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사순 제 5주일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죄 있는 사람과 죄 없는 사람. 두 발을 땅에 디디고 살아가면서 죄를 안 짓고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누구든지 크고 작은 죄들을 짓고 살아갑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나는 죄를 짓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죄가 없는 사람도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늘 이런 저런 죄를 짓고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나 자신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상황과 형제자매들의 상황은 다르다는 것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어려운 것은 형제자매들이 쉬울 수 있고, 또 형제자매들한테 어려운 것들은 나에게는 쉬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죄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죄를 용서받은 그리스도인들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죄를 용서받은 사람. 그렇다면 나에게 잘못한 이들도 용서해 주고, 받아들여주어야 합니다. 또한 나와 관계없는 죄를 짓고 있는 그도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나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2.1. 백성들을 가르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낮에는 백성들을 가르치시고, 밤이면 고요와 침묵 속에서 기도하시려고 올리브 산으로 가셨습니다(요한8,1). 바쁜 일상에서도 항상 하느님과 함께 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나 또한 기도하며 일하는 사람이 될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날이 밝으면 다시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애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실 일을 당당하게 하십니다. 백성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남이 뭐라 해도 하느님의 일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비록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한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신앙인들의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다시 힘을 내야하고, 하느님 백성을 위해 늘 새로운 마음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비록 시기와 질투를 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내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당당히 하는 것입니다.

 

2.2.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가증스러운 목소리로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요한8,4)하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뻔뻔스러운 얼굴로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요한8,5)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들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 이젠 예수님께서도 어쩌실 수 없을 거야. 백성들에게 욕을 먹든지, 로마정부에 의해 처벌을 받든지 둘 중의 하나는 이루어지겠지.”

 

만일 예수님께서 율법에서 가르치는 것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하신다면 그동안 말씀하신 자비가 물거품이 되는 것이고, 백성들은 예수님께 실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즉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을 하신다면 백성들은 예수님께 등을 돌릴 것이고, 사형선고의 권리가 없는 유다인이 살인을 명령하면 살인교사 혐의로 로마당국에 체포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용서해 주어라.”라고 말씀하신다면 모세의 율법을 어겼다고 하면서 율법을 거스른 자로 회당에 고발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범죄는 사형으로 처벌하지 않았던 로마의 추종자라고 모함을 할 것입니다.

 

①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시는 예수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드려고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예수님 앞에 끌고 온 것입니다. 그리고 판결을 해 달라고 가증스럽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장기로 말하면 “외통”에 걸린 것입니다. 이렇게 대답해도, 저렇게 대답해도 죄인으로 몰리고, 불경한 사람으로 몰리는 것은 뻔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없애고 싶어 했던 유다인들은 스스로 완벽한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자랑스러워하며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습니다.”(요한8,6)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쓰고 계셨을까요? 아마 예수님께서는 각 개인의 죄를 쓰고 계시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죄 많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죄인을 단죄하려는 그 마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땅에 그들의 죄를 쓰고 계시지 않았을까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 모든 심판을 하느님께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생명은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이고, 올바른 판결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②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8,7)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땅에 쓰신 내용이 무엇인지를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시간을 끌고 있다고 생각하며 “어떻게 할까요?” 하면서 줄곧 물어 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8,7)

 

사실 유다인들은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에게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여인을 통하여 예수님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으로 그들은 혼란스럽게 됩니다. 사실 하느님 말고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심판하거나 벌을 줄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은 심각한 문제에 빠지게 됩니다. 돌로 치자니 자신이 죄가 없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안치자니 율법을 우습게 만들게 되는 것이고. 오히려 “외통”을 당한 것입니다. 만일 죄가 없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지난 죄를 알려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두려운 일이겠습니까?

 

③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를 쓰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말씀하시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를 쓰시기 시작”(요한8,8)하셨습니다.(요한8,7)

이런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한 사람이 돌을 던지려고 돌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의 죄를 땅바닥에 쓰십니다. 누구랑 싸우고, 등치고, 모함하고, …, 문득 그것을 본 사람은 슬그머니 그 돌을 내려놓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돌을 집었지만 예수님은 또 그의 죄를 적으십니다.


④ 나이 많은 자들부터 하나씩 떠나가다.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하던 이들은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8,7)라는 말씀을 듣고, 또 예수님께서 땅에 쓰시는 그 내용을 보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떠나갔습니다(요한8,9). 자신도 죄를 짓고 있는데 남을 단죄 할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죄를 예수님께서 알고 계신데, 죄 없다고 하면서 돌을 들어 여인에게 던질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나이 많은 사람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가 버렸다는 말씀이 와 닿았습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신을 볼 줄 알아야 하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겸손해 져야 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 섰다기 보다는 씩씩거리며 다음 기회를 노리고 돌아섰을 것입니다. 정말 나이 많은 사람이었다면, 그래서 겸손하고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용서를 청했을 것입니다. 어떤 노인이 되어야 할까요? 얼굴 붉히는 노인이 되어야 할까요? 아니면 겸손하게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노인이 되어야 할까요?

 

가끔 우리는 \”나는 죄 없는 사람이다\”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단지 자신이 그것이 죄라고 못 느낄 뿐입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생각을 했고, 많은 경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벼가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내 모습 또한 더욱 겸손해 지면서 남을 위험에 빠뜨리려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청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⑤ 예수님 앞에 홀로 선 여인

죄 없는 사람이 돌로 치라는 말씀을 듣고 사람들은 모두 떠나가 버렸습니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요한8,9) 예수님께서는 물으십니다.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요한8,10) 그러자 여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요한8,11) 이제 이 여인은 예수님 앞에 홀로 서게 됩니다.

 

하나 둘 손에 들고 있던 돌을 놓고 가 버릴 때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된 그녀의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이제는 새 사람으로 살겠노라고 다짐하지 않았을까요? 처음에는 예수님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비록 자신이 죄인이지만 예수님 때문에 이런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하나 둘 가버리는 상황 안에서 그녀의 마음 원망과 두려움에서 한없는 감사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 앞에 홀로 선 이 여인은 자신의 온 생애를 돌아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듯, 그렇게 자신의 죄를 모두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예수님 앞에서 감출 수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이 여인은 예수님 앞에 홀로 서 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앞에 있는 나는 내 죄를 감출 수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죄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다른 이들을 단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죄지은 여인을 용서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당신 앞에 홀로 서 있는 여인에게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8,11)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용서하십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다시는 죄짓지 말라고 이르시며 새 삶을 살아가도록 말씀하십니다.

 

용서받는다는 것은 이제부터는 전처럼 살지 않겠다는 것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받은 이들은 지금까지 가던 길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신 새로운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은 사랑의 길이고, 그 길은 용서의 길이고, 그 길은 화해의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새로운 길이고, 마침내 참된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제 부활을 맞이하여 판공성사를 준비합니다. 판공성사를 통하여 나 또한 지난 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청하고 새 삶을 살아가고자 다짐을 합니다. 그리고 새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새 삶을 통하여 더욱 주님께 영광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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