 약 2,000불입니다. 신입생 각자는 새 책, 교모, 단추값으로 그리고 등록금 등으로 33,000원을 내야 할 뿐 아니라, 건축비로 사용되는 4만원의 찬조금은 내게 되어 있습니다. 입학 시험에 낙방했으면서도 입학하려 하는 신입생들에게는 그 외에 10만원의 기증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교사들의 월급을 위해서는 재학생 각자가 매월 1,500원의 월사금을 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학교를 간신히 꾸려 나갈 뿐입니다. 그런데다가 신앙심이 없고 사명감이 결여된 교사들과 부족한 교실 때문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어서 제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신앙 강의마저 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3개원 전에 수학교사 한 사람이 나가 버렸는데, 그 동안에 후임자를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수학교사 자격을 가졌으면서도, 취업하지 못한 사람을 소개받을 수 있을까해서 교장은 문교부를 찾아갑니다. 학업에 대단히 주요한 과목이 되는 수학을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은 항의를 하곤 합니다. 이렇게 불리한 여건인데도, 왜 100명의 신입생을 받아들였느냐고 궁금해 하시겠지요. 그 이유는 이왕 설립된 학교를 폐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해마다 100명의 신입생을 받아 왔는데, 만일 이제부터 신입생을 못 받아들인다고 할 것 같으면 학교 전체가 체면을 잃게 될 것이요, 교장을 비롯하여 여러 선생들이 사직할 것인데 그 자리를 메워 줄 사람이 없거든요. 이 학교를 담당한 수사들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곳의 물가에 비추어 볼 때, 학생들이 내는 학비는 너무도 미미해서, 프랑스나 미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매월 내는 것은 쌀 한 말 값도 못됩니다. 쟈끄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녀들이 피복비와 식비를 누구나 부담하고 있으니까 이야기 할 것도 없지만, 이것을 제외하고서라도 쌩 베르땡 중학교에 재학 중인 그 자녀들의 학비로 각 사람당 매월 빵 4근(즉 2키로)의 값에 해당하는 교육비를 내야하는 것에 비한다면, 그것은 별 것이 아니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 학교에서 받는 학비는 그 정도 뿐이요. 다른 학교들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또 한가지의 어려움을 말하면, 쌀값이 여전히 상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쌀 한 말이 1,500원이었는데 지금은 2,500원입니다. 물가 상승에 따라서 선생들의 불평도 늘어나지요. 그들을 무마시키느라고 돈이 없는 저는 좀 어중간한 방법을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전학하려고 하는 학생도 있지만, 다른 학교에서 이 학교로 전학 오려고 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결국은 2학년이나 3학년이나 4학년에 전학하려는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권한과 전학하는 학생들로부터 기부금을 받는 권한을 각 선생님께 부여했습니다. 결국 선생마다 자신에게 가장 큰 기부금을 줄 만한 전학생을 찾아내느라고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요! 다썩어 버린 사람이라고 나를 비난하지는 마세요. 나도 잘 해 보려고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교구청에서는 이 학교를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 학교를 맹렬히 비난하고 이 학교 설립자를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들까지 있으니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나를 이 곳으로 파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교구청에서 발언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웃지마세요. 발언권을 왜 가지게 되었느냐 하면, 지난번 피정 끝에 교구 참사위원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주교님의 자문위원이 된 셈이지요. 이제 주교 총대리15)
가 그 커다란 손으로 탁자를 두드릴 때, 나도 똑 같이 하고 더 큰 소리를 질러서, 내 요구사항을 관철시킬 것입니다.
지난 5월 15일 프랑스로 떠나신 “라리보” 주교님과 노 주교님은 로마에 도착하셔서 교황님을 알현하셨고 발롸의 성녀 요안나의 시성식에 참석하셨습니다. “라리보” 주교님은 어머님께 작은 소포를 부치셨으리라고 믿어집니다. 그분이 타고 가신 비행기에는 짐이 30키로 밖에 허용되지 않아서 소포에 많은 것을 넣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가져가서 부쳐 드리겠다고 해주신 주교님은 그래도 대단히 고마우신 분이십니다.
“쁠롱” 씨는 지금도 건강하시겠지요. 이제 그분은 카드놀이를 어떻게 하는가요? 그의 자녀들과 손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 착하고 헌신적인 가정부 마리아는 어떻게 지내는지요? 모두에게 안부 전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어머니를 대단히 사랑하는 삐에르쎙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