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신 1950년 7월 31일, 논산에서

 

제 10 신 1950년 7월 31일, 논산에서









사랑하는 데레즈19)

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이 편지를 다음에 어머님께 보내도 좋으니, 마음대로 하여라. 논산 근처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때, 신부님 두분의 충고와 경찰의 명령에 따라서 피난길에 올랐다. 솔직히 말해서 빨갱이들이 저지르고 있는 만행에 관한 소문을 듣고는, 나도 철의장막 저 너머에 그대로 있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자유지대에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었다. 결국 나는 부산에 왔고 그것도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집에 32명의 외국인 신부들, 그중에는 2명의 미국인, 7명의 프랑스인, 그리고 21명의 아일랜드인 신부들이 모여 있고 본당에는 한국인 신부들이 모여 있다는 구나.

7월 14일 작은 가방 하나만을 가지고 자전거로 논산을 떠났다. 2명의 신학생과 함께 지독한 더위 속에서 거의 200키로의 거리를 질주했어. 그러다가는 자전거를 버렸고 자동차 편으로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은 미군들이 사용하는 항구여서 폭격을 당할 위험성이 분명하지만 지금까지 그러지 않은 것을 보면 주님의 보호를 받아온 것이 분명하다. 만일 극도로 위험스러워질 경우에는, 다른 신부들과 함께 일본까지 피난갈 수 있으리라고 본다. 오늘은 카나다 신부 3명과 미국 신부 2명과 메리놀회 소속 신부 14명20)

이 일본으로 떠난대.

우리는 메리놀회 수녀들이 운영하는 병원에 머무르고 있어. 땅바닥에서 잠을 자고 하루에 두 번식 식사를 한다. 그런데 아무런 책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무료하기 작이 없다. 그런데다가 반갑지 않은 소식들만 들려 오기 때문에 다소 우울한 마음뿐이다. 미군들은 후퇴만 하고 있고. 가족들이 헤어져 있고. 사람들은 돈도 먹을 것도 피할 곳도 없어서 모두가 끔찍스럽게 불쌍하기만 하다. 빨갱이들에 의해 점령된 지역에서 그들이 자행한 참혹한 일들과 만행에 대한 소문이 자자하지만, 실은 그것은 소문 일 뿐이지 목격자는 없다. 샬트르 성 바오로회 소속의 프랑스인 수녀 3명, 즉 아가다 수녀와 르네수녀와 또한 수녀21)

는 군인들로부터 철수 명령을 받고 대구를 떠나 그저께 여기 도착했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각자가 자기 임지로 돌아가, 거기서 힘것 일을 하고, 불쌍한 이들을 도와 주는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받아야 할 것이기 때문인지, 하여간 지금 우리는 하느님이 내리신 큰 벌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성당도, 신자들도, 책들도, 옷들도, 성작도, 결국 모든 것을 버린 나는 마음이 괴롭구나. 그러나 목숨을 살리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어. 논산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나에게도, 신자들에게도, 유리한 것이 못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강제 수용소로 끌려 가거나 죽음을 당할 수 밖에 없었을 텐데, 이래도 저래도 나는 신자들에게 무용지물이 될 뿐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물러섰다가 제 임지로 돌아 가는 것이 낫지. 적어도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말이다. 신자들과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해주렴. 정말 부탁이다.

“수단”을 입지 않은 나는, 마치 미군이 된 것처럼, 바지와 점퍼만 입고 돌아다니고 있단다. 네가 과연 이 편지를 받게 될지 모르겠어. 일본으로 떠나는 프란치스코회 소속 카나다 신부에게 이 편지를 맡긴다. 이 편지가 속히 너에게 전해졌으면 좋겠어. 답장이라고는 현재로 보아서 생각해 볼 수 없는 것 같지만, 그렇지만 부산으로 오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 그 편으로 편지를 보내 줄 수도 있을 것 같구나. 그러나 분실 위험성 때문에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삼가는 것이 좋겠지.

이곳 한국에서 시작된 미국과 소련, 즉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와의 공공연한 싸움은 어디까지 벌어질 것인지? 나는 그것을 전혀 알 수 없지만 그 싸움은 한국에서 완전히 끝나지 않을 것이란 게 확실하리라 본다. 다른 지역에서도 전투가 있을 것이다. 그 곳에서 한국으로 진출한 미군들이 부재한 틈을 타서, 바로 일본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어. 난 모르겠지만 확실한게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뜻은 이루어지고야 말 것이라는 것이다.

나를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그러나 이 무시무시한 시련이 어서 빨리 끝나도록 기도해 주기를 부탁한다.

진정한 사랑으로 포옹하면서

 삐에르 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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