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상을 받는 방법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녀들은 모든 이를 사랑해야 함을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마태5,46) 하느님께서 이유가 있어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무조건 사랑하시는 것처럼, 나 또한 내 옆에 있는 이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바라보며 사랑해야 합니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내가 받을 상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사랑받지 못할 사람은 없고, 사랑하지 말아야 할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사람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랑하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본당에 성격이 고약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 형제를 피하는데 유독 베드로 형제만이 성격이 고약한 요셉 형제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어느 날, 신부님께서 베드로 형제에게 물었습니다.
“베드로 형제님은 요셉 형제와 친하게 지내시는데,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별 것 없습니다. 집에서 같이 살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니 성당에서는 친하게 지낼 만 하더군요. 그 형제 아내나 자녀들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형제자매들을 사랑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의무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 보다 훨씬 쉽지 않습니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할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이들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임을 알아야 합니다. 비신앙인들도 자기들끼리는 그 누구보다도 친하게 지냅니다. 계원들끼리는 신앙인들보다 더 자주 만나고, 더 친하게 지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관심을 갖지 말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관심을 가져 줍시다. 다른 사람이 관심 기울이지 않는 이들에게도 관심을 가져 줍시다.
한 자매가 냉담을 하였습니다. 냉담 이유는 “성당에 가면 아는 체 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를 반겨주는 사람이 없고, “왔냐고 인사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자매의 냉담 얘기에 다른 형제는 “왜 인사를 받으려고 하느냐? 먼저 인사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 사람 잘못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틀린 이야기 입니다. 처음 성당 나왔을 때 먼저 인사하기가 얼마나 쑥스럽습니까? 신앙의 이름으로 낯선 사람들이 모인 곳에 발을 들여 놓았다면 당연히 신앙공동체 안에서“따스함, 마음의 평화, 위해주고 반겨줌, 기도해 줌”등을 기대할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도 차갑게 다가오는 것이 현실입니다. 자기들끼리만 인사하고, 자기들끼리만 움직이고, 자기들끼리만 음식을 먹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성당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하고 발길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아는 사람에게만 인사를 할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손을 내 밀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그를 처음 보았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형식적으로 하는 인사, 아는 사람에게만 하는 인사,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밖에 나오면 아는 체도 안하는 모습. 서로에게 관심 없고, 내가 알고 있는 사람에게만 관심을 갖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런 교회 공동체라면, 그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사람들은 너무도 한정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상처받고 돌아서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무도 없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마태5,47) 그러므로 적어도 신앙인이라면 비신자들이 하는 것 이상으로는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먼저 와서 인사하고, 가시는 형제자매들에게 따뜻하게 인사하는 신앙인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가정방문을 하면서 기도해 주고, 어려움이 있으면 도와주는 신앙인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함께 성당에 오려고 노력하고, 참된 신앙의 벗이 되려고 노력하는 신앙인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5,48)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완전함이란 무엇일까요? 하느님께서는 완전하시지만 어떻게 인간이 완전해질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완전함이란 사랑하는데 결점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용서하는데 결점이 없고, 내어주는데 결점이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따르는 사람을 말하며, 주님과 온전히 일치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나를 박해하는 이를 위해 기도하며, 속옷을 달라는 사람에게 겉옷까지도 기꺼이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사람은 된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가기 위해서 내가 용서해 줄 것만을 생각하지 않고, 내가 용서를 받고 있음만을 기억합니다. 내가 주님께로부터 받고 있는 것만을 기억합니다. 만원을 주면 일억을 주겠다고 하는데 안 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보잘 것 없는 것을 내어 주고, 감당할 수 없는 은총을 받아 누리는 이가 바로 나 자신임을 알 때, 내가 용서하고, 이해하고, 내어주는 것들은 아무것도 아님을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이건 너무 어렵지 않습니까?”라는 불평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주님께서는 “얘야! 그래서 내가 인간이 되었지 않느냐? 인간의 모든 고통을 나 또한 겪었단다. 네가 힘을 내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내가 먼저 해 보인 것이란다. 힘낼 수 있지? 내가 네 곁에 있지 않느냐?”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때 “예수님! 잘 안 들려요.^*^”하고 싶을 지라도, “예! 해보겠습니다.”하고 씩씩하게 응답하는 내가 되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