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신
사랑하는 누이 말가리다에게,
예수성탄 첨례 행사도 드디어 끝이 났구나! 내가 얼마나 정신없이 바빴으며 교우들에게 불려 다녔는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니? 그래도 가끔 향수에 젖을 때면 혼자서 행복한 순간을 맛보기도 한다. 성탄일에는 작은 나의 성당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는지 영성체 때에는 어린 아이들이 밑에 깔리는 것만 같았다. 12월 한 달 동안만 50명의 영세자가 있었고 (어린이 영세와 대세자들을 제외한 올해의 총 영세자 수는 115명이다), 1,500명 이상에게 고해성사를 주었고 루르드 동굴과 공베르(P. J. Gombert) 신부를 기념하는 묘비 제막식이 있었다. 이 본당의 초대 신부이셨던 공베르 신부께서는 76세 때에 공산당들의 손에 의해 생을 마치셨다. 장례식도 치르지 못한 그 분의 유체는 이제 한국 땅의 흙이 되었겠지.
동봉하는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동굴을 만들기까지에는 한 사연이 담겨 있단다.
3개월 전만해도 나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지. 이 근방에 군사기지 하나가 있는 그 곳에 약 1년 전에 부임해온 한 한국인 대령이 최근에 우환을 당하고 떠나면서 50,000환을 나에게 가져 와서는 하지만 그 일을 두고 우리 본당의 간부들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체면을 잃은 셈이었지. “외교인이 기부금을 내놓아 성모상을 세우는데 우리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며 그들은 50만환을 목표로 하여 갹출금을 거두었다. 그리고 나는 돌 한덩어리를 둘로 쪼개어 공베르 신부 앞으로 작은 기념비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
지금은 교우들이 성당을 출입하면서 성모 어머님께 인사드리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큰 기쁨이 되었다.
이 곳에서의 생활이 너무 바빠서 나는 가끔 일본에 가 있는 선교사들을 부러워 할 때가 있다. 우리 본당의 신자 숨나 해도 수십 명의 선교사들이 있는 시주오카(Shizuoka)의 10내지 20여곳의 본당 신자 수보다 훨씬 많은 편이란다. 그 곳의 선교사들에게는 여유가 좀 있겠지. 그러나 한편으로는 할 일이 전혀 없는 것보다는 일이 있는 것이더 나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지. 교우들과 어린아이들 속에 묻혀 하루도 쉬지 못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 그리고 늘어가는 것은 걱정 뿐이다 학교도 늘려야 하는데, 교우들로부터는 여학교 하나를 만들고 (생. 모르 St. Maur 수녀님들이 오실 수 없을까?), 또 근방에 소성당을 최소한 4개는 지어야 한다는 건의가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당은 새로 지어야만 한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성당은 너무 비좁아서 교우들은 말 그대로 짓눌리고, 주일 미사 때마다 상당수의 교우가 성당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형편이고 예비자들은 점점 불어나서 앞으로 5년 후에는 어떻게 될는지… 올해 영세자 수는 최소한 200명에게 고해성사를 준단다. 나는 도무지 심심할 틈도 없고 하다 못해 너에게 편지 쓸 시간마저도 만들지 못하는구나. 그러나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서는 무척 기뻐하시겠지!
성탄일에는 성가대 어린이들에게 성가대복을 입혔고 가슴에는 나무 십자가를 걸어 주었다. 자정미사를 드리기 전에 모두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동굴 앞에 모여 묵주의 기도를 드리고 조촐한 촛불 행렬을 가졌다. 그 날 밤 영성체자 수는 1,100명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모 학교에 가서 1,000명의 학생들을 앞에 놓고 천주교에 관해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그 학생들은 끝까지 주의 깊게 나의 강의를 들었다. 며칠 후에도 두 군데 본당의 회장들 피정에 가서 강론하기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제부터 교세 통계표도 작성해야 하고 내 책의 출판도 서둘러야 하고 연말 보고서도 작성해야 한다. 그리고 올해엔 재의 수요일이 일찍 돌아와서 곧 공소순방도 떠나야 할 것 같다.
너와 너의 공동체 가족 모두에게 신년 인사를 전하며 네가 언제나 건강하고 기쁨 속에서 생활하기를 바란다. 나도 일전에 앓았던 좌골 신경통이 다 가셨으니 올해엔 건강이 호전될 것 같다.
나의 깊은 사랑을 전하며, 나와 그리고 내 본당 교우들을 위하여 기도를 부탁한다. 아울러 부디 성모 어머님의 은총이 나와 함께 하시어 내가 죽는 날까지 열심일 수 있도록 어머님께 청하여 다오.
미미 앞으로 쓴 편지 한 통을 동봉한다.
쎙제
* 편지 한 통 부치는 비용이 이 곳에서 미사 한 대의 예물 가치를 갖는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