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큰 평화를 체험합니다. 그런데 주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평화가 없습니다. 오히려 분열이 생겨 편이 갈리고, 서로 시기질투하게 되는 경우도 생겨납니다. 사람에게 실망하며 갈등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망설이게 되며, “주님을 몰랐더라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 텐데.”하면서 등을 돌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지도 못하고 저렇게 하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만을 바라볼 때는 큰 평화가 밀려옵니다. 갈등과 서운함은 그저 분심일 뿐이고, 형제자매들이 나에게 평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에게 평화를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역경속에서 오히려 더 큰 평화를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주러 왔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12,51)
사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서로 분열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저분은 메시아다, 저분은 그냥 예언자다”,“저분은 사기꾼이다. 저분은 죄인이다”,“저분은…,” 이렇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과 예수님을 죄인으로 단죄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태도가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각자의 선택은 서로를 갈라놓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태도가 다르면 행동도 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루카12,52)는 말씀과 같은 상황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 안에서 믿지 않는 이들이 있으면 그들에게 전교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보다 힘듭니다. 왜냐하면 내가 신앙생활 하는 것을 다 보았기 때문에 “우리 성당가요”하면 “야! 너나 잘해!”“나는 성당 안다녀도 너 만큼은 해!” 이런 소리를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는 포기하게 되고 “그래! 언젠가는 때가 오겠지?”하면서 기다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당당해져야 합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에 이렇게 양보하면서 살아가고 있고, 내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에 인내하고 있으며, 사랑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신앙을 이야기해도 외면하고, 미루고, 심지어 조롱까지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신앙생활을 하기에 이 정도라도 하고 있다는 것을 당당하게 말해야 합니다. “비신자 배우자의 눈치를 보며 신앙생활을 하고, 방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오히려 비신자 배우자 쪽에서 “내 배우자가 신앙생활을 그만두면 어떻게 하지?”걱정할 정도로 내 삶의 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평화는 참된 구원의 시작입니다. 그 평화는 그리스도인들이 누려야 하는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신앙 안에서 확신에 찬 삶은 주님께서 주신 평화를 간직하려고 하고, 주님 편에서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려고 노력해 봅시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는 하느님의 귀한 자녀가 되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