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두 제자들 파견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루카10,1) 말씀하셨습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루카10,2)
이제 일흔 두 제자는 주님께서 오심을 알리는 사람들이고, 주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그 고을 사람들에게 미리 알려주는 사람들이며, 예수님께서 부여해 주신 사명을 수행할 것입니다.
그런데 열두 사도와는 달리 그들의 이름은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일흔 두 제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예수님을 위해서 예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일흔 두 제자의 모습이 내 모습이 되어 공동체를 위해서 보이지 않게 봉사를 해 봅시다. 우렁각시가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하는 것처럼, 우렁이 신자가 되어 형제자매들을 기쁘게 하는 신앙인이 되어 봅시다.
파견 받은 일흔 두 제자는 하느님 나라의 추수꾼입니다. 추수밭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추수되는 곡식들은 하느님의 자녀들로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한 톨도 바닥에 떨어져 “버려지는 일이 없이” 정성스럽게 곡식들을 모으는 일꾼들은 하느님 백성들을 돌보는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더 많은 일꾼들(주님의 제자들)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세상 모든 이들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흔 두 제자에게 첫 번째로 하느님 아버지께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내가 충실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일꾼이 더 많아 질 수 있도록 하느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주변의 형제자매들이 나에게 “이것을 함께 해요.”라고 말한다면 기꺼이 “네!”할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십니다. 그 걱정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루카10,3) “이리”라는 것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을 말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론가, 열광자, 괴변가들을 가리킬 것입니다.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하느님께서 선포하시는 사랑의 메시지는 받아들이지 않고, 하느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 신앙인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누군가가 자신들의 부족한 모습을 이야기 하거나,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자신들의 모습이 드러나면 가차 없이 없애버리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이리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낸다는 것은 모욕과 박해, 죽음까지도 감수하라는 것입니다.
공동체에서 봉사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임이 있는 경우 나오기 싫은 이들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공동체에서 결정된 것을 하기 싫은 이들은 이런 저런 불평을 하고, 공동체의 결정을 바꾸어 놓으려고 합니다. 공동체를 재미없게 만들고, 흩어버리려 하며, 사회 모임과 차이가 없게 만드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복음적이지도 않고, 기도하지도 않으며, 봉사할 마음도 없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결코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봉사자들의 힘과 열정을 빼앗아 버립니다. 하지만 봉사자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이리떼 속에 자신이 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을 해야 함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