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대림 제 2주일; 촛불 2개

“촛불 두 개”

두 개의 초가 타오르고 있습니다. 대림시기는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그 기다림은 기쁨에 넘친 기다림입니다. 서로 주고받는 성탄 선물 때문에 기쁨이 넘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기다리기에 기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대림시기에는 어떻게든 내 기쁨이 드러나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기쁨이 있습니다. 미사에 참례하면서 기쁨을 얻고, 함께 기도하면서 기쁨을 얻습니다. 또한 함께 봉사하면서 기쁨을 얻습니다. 내 것을 내어 주면서 기쁨을 얻고, 내 도움이 필요한 곳에 내 손길을 내어 놓으면서 기쁨을 얻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알고 있는 이들만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일이라는 생각과 손해라는 생각이 마음에서 떠난 이들만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대림시기가 귀찮을 수도 있습니다. 친구들과 송년모임이나 이런 저런 행사에 참례해야 하는데 성당에서는 이런 저런 행사가 있고, 교육이 있고, 또 판공이 있으니 말입니다. 개인적인 일들과 사회생활로 바쁘게 보내야 하는 연말이기에 갈등이 생기고, 더 나아가 형제자매들의 눈치도 보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결코 대림시기가 기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주님께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 통에서는 뜯지도 않은 감자나 고구마 상자들이 버려진다고 합니다. 부모님들이 보내주신 것을 뜯지도 않고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입니다. 나이 드신 부모님들은 자녀를 위해 이것 저것을 준비할 때, 부모님의 마음은 벌써 기쁨이 넘쳐납니다. 고구마나 감자를 싸서 자녀들에게 보낼 때, 김장을 해서 자녀들에게 보낼 때, 힘들게 만들어낸 것들이지만 자녀를 위해서라면 기쁘게 보내줍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을 모르기에 자식들은 귀찮아합니다. 그래서 뜯지도 않고 상자 그대로 버린다고 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버리는 것이고, 신앙의 기쁨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일을 먼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징은 한 번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런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 안에는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1. 촛불을 밝혀들고 기다리는 삶

촛불을 켜는 이유는 주변을 밝히기 위해서이고, 정성을 담기 위해서입니다. 주변을 밝힘을 통해서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이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이들은 빛으로 나아가려 하고, 그 마음을 변치않게 하기 위해 언제나 촛불을 밝혀들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① 주변을 밝히는 삶

촛불을 켜면 그 주변이 밝아집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빛을 보는 이는 촛불을 켜는 이입니다. 그리고 촛불을 겨면 그 빛이 먼저 촛불을 켠 이를 비춥니다. 그 빛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본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인정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부족한 모습은 자꾸 감추려고 합니다. 더러운 것이 하나 둘 쌓이게 되면 다른 것들도 더러워지고, 또 더러운 것들이 모여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더러움을 치울 생각을 하지 않고 감추려고만 합니다. 그렇게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빛이 자신의 주변을 환하게 비춰주면 그 더러움은 하나 둘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더러움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 더러움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촛불을 켜는 것입니다. 두 개의 초가 빛을 발하고 있으니 내 어두움도 그만큼 더 사라지게 되었고, 나 자신은 그만큼 더 빛으로 나아오게 된 것입니다.



② 정성이 담긴 기도

촛불을 켜 놓고 기도하는 신앙인들은 빛이신 예수님께로 온 마음을 향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성입니다. 촛불을 켜 들고 기도하는 신앙인들은 자신을 태워 주변을 밝히는 촛불의 삶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겸손하게 자신을 주님께 봉헌하며, 주님을 위해 살고자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유혹은 언제나 늘 나 자신만을 바라보게 만들고, 육신의 편안함과 세속적인 즐거움과 명예를 추구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 늘 기도하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정성담긴 기도를 바칠 때, 신앙인의 삶은 변화됩니다.

또한 신앙인의 삶은 변화되어야 합니다. 한생을 신앙생활하면서도 변화되지 않았다면 결국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언제나 유혹에 넘어간다는 것이며, 마음에는 “주님께 대한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신앙인들이 “주님께 대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자매들의 일에 동참해 주는 것, 그것이 신앙인들에게 필요합니다. 만일 내가 “있어도 없는 것 보다 낫지 않고, 없어도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면 슬픈 일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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