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로운 하느님의 자녀들
자비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 분명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나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해 주는 사람 또한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나를 학대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 또한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누가 내 뺨을 쳤을 때 다른 한쪽마저 돌려대 주는 사람, 겉옷을 빼앗겼을 때 속옷마저 내어 주는 사람. 대단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해 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를 미워하고 나를 박해하고, 피해를 주는 사람에게 잘 해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원수 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남을 비판하지 말고 단죄하지 말라는 이 말씀. 참으로 어려운 말씀만 골라서 하고 있습니다. 분명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말씀하셨으니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하겠습니다. 지키는 시늉이라도 하려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어느 동네에 아주 고약한 사람 둘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아주 고약한 구두쇠에 자린고비였고, 또 한 사람은 욕심쟁이에 자기만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욕심쟁이인 사람이 임대하여 사용하고 있던 땅을 구두쇠가 땅 주인에게 아주 헐값에 사들였습니다. 욕심쟁이는 그 땅을 내어주기 싫어서 전 주인에게 몇 년 동안 사용하겠다는 각서를 받았고, 대금도 미리 지불해 주었으니 못나가겠다고 하였고, 구두쇠는 자신이 땅을 살 때는 그런 조항이 없었다며 서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증인을 만들고, 계약서를 위조하며 몇 년을 소송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법적인 문제가 서로 걸려서 막대한 소송비용은 물론이요 형사처벌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은 “당신들 때문에 우리 동네가 이렇게 시끄럽게 되었으니 둘 다 이 동네를 떠나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땅을 가지고 그렇게 싸운 그들은 동네에서 인심도 잃고, 돈도 잃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손해를 본 다음에야 비로소 욕심쟁이는 “그때 그냥 포기할 걸.”하고 후회하였고, 구두쇠는 “몇 년 더 사용하도록 내버려 둘걸.”하고 후회하였습니다. 그러나 결코 두 사람은 화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죽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문제가 되었던 땅에 작은 비석을 세우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문구를 본당신부님께 만들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러자 본당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써 주셨습니다. “주면 행복해지거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고 사랑으로 돌려주는 것. 누가 그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사랑!” 말로는 참으로 하기 쉬운 것이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굳은 결심과 큰 인내가 필요합니다. 물론 그 사랑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몸소 보여주셨고, 나 또한 하고자만 한다면 신앙의 힘으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하고자 하더라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어떻게 참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웃음으로 돌려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밤을 새워가며 기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기도를 멈추지 맙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