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은 어디에 있느냐?(루카17,17)
몇 년 전에 “수능시험”을 하루 앞둔 날 복음말씀이 이 말씀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시험을 보기 전에 미사에 참례하고 성사를 보고 강복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수능시험이 끝나고 그날 성당에 와서 감사하며 미사에 참례한 학생이 한 명이 있었습니다. 단 한명 있었습니다.
나병을 치유 받은 사람은 열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감사를 드린 이는 한명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루카17,17)라고 물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을 치유해 주시고 감사를 받고 싶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루카17,8)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장실 갈 때랑 나올 때랑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잊고 계신 것은 아닐까요? 치유 받은 아홉 명의 유대인들은 아무런 감사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자신의 성한 몸을 사제에게 보이고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서둘렀을 것입니다. 그들이 마음이 집에 가 있겠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고쳐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감사를 드림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홉 명의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선물을 당연히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치유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하느님의 치유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선물은 은총이기에, 그 은총에 늘 감사해야 합니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들을 한번쯤은 감사하다고 여겨 보십시오. 두 눈이 있음을, 두 팔과 두 다리가 있음을, 가족이 있음을, 부모가 있음을, 직장에 다니고 있음을, 그리고 내가 신앙인이라는 것을 그렇게 하다보면 모든 것을 감사하는 내가 될 것입니다.
살아 가며서 많은 은총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은총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감사하지 않고 살아가는 나에게 자비를 거두실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찬양 드리며 믿음을 고백한 사마리아 사람”에게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17,19)고 말씀을 하십니다. 신앙의 기쁨을 체험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모습이 바뀌게 됩니다. 내 안에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든 행동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은 믿음의 은총을 체험했기에 주님 앞에 감사드리며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믿음도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경건함이 표현되어야 하고, 감사함이 표현되어야 하고, 사랑이 표현되어야 합니다. 겸손이 표현되어야 하고, 나눔과 희생이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러므로 나의 믿음은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찬미와 감사로 드러나야 하고, 사랑과 자비와 용서로 드러나야 합니다. 내 믿음을 행동으로 표현하기 위해 오늘 구원받은 사마리아 사람의 모습을 늘 마음 깊이 간직해 봅시다. 그렇게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립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