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나는 흠도 많고 티도 많이 있습니다. 나약한 존재이고, 불안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들은 모두 감추어 두고 있습니다. 남에게 보이기도 싫고, 하느님께 드러내기도 싫습니다. 기도 중에 이러한 모습이 떠오르면 괴롭기에 기도를 멈추고 다른 것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어둔 면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겸손한 사람만이 참 하느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겸손하게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영혼만이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겸손은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며, 하느님께 합당한 자임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표시입니다. 겸손 없는 영성생활은 악마의 놀이터가 되기 제일 쉬운 삶입니다. 사람이 숨을 쉬어야만이 살 수 있는 것처럼 “겸손과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이 없이는 영성생활은 불가능합니다. 목수가 집을 지을 때 반드시 못을 필요로 하듯,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반드시 겸손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욱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알고, 하느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겸손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 스승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겸손은 하느님의 위업이다. 겸손으로 가는 길은 이렇다. 육체노동을 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죄인으로 여겨야 한다. 모든 이에게 굴복해야 한다.”
그러자 제자가 물었습니다. “모든 이에게 굴복해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스승은 제자에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모든 이에게 굴복한다는 것은 다른 이의 결점에 마음을 쓰지 않고 오히려 더 자신의 결점을 관찰하고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겸손한 그리스도인은 다른 이들의 죄를 염려하기보다는 자신의 모습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다른 사람의 허물은 아주 작게 보고, 자신의 허물은 크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어스 수도승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칭찬과 명예를 누리는 동시에 하늘을 위한 열매를 맺는 것은 불가능하다.”

겸손
어느 날, 네 명의 수도자가 모여서 겸손하게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첫 번째 수도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금식을 잘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십 일간 단식한 것을 기억하면서 자주 단식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수도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가난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목수의 아드님이심을 기억하면서 아무것도 지니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수도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사랑 밖에 모르셨던 예수님의 삶을 본받고자 사랑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네 번째 수도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저는 한 스승에게만 순종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자 세 수도승은 네 번째 수도승을 칭찬하며 이렇게 입을 모아 말하였습니다.
“당신이 가장 훌륭하십니다. 저희는 저희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 왔는데, 당신은 자신의 모든 뜻을 포기하고 한 스승의 뜻만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단식이요, 가장 큰 가난이며, 가장 큰 사랑입니다. 긴 세월동안 당신이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이 주님을 본받아 겸손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