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탄에 보여 지는 것들의 의미
1. 구유
성탄전례가 다른 전례시기와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교회 안에 화려하게 준비되고 장식된 구유를 들 수 있습니다. 구유는 지역에 맞게, 그리고 특색 있게 꾸며져 성탄시기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큰 기쁨을 줍니다. 교회에서 공경 받고 있는 구유는 베들레헴의 구유이며, 그 다음이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 성당(Santa Maria Maggiore)의 구유입니다. 특히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 성당의 \”구유의 나무는 12세기 이래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구유라고 인정되었으며, 대 성당의 중앙제대 밑에 보존\” 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성당과 달리 따로 인위적인 구유를 마련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구유의 일부가 보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각 본당에서 볼 수 있는 성탄구유는 1223년 성탄 때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로마 근교 도시인 그레치오(Greccio)에서 동료들과 은둔생활을 하던 중 성탄 행사를 보다 더 의미 있게 지내고자 베들레헴의 외양간을 본뜬 마구간을 만들었던 데서 기인합니다.
짚으로 가득 찬 곳에 구유를 만들어 놓은 다음 그 곁에 당나귀와 황소를 배치하였습니다. 당나귀는 체구가 작으면서도 허리가 튼튼하여 등에 짐을 지우고 다니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당나귀의 장점은 대단히 겸손한 동물입니다. 성지주일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실 때 당나귀를 따고 입성을 하신 이유는 당신의 임무가 왕도(王道)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섬김에 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단점은 고집이 많아 주인의 음성을 듣지 않고 이기적인 기질에서 세상의 지식에 매여 있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유에서 구유에서 발견되는 당나귀의 의미는 세상의 모든 이방인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황소의 특징은 인내와 충성입니다. 구유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황소의 의미는 죄의 멍에를 지고 살아가는 유대인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고통을 참는 인내심을 황소를 통해 유대인들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당나귀와 황소를 한 마리씩 놓아 예수님의 탄생 사건을 재현함으로써 신자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나귀와 황소의 의미를 통해, 즉 이방인과 유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구세주가 온 인류를 위해 탄생하셨다는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구유를 만들 때 꼭 있어야 하는 필수적인 동물로 구유의 커다란 상징적 의미를 갖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을 통해 구유에 대한 신심이 증가되었고, 작은 모형의 마구간을 만들어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풍속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2. 성탄트리
성탄 기간 중 전구 등으로 장식하는 상록수를 성탄트리라고 합니다. 언제부터 크리스마스 때 나무를 장식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1600년경의 실레트슈타트(Schlettstadt) 연보, 1605년의 스트라스부르크(Strassburg) 연보에 크리스마스 때 나무를 장식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점으로 미뤄보아 크리스마스 트리는 독일에서 맨 처음 사용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당시 이 지방에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성당 앞 정원에서 낙원극(樂園劇)을 공연하였는데, 낙원극을 공연하는 동안 ‘생명의 나무’(창세 1,9)를 상징하는 상록수에다 하얗고 동그란 과자를 달고, 나무 주위에다 촛불을 피워 나무를 빛나게 하였습니다. 지금도 남부 독일 지방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파라다이스(Paradais)라고 부르고 있음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중세의 낙원극에서 유래되었음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 후 크리스마스 트리는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나타나게 되고, 현대에는 전 세계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때 나무를 장식합니다.
3. 산타클로스
산타클로스는 세인트 니콜라스(Saint Nicholas)로부터 전화(轉化)된 말입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고 다니는 붉은 외투 차림에 흰 수염의 노인을 산타클로스라고 하는데, 미국에 이주해온 네덜란드의 프로테스탄트에 의해 전해져 세계 여러 나라에 대중화되었습니다.
원래는 4세기 전반에 터키의 남부에 있는 지금의 담브레(Dembre)의 미라(Myra)에 살았던 성 니콜라오(St. Nicholaus) 주교님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산타클로스의 복장을 보면, 주교님의 빨간 수단이 떠오르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성 니콜라오 주교님은 어린이와 선원들의 수호성인입니다. 또한 러시아, 자선단체, 동업조합 등 여러 형태의 수호 성인으로 동방과 서방교회에서 널리 알려진 성인이나 미라의 주교였으리라는 사실 외에 그의 생애를 밝혀 줄 역사적인 자료는 확실치 않습니다.
유럽에는 성 니콜라오 주교님께 봉헌된 교회가 수십 개에 달합니다. 성 니콜라오 주교님의 유해는 1087년 미라에서 남부 이탈리아의 바리(Bari)로 이장되었습니다.
교회는 12월 6일을 축일로 기념합니다. 13세기 수도원학교에서 예전부터 행해져 오던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의 관습인 \’소년 주교 의식\'[소년들 중 주교를 뽑아 12월 28일의 축일까지 주교 행세를 하게 함]이 이날로 옮겨졌습니다.
또한 자선심이 많고 특별히 어린이를 사랑했던 성 니콜라오가 어린이들을 방문하여 선물을 나누어주었다는 전설과 결부하여 축일 전날 밤, 어린이들의 양말 속에 장난감과 과자를 가득 채워주는 풍습이 발전되었습니다. 신대륙 발견 이후 미국에 이주해 온 네덜란드의 프로테스탄트들이 이러한 옛 가톨릭 관습을 그대로 보존, \’신비의 사람 방문\’이란 관습으로 되살려 12월 5일에서 25일 사이에 실시하여 현재까지 계속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인과 그 축일의 근본적인 면은 도외시하여 그를 \’자비로운 요술쟁이\’로 대치시켜 \’산테 클라아스\’라 불렀고 이 발음이 영어화되자 어린이들이 더 정답게 부르게 되어 산타클로스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