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마태6,24)고 말씀을 하십니다. 두 주인은 바로 하느님과 재물을 말합니다. 그런데 재물을 섬기다보면 하느님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재물은 움켜잡게 만들고, 육신을 편안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것 같은 유혹을 줍니다.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 “절대적으로 행복”하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런데 재물에 대한 집착은 사기나 도둑질을 넘어서 모함이나 살인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재물은 인간을 죄짓게 하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잊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 재물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주일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현대의 우상은 바로 재물입니다. 이 재물은 힘이 있어서 사람의 생명도 하찮게 여기게 만들어 버립니다. 가족도 잊어버리게 만들고, 사랑도 살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자신을 알아주는 곳에 늘 자신의 몸이 가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모임보다는 재물이 오가는 모임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6,24)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섬길 것인가? 재물을 섬길 것인가? 그리고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은 재물을 섬기지 않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재물을 섬기는 사람은 자신에게 손해가 오면 신앙을 버릴 수도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다미아노 성당을 수리할 때 돌을 산 적이 있었는데, 그 돌을 판 사람은 실베스텔 신부였습니다. 그는 그때 돌을 헐값에 팔았습니다. 아마도 그 돌이 좋은 목적으로 쓰일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싸게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프란치스코의 형제들이 많은 돈을 마구 내주는 것을 보고 그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는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전에 나한테서 돌을 살 때 당신은 아주 싸게 샀잖아요.” 프란치스코 성인은 실베스텔 신부가 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 사제의 욕심에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즉시 허리를 굽혀 베르나르도의 옷 주머니에서 돈을 세지도 않고 한줌 쥐어서 그 사제의 손에 쏟아 부으면서 물었습니다. “이만하면 됐습니까? 신부님?”그러자 실베스텔 신부는 냉정하게 “고맙습니다.”고 하고는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후에 실베스텔 신부는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심판을 하는 것처럼 영혼 속에서 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변화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와서 형제들 안에 받아주기를 간청하였습니다. 실베스텔 신부는 온전하게 하느님만을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