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교자들의 인내와 애덕
우리나라의 순교자들은 여러 가지 수많은 덕행과 선행을 실천하였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웃과의 사랑입니다. 극도의 가난 속에서 살면서도 가난한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자신의 것을 내어줄 수 있었던 분들이 바로 우리들의 순교자이십니다.
순교자들이 박해를 받던 당시는 우리나라에 흉년과 기근이 심하였고, 탐관오리들의 착취가 극심했던 때였습니다. 박해자들은 신자들의 가산을 몰수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하여 순교자들은 극도의 빈곤과 가난과 피난지의 배고픔을 겪었지만 하느님을 원망하는 기색이나 추호의 불평도 없었으며, 오히려 그러한 환경에 처할수록 교우들끼리 서로 돕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갔습니다. 당시의 심한 기근으로 굶어 죽는 자가 많았지만 교우촌 사람들은 비록 초근목피의 생활을 했지만 굶어 죽는 자가 적었고, 오히려 서로서로 행하는 애덕 실천으로 영적 기쁨이 충만하였다고 합니다.
① 감옥 안
신자들이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면, 체포되지 않은 교우들은 위험과 생명까지 내 놓고 신자들을 돌보아 주었고, 감옥 안에서는 자신의 병이나 상처가 조금만 낫기만 하면 항상 다른 동료들의 상처를 닦아주고 보살펴 주었습니다.
을해박해(1815년)때는 감옥 속에서도 입고 먹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짚신을 삼아서 팔았고, 밤이 되면 등불을 켜놓고 모두 함께 성경을 읽으며 큰 소리로 공동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어찌나 감옥에 있는 수인들이 화목하고 평화롭게 지냈던지 그 때문에 동네 주민들조차도 이를 이상히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외인들이 보기에 고통과 절규 속에서 보내야 할 천주교 신자들이 기쁨과 평화와 화목 속에서 감옥 생활을 하는 것을 보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② 사회사업
순교자들은 무지한 사람들을 가르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로하며, 병자를 간호하고, 죽을 위험에 처한 외교인 어린이들에게 대세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신자들이 희사한 돈을 모아서 옥에 갇힌 이들에게 전하고, 순교자들의 시체를 찾아 거두어 들이셨습니다.
③ 나눔
윤권명은 자신의 모든 수입을 가난한 사람들이나 불행한 사람들과 나누어 가졌고, 교우가 되면서 자기 종들을 모두 해방시켜 주었으며, 집으로 찾아오는 많은 외교인들을 가르쳐 교우가 되게 권면하는 일을 가장 중요한 일과로 삼았습니다. 윤권명은 그가 살았던 동네의 주민들이 감탄하고 찬양하는 가운데 기도를 드리면서 이 세상을 하직했다고 합니다.
④ 신의
또한 순교자들은 아무리 심한 고문 중에도 다른 교우들의 이름을 절대로 말하지 않았으니, 비록 자신이 심한 고문으로 죽게 되었어도 다른 교우들의 생명을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남의 이야기를 쉽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가 어떻고, 누가 어떻고…,” 이런 말을 쉽게 하다보면 공동체가 분열될 수 있고, 또 신앙인의 자질을 의심받게 되고, 더 나아가 선교는 꿈도 꾸지 못하게 됩니다. 입이 근질거려 말하고 싶어도 참을 수 있고,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냐시오 형제는 참 입이 무거운 사람입니다. 헬레나 자매가 누구 험담하는 것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이런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