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활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는 나의 삶

부활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는 나의 삶

우리 모두는 부활에 대한 확신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부활한 삶은 우리 현세 생활의 연장이 아닙니다. 만일 현세 생활의 고통을 그대로 갖고서 영생을 살아간다면 그것이 과연 천국이겠습니까? 천국에서도 고통스러워하고, 천국에서도 자신을 고통에 빠트린 사람을 미워하거나 저주하고 있다면 그것이 천국의 삶이겠습니까? 또한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이 하느님 나라에서의 삶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서의 삶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 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 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루카20,34-36)

 

하느님 앞에 나아간 사람들은 그곳에서의 참된 기쁨이 지금 우리가 느끼는 행복과는 다를 것입니다. 지금은 불완전한 것들 안에서 행복을 찾고 있지만, 완전한 곳에 가 보면 무엇이 참된 것인지, 참된 행복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완전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희미한 것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일도 아닌 것을 걱정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나는 지옥에 가려고 발버둥치고 있는데 천국 걱정은 해서 뭐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사두가이파 사람처럼 예수님과 논쟁하려 하지 말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만이 영광스러운 삶에 초대를 받게 될 것입니다.

 

충실하고 성실하게 하느님을 섬긴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상으로 주어집니다. 인간의 생명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하여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됩니다. 지금 지상에서의 삶도 영원한 생명의 한 부분인 것입니다. 그리고 지상에서 육신이 지금 죽었다 할지라도 우리의 영혼은 하느님 앞에는 살아 있으니, 지상의 사람이든, 천상의 사람이든 모두 하느님 앞에서는 살아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주십니다.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루카20,37-38)

 

모세도 하느님 앞에서 영광을 받고 있고, 아브라함도, 이사악도, 야곱도 하느님 앞에서 영원한 생명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간다면 하느님 앞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삶을 희망하는 나는 부활의 삶을 희망하는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위령성월을 맞이하여 나보다 먼저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해 드리고, 나 또한 더욱 의로운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시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다해 31-34주일, 연중시기(다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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