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자세

스승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자세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인들의 냉대를 받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대단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의 고백은 확고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루카9,57)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선택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바뀌기도 합니다. “예수님! 제가 이런 것을 좋아하는데 이쪽으로 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굳이 예수님께서 그 길로 가신다면 할 수 없겠지만 저는 이쪽으로 가고 싶네요. 예수님! 웬만하시면 이쪽으로 가시죠?”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것들을 충실하게 수행하겠다고 다짐했다는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늘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신 길을 제가 갈 수 있도록 강복을 주십시오.라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을 하는 이 젊은이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루카9,58) 예수님을 따르려는 이 젊은이에게 첫째, 안락한 생활과 편안한 잠자리는 꿈도 꾸지 말고, 둘째, 사람들이 존경하고 감사하는 삶은 생각도 하지 말며, 셋째, 사람들의 냉대와 박해는 늘 각오해야 함을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이런 모든 어려움들을 각오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한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루카9,59)하고 부르십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루카9,59)하고 청하였습니다. 죽은 이를 장사지내는 일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중대한 의무였습니다. 시체를 만져 부정을 타는 일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사제나 레위인이라 할지라도 친척들의 장례는 치러야만 했습니다. 즉 장례를 치루는 것은 가장 우선시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루카9,60)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장례도 치루지 못하게 하시는 불효자로 만드시는 것일까요? 인륜을 거스르도록 가르치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생명에 대해서, 사람을 살리는 일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인간을 죽음에서 생명에로 변화시키는 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죽음의 상태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모든 것은 내맡기는 나는 예수님을 통하여 생명을 받아 누리는 사람이고, 그 생명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이들에게는 하느님 나라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처럼, 영적으로 죽은 이들에게 생명을 선포하며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게 하는 일은 죽은 자들의 시신을 묻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또 한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루카9,61)하고 청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기꺼이 따르겠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겠다며 허락을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9,62)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는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엘리야가 엘리사를 불렀을 때 엘리사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에 선생님을 따라가게 해 주십시오.”(1열왕 19,20)하고 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소를 잡고 쟁기를 부수어 고기를 구워 사람들을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를 따라갔습니다.

 

쟁기를 손에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루카9,61)는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입니다. 선택에 확신이 있을 때, 그는 온 삶을 투신하게 됩니다. 자신의 삶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게 되고, 옳은 것을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내어 놓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해야 합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잡을 것은 확실하게 움켜잡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다해 11-20주일, 연중시기(다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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