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신 1950년 9월 18일, 논산에서
사랑하는 어머니와 사랑하는 여러분께
그저께 대전, 논산 등의 사진을 보겠다고 해서 공군부대에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와서 보니 놀랍게도 어머니께서 보내 주신 편지가 와 있어서, 항공우편이 잘 되는 것을 실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헤댕에서 9월 8일에 부쳐진 편지를 16일에 받다니…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 따름입니다. 그런데 이 편지를 통해서 어머님은 그 불쌍한 로베르의 사망을 알려주셨군요. 오늘 아침에 그이를 위해서 연미사를 지냈습니다.
이제 무더운 계절이 끝났고 선선해지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제게는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곳의 한창 여름에는 날씨가 하도 더워서 아주 가벼운 옷을 입어야 하는데, 현재에 그런 옷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옷을 입어 보았자 다가오는 추위를 이겨내지는 못하겠지요.
다행히도 요즘 좋은 소식이 많습니다. 유엔군이 제가 일년동안 보좌신부로 있었던 인천에 상륙했거든요. 인천은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유엔군들이 서울을 향해 전진하고 있답니다. 하긴 빨갱이들이 맞서 싸우기도 합니다만 미군들이 서울을 장악하기만 하면 부산근처까지, 한반도의 남쪽지역으로 전진해서 싸우는 빨갱이들의 보급선이 완전히 차단되어 버릴 것입니다. 빨갱이들의 병력 중에서 90%가 이 쪽에 있답니다. 어제 미군들은 “전멸하지 않으려면 하루속히 투항하라!”는 내용의 호외 수백만장을 뿌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유엔군들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으며 논산으로 곧 돌아갈 수 있을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논산으로 돌아가면, 두고 온 책이니, 옷이니, 가구니 성구들이니, 무엇을 되찾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공군부대에서 본 사진들에 의하면, 논산 성당 구내 건물에는 아무런 피해도 없는 것 같습니다.
남한이 수복될 때 남한 당국이 취하는 보복 조치들이 극심하리라고 예측됩니다. 빨갱이들에게 다소간 동조한 모든 이들이 엄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 소식통으로는 빨갱이들이 전쟁을 단념하지 않은 뿐 아니라, 북한군들은 점령한 남한에서 50만명의 청년들을 만주나 소련으로 강제로 끌어가 새로이 군단을 편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소식을 확인해 볼 수는 없습니다. 단순한 허위 소식일 수도 있지만, 소련사람들이 곧잘 사용하는 수법은 바로 그런 것인 것 같습니다.
자유를 빙자하여 얼마나 많은 범죄가 저질러지고 있는지요? 빨갱이 포로들이 있는 수용소를 방문해 보았습니다. 모두가 아직 아이티를 벗지 못한 17이나 18살의 젊은이들입니다. 그들 중에서 내가 전에 서울에 있을 때 세례를 준 어느 착한 사람도 다시 만났어요. 수천 명의 다른 사람들처럼, 그도 강제로 공산군에 입대하여 억지로 남쪽으로 점령군이 되어 가야만 했습니다. 그의 임무는 단순히 전진하여 남쪽땅을 점유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빨갱이들은 무기를 제공해 줄 생각은 하지도 않습니다. 빨갱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다수의 힘으로 남쪽을 휩쓸어 버리는 것 뿐이었으므로 사상자가 많이 나는 것에 대해 조금도 걱정을 하지 않는 그들입니다. 이 사상자들이 진짜 공산주의자들이 아닐 때에는, 더군다나 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빨갱이들은 자본주자들이 사람을 다만 “총알받이”로만 평가하는 자들이라고 비난해 왔지만 그들이 자행한 짓을 보면 그들은 순 위선자들 뿐입니다. 그러나 승리의 날이 다가 오고 있어서, 빨갱이들이 북쪽으로 다시 도망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유엔군들이 만주와의 국경선인 압록강까지 갔으면 합니다.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몰라서 말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논산에 계셨고 논산에 그대로 있기로 하신 노인 김신부님 덕분으로 약탈 당하지 않은 것이 많을지 모릅니다. 당장 심각한 문제는 이불이나 담요, 그리고 내복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무어라도 사야 할텐데 상점에 그런 것이 있을 리 없고 만일 있다 하더라도 그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싼 것입니다. 지난 부활 때 돌아가신 “메리상” 신부님이 입으셨던 “수단”을 며칠 전에 얻었습니다. 모자도 없지요. 피난올 때 방서(防署) “헬멧”을 쓰고 왔지만, 지금 계절에는 더이상 쓸 수가 없습니다. 생활필수품들의 가격이 올라가기만 합니다. 예전에 20전 하던 계란 한 개가 이제 200원이나 하는데 1원이 100전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물가고입니다. 논산을 떠났을 때 쌀 한 말에 2000원이었는데, 그 당시에도 아주 비싼 것이었지만, 지금은 일만원을 주어야 합니다.
모두가 어머니 곁에서 멋진 휴가를 보내었다니 매우 기쁩니다. 르네와 마드렌느가 마침내 자기 집을 가졌군요. 뽈과 지네뜨도 하루속히 자기 집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쟈끄와 즈느비에브와 그들의 식구들 모두가 건강하게 지내는지요? 이브는 무엇을 할 작정인가요? 쟝삐에르는 이제 고등학교 3학년에 베르나르는 고등학교 1학년에 올라가게 된 것 맞지요? 합격한 끌로드와 떼레즈와 꼴레뜨에게 축하를 보냅니다. 그런데 끌로드는 작년에 있었던 작은 문제를 완전히 극복했는가요? 독신으로 살기로 한 리제뜨에게는 강한 용기와 건강한 몸이 있기를 바랍니다. 안느마리와 미리끄레즈는 만일 장사를 할 경우에 아버지보다 더 넓은 안목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께서 하신 그것보다 더 크게, 모든 일을 대국적인 견지에서 볼 줄을 알았으면 합니다.
여기에 동봉된 편지를 전하시면서, 그곳 성당 주임신부님께 다음 2가지의 사항을 말씀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첫째로는 그분에게 보내는 편지는 15일 전에 쓴 것이지만, 이제야 보내 드리는 것이라고. 직접 부쳐 드리지 않고 이렇게 보내드림을 미안하게 생각하며 둘째로는 그분께 약속한 신문기사가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곧 보내드린다고 전해 주십시오.
미군들은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철도에 200여개의 다리가 있는데, 그중 파괴되었던 곳을 미군들이 이미 다 복구해 놓았답니다. 또 앞으로 며칠 사이에 잡게 될 많은 포로들을 위한 침구나 신불 같은 것을 이미 다 준비해 놓았답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 모두 포옹합니다. 모두에게 온갖 좋은 일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방학이 끝나서 학교로 돌아가는 학생들에게, 또 휴가가 끝나서 공장으로 돌아가는 이들에게는 힘내어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지니기를 바랍니다. 인생이란 일종의 싸움이므로, 날마다 힘차게 싸우십시오.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라.”든지, “세상에 있는 사람에게는 인생이 전쟁과 같다.”32)
고 옛날 욥 성인이 말했답니다. 여러분 모두를, 특히 어머니를 뜨겁게 포옹합니다. 여기에 동봉된 편지는 마리아 고모님께 전해주십시오.
삐에르 쎙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