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사랑하여라.

사랑하여라.

구약에서는 동태복수법이 있었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마태5,38)라고 하는 것처럼, 가해자가 피해자의 눈을 상하게 했다면 가해자의 눈을 피해자가 입은 상해만큼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똑같이 복수를 한다 하더라도 감정이 안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내 아들의 눈을 다치게 한 상대방에게 분노와 복수심에 불타는 아버지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양쪽 눈을 다 멀게 하지 않겠습니까? 더 나아가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결국 복수심에 불타는 복수는 보복을 낳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악순환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동태복수법은 금전적 보상제도로 대체되었고, 예수님에 의해 완전히 폐기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악행과 학대를 당할 때 보복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5,39)라고 말씀하시면서 다음의 것들을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5,39-42)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너무도 힘들고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말씀해 주실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 이러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예수님께서도 나에게 그대로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인에게 맞서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먼저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태5,39)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른 뺨을 때린다는 것은 오른손잡이가 손등으로 얼굴을 때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가장 모욕적인 행위였습니다. 랍비의 법에는 손등으로 남을 치는 행위는 특별히 수치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는데, 이 행위에는 두 배의 벌이 가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모욕을 받아들이고 다른 뺨까지 돌려 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미는 무엇일까? 바보처럼 당하고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사랑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고방식, 하느님 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사고방식을 제시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한대 맞았다고 해서 똑같이 때려준다면 그 모욕이 사라질까요? 그 수치스러움이 사라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악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분노의 씨앗을 심을 뿐입니다.

악인에게 똑같이 맞선다면 나 또한 악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그의 행동을 용서할 때, 그 모욕은 내 마음에 자리 잡지 않고, 분노의 씨앗도 뿌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때린 사람은 두 발 뻗고 자지 못해도, 맞은 사람은 두발 뻗고 잔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 맞은 사람은 바로 용서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게 오른 뺨을 때리는 이에게 왼뺨마저 돌려 대 주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것을 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예수님께서는 몸소 인간이 되시어 용서를 베푸셨고, 모범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위에서도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하면서 그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을 위해서 빌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절대로 보복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행동을 보여 주셨으니, 이제는 내가 해야 할 차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로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마태5,40)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서로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은 재판을 걸어서 서로 자기 것이라고 우깁니다. 여기서는 이겨도 죄를 짓게 되고, 져도 죄를 짓게 됩니다. 둘의 관계는 영원히 회복될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맙니다.

 

그런데 속옷을 빼앗으려는 사람에게 그래 겉옷도 필요할 테니 이것마저 가지고 가거라.”라고 한다면 얼씨구나하면서 가지고 갈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는데 그렇게 할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그렇게 가져갔다 할지라도 내가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나를 때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폭력을 거부하는 것이고, 그에게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는 것입니다. 설사 그가 다시 한 대를 치더라도, 더 요구한다 하더라도 그에 맞서서 또 다른 불의를 낳느니보다는 그것을 참아 받는 것이 훨씬 이익 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모두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넘치고, 후하게 갚아 주실 것이니 아낌없이 내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가해 1-10주일, 연중시기(가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