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교만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이들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죄인들의 멸망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세상 모든 이들이 회개를 통하여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모르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음식을 나누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못 마땅히 여기며 비난하였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은 스스로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고 있다고 생각을 했고, 그렇게 자신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들은 허물이 없는 것으로 착각을 하며 살았고, 그들 눈에 죄인으로 보이는 이들은 단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죄 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접촉에 의해서도 부정해진다고 생각했기에 세리나 죄인들과는 어울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들의 경쟁상대 이신 예수님께서 그들이 보기에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못마땅했을 것이고, 자기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하셔서 못마땅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자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루카15,2) 하고 투덜거렸던 것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로 모여든 사람들을 이미 죄인으로 단정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죄인이고 누가 의인입니까? 율법학자들이 멸시한다고 해서 세리들이 죄인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안다는 사람들,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이들을 무시했지만, 그래서 죄인 취급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받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벌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오는 그 누구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직장인 공동체 피정 중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판단과 겸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한 형제가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제가 저희 직장에서 신자 명단을 받았는데 화가 무척 났습니다. 거기에는 정말 신자의 모습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직원의 이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직원이 가톨릭 신앙인이라는 것이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우리 부끄럽지 않은 신앙생활을 위해서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대충 누구인지 감을 잡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형제의 말에 공감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피정 강의를 시작하려 하는데, 다시 그 형제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어제 제가 제 마음에 들지 않는 동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밤새 잠을 자지 못하였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동료도 신자 명단에 제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어떻게 이런 사람이 신앙인일까?’하고 생각하였을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 교만했습니다.”
겸손은 나를 보게 만들고 형제자매들을 차별대우 하지 않게 만들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참회하고 주님께로 나아오는 이들은 기꺼이 받아들여주시고, 어느 누구와도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죄인들은 예수님께로 모여 들었습니다. 내 옆에 있는 이들은 내가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내 죄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이 죄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 옆에 있는 이들은 내 죄를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반겨 주시듯, 그렇게 나도 다른 사람들을 반겨주며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반길 것이 아니라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반길 수 있는 내가 되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