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신

 

제 17 신

사랑하는 안느마리와 리제뜨33)



내일이 5월 30일이니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날이구나. 그러나 자연히 동생들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고 나의 형제다운 정을 글로써 라도 이야기하지 않고는 이 하루를 보낼 수는 없었다. 내일 아침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해서 연미사를 지낼 때에 너희들을 위해서도 꼭 기도를 하겠다.

그런데 안느마리야, 너는 더 이상 그 옛날의 안느마리와 같지 않구나! 이제 와서 너로부터 글 한 자도 받지 못하고 있구나! 너 혹시 어디가 아프니? 내가 너의 마음을 이렇게나 저렇게나 아프게 한 일이 있지는 않았니? 너의 침묵 때문에 나는 참으로 마음이 불안해진다. 혹시 마리끌레르 때문에 네가 슬픔에 잠겨 있는거냐? 다행히도 리제뜨가 보내 준 자세한 편지를 잘 받았어. 마침 끌레르에 대해서 상세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참으로 끔찍해.

그것은 조금도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 끌레르에게도 편지를 쓰지만 그의 주소를 몰라 여기에다 동봉한다. 이 편지를 그에게 전해 주기 바란다.

나야 여전히 건축 일과 엄청난 자금난으로 걱정에 싸여 정신없이 지낸다. 그러나 천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희망한다. “라라보” 주교님과 교황 사절께서 추천해 주신 원조 신청서를 로마 교황청으로 보냈다. 현재 새 성당의 뒷 부분, 즉 지하실과 그 위의 제의실과 교리실을 신축 중이다. 그러나 기초공사를 제외하고는 성당 본 건물 공사를 조금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단다. 조금이라도 이 공사를 위한 자금이 확보되면 기초 위에 올라갈 4줄의 석조 공사와 계단 공사만이라도 할 작정이다. 현재 일꾼들이 일을 하는 중인데 지금 하고 있는 공사는 7월초 쯤에는 끝나리라고 본다. 또 다른 걱정은 학교의 일이다. 학교를 확장하려고 하는 교장은 충분한 자금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건축공사를 시작해 버렸구나. 선생들의 월급을 지불할 돈이 없는 날에는 교장도 나도 난관에 봉착할 수 밖에 없겠지.

또 다른 걱정거리는 내 보좌신부와 마르땡 신부가 신경쇠약증에 걸린 것이다. 음식이 다르고 생활 습관도 바꾸어지고 언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리하게 공부한 때문인지 그는 불면증에 걸린 지가 한 달도 더 된다. 지금은 잠을 제대로 못 잔다는 이야기 이외에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기 때문에 정말 정신병 환자가 될까 보아 걱정이란다. 주교님께 말씀드렸더니 그가 한두 달 동안 해변 근처에서 휴양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지만 그동안에 나는 보좌신부 없이 지내야겠지. 교회와 정부와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 같아. 정부는 가톨릭 신문34)

을 폐간시켰는데 그 이유는 이 신문이 야당을 지지해 왔던 때문이다.

편지를 보내 줄 때마다 본국 휴가에 관한 질문을 하는데 이미 대답한 바와 같이 너희를 다시 보고 싶은 것은 더 말할 나위 없는 일이다. 그래, 본국으로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이곳은 사제들이 부족하고 새 예비자들이 몰려 들어 가뜩이나 모자란 일손을 더 바쁘게 하여 주교님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임을 잘 아는 내가 본국으로 휴가를 가겠다고 한다면 난처하신 주교님을 더욱 난처하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다가 신축 공사를 시작했으니 우선은 그 일을 끝마쳤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다. 그리고 설사 본국으로 갈 수 있다 하더라도 다시 고향인 헤댕으로 가지 못 하는 것과 편지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와 같은 비참한 형편에 빠져 있는 미리끌레르를 본다는 것도 나에게는 너무도 큰 슬픔이 될테니 차라리 이곳의 걱정과 고민 속에 그대로 파묻혀 있는 편이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안느마리. 너는 나에게 겨울용 긴 소매의 내복 3벌을 사 줄 수 있겠니? 지금까지 입어 온 것은 다 닳아서 더 이상 입을 수 없는 형편이다. 그리고 깃이 없는 6벌의 백색 사쓰를 사 주었으면 고맙겠어. 깃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수단”을 입을 때에 깃이 있으면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로만칼라의 앞 뒤 단추를 채울 수는 있어야 하겠어. 세탁할 수 있는 셔츠라야 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입으시던 기다랗고 자락이 있는 것은 싫다.

앞이 위에서 아래까지 완전히 열리는 것, 소맷부리가 넓은 것이면 더 좋겠다. 치수가 필요할지 모르니 가르쳐주마. 허리둘레가 105센티이다. 보다시피 난 좀 뚱뚱하거든. 목둘레는 43센티이다. 또한 빵 칼 한 개와 식탁용 칼 6개를 사 보내 주기 바란다. 우편으로 부쳐 주기 전에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용이지 팔아 먹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상표나 가격표 같은 딱지를 머리 떼고 부쳐 주렴.

내년에는 나의 사제서품 25주년이라, 커다란 축하식이 있을 것이며 관습에 따라 가능한 한 소시지, 햄, 포도주 등 프랑스산 식품으로 동료 선교사들을 대접하려고 한다. 푸짐하면서도 준비하기 쉬운 메뉴를 작성하는 일에 조언을 해 주기 바란다.

이브의 결혼식에 너희는 참석했었나? 일이 잘 진행되었는지 궁금하다 그가 파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니? 그의 지위는 향상될 전망이 있는 것이니? 파리에서의 그의 주소가 어디인지? 그리고 마리아 아주머니는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그분은 이제 많이 연로하셨을테지만 그런 소리를 하기만 하면 여전히 화를 내시니? 지금까지도 이태리 광장 근처에 있는 아벨 호브락그35)

 거리에서 사는지? 너희는 그분을 자주 찾아가 뵙니? 다음 여름휴가를 어떻게 보낼 계획인지? 그 모두가 궁금하구나.

나는 이번 여름 휴가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면, 두 번에 걸쳐 피정 강론을 할 것이다. 한 번은 내가 창설한 성가회 수녀들에게 서울에서 할 것이요, 또 한번은 한국의 남쪽에 있는 포항에서 할 것이다. 그곳 해변에 위치한 “데랑드” 신부가 창설한 수녀회36)

에서 하는 것이다. 피정 그 자체는 하나의 휴식기간과 비슷한 것이지만 힘드는 것은 그 강론 준비다. 언젠가 서울에 살았을 때 준비해야 했던 피정강론이 생각나는데 그 준비를 하느라고 머리를 얼마나 짜내야 했던지, 보름 동안이나 잠을 제대로 잘 수 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나의 보좌신부처럼 말이다!

이곳에서는 가족이 없는 나지만, 늘 내 주위에 왔다갔다하는 많은 어린이들을 보게 되기만 하면 너희는 대단히 놀랄 것이다. 집을 나서기만 하면 나의 “수단”에 달라 붙어 떨어지지 않고 앉기만 하면 내 어깨 위로 기어 올라 오는 유치원 어린이들이나, 잡담을 하러 오는 중학생들을 본다면 너희는 믿어지지 않아서 너희 눈을 의심할 것이다. 정말이지 나에게 지루한 시간이란 있을 수 없단다.

어제 이곳에서 12키로 떨어진 동네에 사는 어느 아주머니에게 종부성사를 주러 갔었다. 마침 성체 축일이었는데 그분에게 성체를 모셔 가느라고 혼자서 “성체거동” 을 한 셈이다.

너희를 전심으로 포옹하면서 너희가 큰 용기를 가지고 많은 기쁨을 가지기를 바란다.

삐에르 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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